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0-01 10:32
"종이냐 디지털이냐 중요치 않아… 콘텐츠가 관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0/01/2013100100037.htm… [393]
[창립 100주년 맞은 일본 출판사 이와나미쇼텐 오카모토 아쓰시 대표]

헌책방으로 시작해 출판업으로 전환… 기획물 잇단 출간 '日本 지성의 산실'
책 읽는 사람 감소는 세계적 추세 "출판문화의 저력 보여주겠다" 결심… 3만여명 등장 세계인명대사전 펴내


일본 출판사 이와나미쇼텐 대표 오카모토 아쓰시.
오카모토 아쓰시 대표는“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 팩트에 기반을 둔 책을 펴내 일본이 반성할 부분을 제대로 알리는 게 출판인의 몫”이라고 했다. /허영한 기자
"일본 출판계는 지금 파친코 업계보다 상황이 안 좋아요. 1996년 매출 2조4000억엔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매년 감소해 올해는 1조8000억엔으로 추락했어요. 만화 판매도 감소 추세이고, 구세주처럼 등장한 전자책도 이익을 낼 만큼은 아닙니다."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은 일본의 유서 깊은 출판사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의 오카모토 아쓰시(岡本厚·59) 대표는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드는 건 세계적 경향 같다"며 "한국도 심각하냐"고 물었다. 파주북시티 국제출판포럼 참석차 30일 내한한 그는 "이런 추세를 뒤집을 결정적 상황을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인간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생각이나 사상을 글로 표현하는 지적 기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영화도 사양산업이라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감독은 엄청난 관객을 동원하잖아요. 매체가 종이냐 디지털이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콘텐츠가 중요합니다."

1913년 8월 창업자 이와나미 시게오(岩波茂雄)가 도쿄에 세운 헌책방으로 출발한 이와나미쇼텐은 이듬해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을 출간하며 출판업으로 전환했다. '이와나미 문고' 시리즈, '이와나미 신서' 시리즈 등 굵직한 기획물을 펴내며 '일본 지성의 산실'이 됐다. 오카모토 대표는 이와나미가 1946년 창간한 월간지 '세카이(世界)' 편집장을 16년간 지낸뒤 올해 6월 출판사 대표직에 올랐다.

이와나미는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아 총 3만8000명이 등장하는 '세계인명대사전'(전 2권)을 12월 출간한다. 10년 동안 준비한 야심작. 실존 인물뿐 아니라 가공인물까지 망라하고, 집필자만 800여명이다. 오카모토 대표는 "지금까지 출간된 일본 서적 중에서 한국인 이름이 가장 많이 들어간 책이 될 것"이라며 "팔릴 생각보다는 출판문화의 저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획이다. 바로 이런 일이 이와나미가 계속 해왔고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일본 역사'(22권)와 '일본 사상'(8권) 시리즈도 펴내고, 이미 50년 전 출간한 아리스토텔레스 전집도 새로 번역해 다시 낼 계획이다.

그는 최근 악화되는 한일 관계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견해를 밝혔다. "한국에 대한 일본 국민의 감정이 달라진 배경에는 3·11 동일본 대지진이 있습니다. 엄청난 재해가 발생하면 그 나라 국민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는 강하고,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 하니까요. 아베 총리,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 등 우익 정권이 이런 국민 감정에 편승해 갈등을 유도하는 측면이 있고요."

그는 "지금 상황은 마치 초등학생들이 '이건 내 거다, 못 준다' 하면서 싸우는 느낌"이라며 "일본의 역사 인식에 대해선 반성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고, 출판계가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허윤희 기자

- 조선일보 2013.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