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0-25 13:16
[사색의 향기] '사진책도서관'을 궁리하다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10/h20131025033051121760.ht… [370]
두 해 전, 뉴욕에 거주하는 한 사진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뉴욕의 사진 관계자들 몇이 한국에 가는데, 한국사진가들의 사진집을 볼 수 있는 공간을 추천해달라 해서 류가헌을 추천했다는 것이다. 갤러리가 문을 닫은 시간에 도착할 텐데, 맞아줄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막상 추천할 곳이 없었고, 대형서점을 추천하기엔 부끄러웠노라는 게 이어진 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왔다. 이번엔 류가헌이 부끄러웠다. <북카페>에 꽂힌 겨우 책꽂이 하나 분량의 책으로 '한국사진가들의 사진책을 볼 수 있는 서울의 공간'을 대표하기가.

도서관이라면 어땠을까. 서울의 주요 도서관들을 다니며, 사진집들을 검색해본 게 그 이후다. 하지만 대형 도서관에도 우리나라 사진가들의 사진집들이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정독도서관에, 종로도서관에 이갑철의 <충돌과 반동>이 없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서울도서관에 성남훈의 <유민의 땅>이 없다. 한국의 대표적인 사진가들의 대표적인 사진집들조차 없는 것이다. 사진집이 도서관에 잘 비치되지 않는 원인들 가운데 하나가, 사진집 한 권 살 비용이면 다른 분야의 책을 여러 권 구비할 수 있어서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아연했다.

몇 달 전 북경에 갔을 때, 한 중국 사진가가 운영하는 갤러리를 방문했다. 유명 건축가가 지은 멋스런 전시장 건물과 사진가의 개인 작업실, 너른 정원보다 부러웠던 것은, 입구에 갤러리와 별도로 지어진 작은 2층 건물에 마련된 사진책 도서관이었다. 작가가 소장해온 사진집들을 중심으로 세계 여러 나라 유명 사진가들과 중국 사진가들의 사진집을 망라해서 볼 수 있는 도서관이었다. 개인의 사적인 서고를 모두가 함께 나누어 볼 수 있는 공공재로 확장한 사진가와 그런 사진가를 가진 북경이 부러웠다.

우리나라의 아마추어 사진인구가 1,000만 명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판매된 DSLR카메라 또한 500만 대 이상이라고 한다. 사진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큰 지를 실감할 수 있는 수치다. 류가헌의 관람객 중에도 카메라를 지니고 오는 분들이 많다. 사진가도 있고, 프로 사진가보다 더 프로답게 장비를 갖춘 아마추어 사진가들도 있다. 그들에 대해 사진계에 도는 씁쓸한 이야기가 있다. "필터 하나는 몇 만원을 들여 사면서도, 더 중요한 사진책은 사보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사진인구는 많아도 사진책 보는 문화가 없다는 이야기다. 인문학이나 철학, 정신이 받쳐주지 못하는 몸의 기교는 금방 들통 난다. 스스로도 지리멸렬해진다.

하지만 그들을 탄하기 이전에, 사진책을 가까이 접할 수 없는 환경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지 않을까. 매해 사진축제가 열리는 서울에 사진책도서관은커녕 사진책을 편히 만나고 펼쳐볼 수 있는 전문적인 공간 하나가 없는 것이다.

왜 없을까를 고민하다, 누가 좀 하지 않을까를 기다리다, 그럼 우리가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해서, 새해에는 그 동안 류가헌 식구들이 사무공간으로 쓰던 작은 한옥을 사진책도서관으로 꾸릴 예정이다. 전시장으로 쓰고 있는 큰 한옥채와 나란히 이어진 작은채는 34평 여 되는 한옥이다. 이곳에 최소한 한국의 사진가들 사진집이라도 한자리에 모으려 한다. 해외유명작가들 사진집까지 구비하기엔 공간도 협소하고 자금도 없다. 또 올해로 25주년을 맞은 국내 유일의 사진책전문출판사 '눈빛'이 만들어온 약 500여 권의 사진집들도 비치될 것이다. 이미 40% 정도는 절판되어 시중에서 만날 수 없는 책들인데다, 이십 년 넘게 출간된 '눈빛'의 책들은 한국의 사진사라고 하는 큰 줄기의 소중한 일부이다. 도서관이라는 인문 공간이 마련되니, 그 안에서 사진과 인문학이 만나는 강좌부터 작가와의 만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규모 강좌들도 벌일 참이다. 너비에는 한계가 있으니, 중요히 여길 것은 깊이일 것이다. 규모보다 희소성 등에서 차별화를 가지려 한다. 하긴, 아직 전문 사진책도서관이 없으니, 차별화라는 말도 우습다.

하지만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앞으로 벌이려는 이 일이 가능한 일인지, 어찌 해나갈지 여러 걱정이 앞선다. 이 글은 어쩌면 대외적으로 미리 알림으로써 실천을 공고히 하려는 앙다짐일지도 모른다. 아무려나, 숙제는 이것이다. 의미로도 살아야 하지만, 현실로도 살아내야 한다는 것.
(박미경 갤러리 류가헌 관장)

- 한국일보 2013.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