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6-28 10:29
"면장부터 군수까지 책 사랑에 빠졌죠"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27/2013062704609.htm… [396]
['완주 책박물관' 세운 주역들]

영월서 문닫은지 7년만에 부활
완주군 독서모임·임정엽 군수, 박대헌 관장이 만든 합작품
"완주 문화예술 더 풍부해질 것"

1999년 4월 강원도 영월의 폐교(廢校)에 세워져 특색 있는 전시회와 책축제 등으로 관심을 끌다가 2006년 9월 문을 닫았던 책박물관이 전라북도 완주로 옮겨 최근 다시 문을 열었다. 무기한 휴관에 들어간 지 7년, 2010년 12월 폐관한 지 2년 반 만에 책박물관이 완주군 삼례읍에 새 둥지를 틀게 된 것은 설립자인 박대헌(60) 관장과 임정엽(54) 완주군수, 완주군 독서모임 '북(Book)소리 둥둥'의 합작품이다.

"그동안 책박물관을 유치하고 싶다고 요청해온 지방자치단체는 몇 군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 발로 찾아갔던 영월에서의 실패 경험 때문에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완주에서 간곡하게 책박물관은 물론 책 마을까지 만들겠다고 해서 다시 용기를 냈습니다."


책박물관을 완주로 옮긴 주역들. 왼쪽부터 독서모임‘북(Book)소리 둥둥’회원인 이혜정·류강연·이계임·김미경씨, 임정엽 완주군수, 박대헌 책박물관 관장. /‘완주 책박물관’제공
뜻하지 않게 꺾였던 날개를 다시 편 박대헌 관장은 들떠 있었다. 그는 "무엇보다 완주에 책박물관을 갖고 싶다고 나를 만나러 온 사람들이 책을 사랑하는 독서모임 회원이라는 점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했다.

2011년 여름 이계임 완주군 소양면장, 김미경 고산도서관 사서, 이은종 완주군청 주무관 등이 서울 인사동으로 박 관장을 찾아왔다. 2003년부터 독서모임을 가진 이들은 그해 봄 완주군의 해외연수 공모에 '유럽 책 마을 탐방'이 당선돼 영국의 유명한 헌책방 마을 헤이온와이 등 책 마을·도서관·서점을 돌아봤다. 이들은 보고서에 '우리나라에도 영월에 책박물관이 있는데 지금은 문을 닫았다'고 썼다. 이 보고서를 읽은 임정엽 군수가 '책박물관이 완주로 올 수 있는지 상의해 보라'고 했다.

박대헌 관장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자 이번에는 임 군수가 박 관장을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두 사람은 책박물관의 완주 이전에 의기투합했다. 마침 일제강점기에 수탈한 쌀을 일본으로 실어가기 전 보관하던 양곡창고 건물들을 리모델링해서 문화예술공간으로 조성하는 방안을 완주군이 추진하고 있었다. 박 관장은 역사가 살아있고 삼례성당과 구 삼례역 등 주변 건물과 조화를 이루는 이곳을 선택했다. 그 과정에 일부에서 "실익이 없다"며 책박물관 유치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계임 소양면장은 "그럴 때면 '북소리 둥둥' 회원들이 나서서 '잠자고 있다가 이제 깨어나는 완주군의 문화예술을 풍부하게 하는 데 책박물관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책박물관'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박대헌 관장은 원래 고서점 주인이다. 그가 1983년 설립한 '호산방(壺山房)'은 우리나라 고서점 중에서 처음으로 정가제를 실시하고 고서 가격과 서지사항을 담은 도서 목록을 간행하는 등 남다른 활동으로 주목받은 곳이다.

박 관장은 책박물관의 새 터전에서 자신의 오랜 꿈인 책 마을을 일궈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제가 영월로 들어가면서 꿈꾸었던 것은 은퇴한 지식인·문화예술인·전문가들이 책박물관을 중심으로 모여 살면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생활공동체였어요. 책박물관과 함께 책 공방, 디자인 뮤지엄, 목공소 등이 들어선 '삼례 문화예술촌'은 책 마을을 조성하기에 아주 좋은 여건이지요."

(이선민 기자)

- 조선일보 2013.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