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8-28 21:31
자료연구는 바로 그 나라의 국력이다
자료연구는 바로 그 나라의 국력이다
_ 우리가 資料貧國에서 왜 깨어나야 하는가

김정 / 서양화가, 韓獨조형작가회 고문


국회청문회에 나온 교수출신 장관후보자들이 항상 걸리는 문제가 논문 중복게재와 이중발표다. 연구는 못하고 발표 실적 수만 늘리다보니 이런 결과다. 한국 교수 전체가 다 그렇진 않지만, 상당수가 해당된다. 국내 대학들이 아시아 100위권 대학에서 초라한 모습도 연구논문발표수와 관계 깊다. 국내 삼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업들이 독자 개발보다는 해외에서 특허자료를 구입하는 예가 많다. 그 중에는 한국인이 개발한 것을 외국에 판 것을 되사오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는 특허를 보유하는 자료관련 전문기관이 빈약한 원인이다. 일본의 와세다대학 근방에 가면 책방이 많다. 거기서 가령 백 년 전인 1910년 간행된 00책 있냐고 물으면 컴퓨터를 몇 번 두드리고 나서‘우측 00칸에 꽂혀 있다’고한다. 한국의 오래된 명문사학 성대, 연대, 고대 근처 책방에서 30년 전에 나온 책 있냐고 물으면 그렇게 오래된 책이 있겠냐고 ‘묻는 사람이 바보, 병신취급’ 된다.

위에서 여러 예를 들어 본 것처럼 모든 원인은 우리의 자료빈국에서 나온 결과다. 그동안 수많은 정치지도자를 거쳤지만 자료빈국은 여전하다. 물론 박정희는 문경에 초가집 한 채 남겼지만, 나머지 지도자는 거의가 퇴임 후 자기 집만 호화롭게 챙기는 사기꾼 수준이었다. 독일의 경우, 박물관을 국립, 도립, 군립, 面立, 里立으로 세워 자료를 소중하게 살리는 정책이 있다. 여기에 사립박물관까지 합치면 그 지역 인구 보다 자료관이 더 많을 정도로 자료관심을 불러일으켜 준다. 자료가 풍부해야 학문과 산업연구에 가속이 붙는 이치다. 산업의 발달은 곧바로 국민의 문화예술로 연결되는 기초논리다.
이런 연쇄작용은 국민을 먹여살리는 ‘지적 원동력’이 된다. 일본의 경우는 어떤가. 도쿄대학에 가령 100년 전 한국인 출신 고희동, 김관호 등 작가가 졸업 작품으로 남긴 작품이 대학 지하 자료관에서 버튼만 누르면 작품이 곧바로 자동으로 올라온다. 이미 오래전 현대적으로 완벽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국내 대학도 졸업 당시의 졸업생 작품을 현대적 자료 시스템으로 관리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자료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

중국이 백두산에 이어 압록강까지 자기 영토라고 압박하고 있다. 일본의 독도에 이어 마치 자료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증거 자료로 맞대응 하게 된다. 자료는 이때 중요한 국력으로 변한다. 그럼에도 노무현대통령 임기 때 고구려연구학술재단을 없앤 큰 실수를 했다. 중국이 싫어하는 눈치로 해체한 이유다.
자료에 대한 무지의 극치다. 필자가 이처럼 자료에 관심 갖게 된 이유는 논문 때문이었다. 늘 자료에 한계를 느껴오면서 고생을 했다. 미술관련 학술논문을 쓰던 1960-90년대는 자료가 거의 황무지였기에 내 스스로 원로화가들의 인터뷰, 답사조사, 실험 및 설문조사 등으로 자료를 만들고 썼다. 그 시절 필자는 일본교수와 국제적 논문편수가 40여 편 이상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선두를 지키던 때도 있었다. 우리환경으로서는 너무도 힘든 자료전쟁이었다. 작가가 작품만 하면 되지 무슨 논문을 쓰냐고 묻는 얼빠진 작가교수도 있다. 미술교수가 석사논문 심사도 해야 하고, 학생들과 토론이나 세미나도 한다면 논문 쓰지 않고 어쩔 셈인가. 필자는 통독되자마자 독일 뎃사우의 바우하우스를 방문해서 느낀 점은 칸딘스키나 클레도 엄청난 자료연구교수였구나 라는 것이었다. 클레교수의 자료연구는 거의 철학자 수준이다.

최근 국내도 뒤늦게나마 천만다행의 자료박물관이 생겼다. 박물관 특성상 자료에 대한 끈질긴 신념과 정성과 애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김달진관장이 제격이다. 그분은 거의 자료에 미칠 정도로 남다른 애정이 있다. 39년 전 전시장에서 포스터와 팸플릿을 모으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할 정도로 자료애착에 지극정성이다. 그러나 그 뜻은 훌륭하지만, 재정이 문제다. 자료박물관은 수익사업도 아닌 만큼 예산이 많이 든다. 예컨대 숨어 있는 자료를 끊임없이 발굴 입수해야하기 때문이다. 그 면에서 김관장의 재력으로는 너무도 벅차다. 하지만 국민의 힘으로 도와주면 못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하는 희망도 갖는다. 가령 미술인 200인이 기부한 그림 200점을 나눠 전시, 박물관설립기금특별전을 열어 자료박물관을 돕는 국민여론의 분위기를 높이는 방법도 있다. 명분 있고 뜻있는 일이면 원로에서 청년작가까지 기증에 인색치 않을 것이다. 국민적 자료박물관을 위해 우리는 진작에고민을 했어야했다. 늦었지만, 국민들의 호응과 박물관의 노력이 합쳐진다면 독일 수준만큼 될 것을 기대해 본다

- 서울아트가이드 200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