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9-23 13:56
[만물상] '헌책방 보물찾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9/17/2013091703290.htm… [386]
헌책방에 가보면 1만원의 가치가 새롭게 느껴진다. 얼마 전 서울 망원동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에서 '책 한 권 들고 파리를 가다'와 '스물한 살의 프라하'를 비롯해 유럽 여행서 네 권을 샀다. 집에 와 '책 한 권 들고…'를 펼쳐보니 책갈피에 네 잎 클로버 하나가 곱게 끼워져 있었다.

▶원래의 책 주인은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하고 얼마나 좋아했을까. 그는 네 잎 클로버에 어떤 소망을 담았을까. 하고많은 책 중에 왜 프랑스 여행 책에 네 잎 클로버를 끼워 넣었을까. 그의 소망은 이뤄졌을까. 그토록 소중했던 꿈을 담은 책과 그는 왜 헤어지게 됐을까. 책은 저자와 독자를 이어준다. 헌책방 책들이 여기 덧붙여 전해주는 게 있다. 같은 책을 좋아했던 또 다른 사람의 따스한 흔적이다.


[만물상] '헌책방 보물찾기'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다시 읽고 싶어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 절판돼 이제는 안 나온다고 해 헌책방을 뒤져 샀다. '그리고 아무 말도…'는 나온 지 50년 된 책이다. 거기에는 요즘 흔한 외국 기행문에서는 보기 힘든 사색과 관찰의 높이가 있었다. 대형 서점 매장은 정글과 같다. 대중의 눈길을 못 받은 책은 오래 못 버티고 밀려난다. 새 책방에선 눈에 안 띄던 필요한 책이 헌책방 어느 구석에서 빙긋 얼굴을 내밀 때 독자는 발견의 기쁨을 느낀다. 언론인 남재희씨는 이를 '아스팔트 위의 낚시꾼이 월척을 낚는 희열'이라고 했다.

▶"(6·25 때 서울 수복 후) 거리는 황량했다. 염색한 군복 입고 커다란 군화를 끌며 나의 대학 생활은 의식의 '하꼬방'에 갇혀있었다." 그 시절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는 청계천 헌책방 더미에서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 일본어판을 발견했다. 가톨릭의 억압에 시달린 자의 해방을 외친 이 책에서 그는 '본능적 젊음의 순수 욕망, 출발의 의미'를 깨닫고 전율했다. 그는 지금도 이 책을 소중히 간직하며 '주름살과 비례해 비굴해지는 내 모습'을 느낄 때마다 펼쳐 본다고 했다.

▶옛 서울시청에 자리한 서울도서관이 이달부터 도서관 홈페이지(lib.seoul.go.kr)에서 '헌책방에서 보물찾기' 서비스를 하고 있다. 서울 시내 구석구석 숨어있는 100여개 헌책방을 올려놓고 찾아가는 법, 가게의 특징과 이용법을 안내하고 있다.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서울과 지방에는 아직 유서 깊은 헌책방이 많이 남아있다. 이 가을 헌책방 먼지 낀 서가(書架)의 좁은 통로에서 누군가 밑줄 쳐놓은 잊지 못할 한 구절을 만나고 싶다.

(김태익 논설위원)

- 조선일보 2013.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