20만권 소장 24시간 열린 도서관
파주출판도시에 내달 19일 오픈
김언호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
“책 생명 연장, 독서운동 중심될 것”
길이 3.1㎞의 ‘책의 길’이 색과 모양, 향취를 달리하며 뻗어있다. 도시처럼 구획되고, 빈틈없이 지번이 매겨진 곳이 아니니, 목적도 방향도 없는 ‘산책’이 가장 알맞을 터다. 길을 잃을까 싶으면 이 책의 산책로를 안내하는 ‘길라잡이’를 찾으면 될 일이다. 손때가 묻고 줄이 쳐져 수십년 묵은 책이 있는가하면, 반질하고 빳빳하게 젊음을 자랑하는 최신간도 있다. 수령도 제각각인 크고 작은 나무가 서 있는 숲길인 셈이다. 이 길은 사람이 있는 한, 닫히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한길사 대표이자 파주출판도시문화재단 김언호 이사장의 말이다. 그는 이 길이 조성된 곳을 ‘지혜의 숲’이라 일렀고, 산책의 길라잡이에는 ‘권독사’(權讀士)라는 이름을 붙였다.
24시간 열린도서관을 지향하는 ‘지혜의 숲’이 오는 6월 19일 개관한다. 경기도 파주 출판도시의 중심이자 본부격인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와 지식연수원인 호텔 지지향 내에 자리잡았다. 거대한 로비와 복도를 도서관으로 다시 디자인해 서가를 만들고 책을 앉혔다. 있는 공간을 새로운 모습과 기능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출판도시문화재단관계자는 지혜의 숲으로 조성된 연면적이 2600평(약 8만6천㎥), 서가의 길이는 3.1㎞정도가 될 것이라고 가늠했다.
개관을 앞두고 지난 28일 지혜의 숲이 언론에 미리 공개됐다. 도서는 50만권 확보가 목표이고, 현재는 20만여권이 자리를 찾았다. 책은 출판사나 온ㆍ오프라인 대형 서점으로부터 기증받은 것도 있고, 주로 노학자인 개인으로부터 얻은 것도 있다. 국내의 거의 모든 출판사가 자사의 역사를 증명하는 거의 모든 서적을 내놓았고, 퇴임했거나 퇴임을 앞둔 학자, 연구자, 유명인사들이 적게는 수백권부터 많게는 수천권까지 기증했다.
김언호 이사장의 설명 중 가장 귀에 띄인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운영방식과 ‘권독사’ 제도다. 김 이사장은 “책 읽는 사람이 있는 한 문을 닫지 않는 24시간 열린 도서관”을 지향한다고 했다. 또 도서관의 전통적인 분류방식을 따르지 않고 책은 출판사별, 개인 기증자별로 꽂아 놓았다. 연구를 위해 특정한 독서목록을 염두에 두고 찾기보다는 정처없이 둘러보다 뜻밖의 발견과 탐험의 기쁨을 누리는 독서형태에 맞는 도서관이다. 누구나 도서관에 들어서면 특별한 절차 없이 서가에서 바로 책을 뽑아 볼 수 있는 ‘완전 개가식’으로 운영된다. 여기선 한 출판사가 수십년동안 출간해온 신구 도서나 전집류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개인 기증자의 코너에는 일가를 이룬 학자의 오랜 서재가 고스란히 들어앉았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구해온 서적, 젊은 열정을 불사르게 했던 책, 연구의 초석이 됐던 전문서까지, 거장들의 정신 편력과 지적 탐험의 궤적이 한 눈에 들어온다. 현재 소장 도서를 기증했거나 의사를 밝힌 이들은 석경징(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 유진태(재일 역사학자), 유초하(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한경구(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이병혁(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 한승옥(숭실대 국문과 명예교수), 김연호(전북대 영문과 명예교수) 등 약 30명에 이른다.
기존 분류나 배치 방식과 달라 애를 먹는 독자들을 위해선 ‘권독사’제도를 뒀다. 김 이사장이 명명했다는 ‘권독사’는 도서관 이용객들을 위한 독서 안내자다. 독자의 관심과 기호에 따라 도서나 출판사, 학자들의 코너를 소개, 추천하고 책이 꽂힌 위치까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미 권독사로 활동할 자원봉사자 30여명을 뽑았고, 개관까지 교육을 거쳐 ‘지혜의 숲’에 배치된다.
김언호 이사장은 “활자미디어의 위기 시대에 책의 생명을 연장하고, 독서행위를 확장ㆍ심화시키는 독서운동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지혜의 숲 건립의 의의를 밝혔다. 오는 6월 19일 개관 이후엔 다양한 강좌와 전시, 공연, 학습 등의 프로그램도 마련할 것이라고 파주출판도시문화재단측은 밝혔다.
- 헤럴드경제 201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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