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5-26 20:46
아카이브 구축, 무엇이 문제인가
|
|
아카이브 구축, 무엇이 문제인가
류한승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최근 ‘아카이브’는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이다. 아카이브는 어느덧 전시의 선택이 아닌 필수일 정도로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미술관을 비롯해 여러 기관이 경쟁적으로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다. 인터넷상에도 네오룩, 달진닷컴, akive 등 아카이브 전문 사이트가 맹활약하고 있다. 나아가 작가도 자신의 자료를 소중히 다루고 간직해야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사실 이런 아카이브의 유행은 비단 미술계에만 한정된 일은 아니다. 사회 전반에서 기록과 자료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자료를 모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에서 미술 아카이브는 단기간 내에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런데 정작 아카이브 고유의 특성과 역할에 대한 고민은 의외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최근 사람들의 관심은 지나치게 활용과 서비스에만 치우쳐 있는 것 같다. (모은 자료를 그저 쌓아 두고 묵혀서도 안 되지만) 더욱이 아카이브와 IT기술이 접목되면서 자료의 원본보다는 디지털 자료에, 자료의 분류와 정리보다는 첨단 검색 기능에, 수집과 보존보다는 디지털화에 더 역점을 두는 경향이 만연하다. 디지털 아카이브는 나름의 장점을 충분히 갖고 있다. 그런데 자료의 수집, 보관, 분류, 정리, 기술(記述)에 대한 이야기가 디지털과 서비스라는 이야기에 묻혀 점차 그 목소리를 잃어 가는 듯 하다. 물론 서비스 없는 아카이브는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수집과 보관 없는 아카이브도 어불성설이다.
사실 필자는 아카이브 전문가가 아니다. 단지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연구센터 설립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러면서 단편적으로 보고 느꼈던 것을 이번 기회에 두서없이 적어보고자 한다.
첫째, 자료를 수집하면 정리(arrangement)와 기술(description)을 해야 한다. 정리와 기술은 동시에 진행된다. 먼저 아키비스트는 기관 특성을 고려해 분류 체계상의 레벨(level)을 설정한다. 이는 공통의 성격을 가진 자료를 함께 모아 놓을 때 유용하다. 그리고 각 레벨별로 기술 요소(descriptive element)와 기술 지침을 마련한다. 국가기록원과 미국아키비스트협회가 제안하는 기술 요소는 제목, 생산년도, 생산자명, 범위와 내용을 포함해 각각 27개와 26개이다. 아카이브는 다양한 유형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자료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도서보다 기술이 강조된다. 이후 아키비스트는 이 체계와 지침을 바탕으로 수집된 자료를 정리하면서 기술해야 한다. 이때 자료의 성격, 원질서, 출처, 유형 등이 정리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더불어 기술 시 사용하는 표준용어(작가명, 미술용어, 지명 등)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아키비스트는 기록학적 지식과 미술사적 지식을 두루 겸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짧은 기간 안에 아키비스트를 양성하기가 힘들다.
둘째, 아카이브 관련 업무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단연 아키비스트이다. 하지만 아키비스트가 온전하게 힘을 발휘하려면 다른 전문가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미술관에서 큐레이터, 에듀케이터, 컨서베이터, 레지스트라, 코디네이터, 디자이너 등이 협업하는 것처럼, 아카이브 관련 기관에서도 아키비스트, 큐레이터, 컨서베이터, 레지스트라, 테크니션 등의 전문가가 함께 일해야 한다. 미술관이 부설로 아카이브를 운영할 때도 아카이브만 전담하는 전문직을 따로 두는 것이 좋다.
셋째, 자료를 수집하면 적정한 온도와 습도에서 자료를 보관해야 한다. 너무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카이브의 유형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종이류는 약 10℃에서 보관하는 것이 좋다. 게다가 사진과 필름은 10℃보다 훨씬 낮아야 한다. 보통 회화를 20℃ 전후에서 보관하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낮은 온도이다. 대부분의 미술관이 수장 시설의 부족을 호소하는 상황에서 아카이브를 위해 10℃의 수장고를 별도로 확보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미술 아카이브의 모범사례로 일컬어지는 게티미술연구소(Getty Research Institute)는 10℃, 0℃, -18℃ 등 온도가 다른 3종류의 수장고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일반 미술작품보다 보관하기 까다로운 것이 바로 아카이브이다. 넷째, 아카이브와 도서는 다르다. 물론 아카이브와 도서는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보통 도서는 어떤 일정한 형태를 가지며 DDC와 LCC 같은 국제적인 분류 체계가 있지만, 아카이브는 다양한 형태로 구성되며 일반적인 분류 체계가 없다. 또 도서는 ‘권’ 단위로 수량을 파악하지만, 아카이브는 ‘규모(extent)’로 수량을 파악한다. 과거 한국에서는 각 기관의 도서실이 아카이브 업무를 부수적으로 수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다보니 도서를 다루는 방식으로 아카이브에 접근하기도 했다. 아카이브는 아카이브다. 도서와는 다른 특성이 있다. 그 고유한 특성을 존중해야 한다.
미술관과 미술연구기관이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연구자와 미술애호가에게 미술자료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즉 연구자들이 학문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며, 또한 미술애호가들이 미술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 · 향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요즘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이 확실히 확대됐다. 아카이브 문화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좋은 시기이다. 그러나 아카이브의 기초를 올바로 세우지 않고 오로지 활용과 서비스라는 열매에만 눈독을 들인다면, 아카이브는 여기저기 휩쓸려 다니다가 결국 침몰할 것이다. 당장의 성과보다는 장기적 안목에서 아카이브를 생각할 때이다.
- 아트 인 컬처 2013년 5월호
<a href="http://www.artarchives.kr/"><img src="http://www.artarchives.kr/KAA-websticker.jpg" border="0"></a>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