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4-08 10:51
런던 516㎡에 펼친 한국 문학의 매력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631691.html [364]
런던도서전 개막 한국 ‘주빈국’ 참여
신경숙 등 10명의 작가 총출동
황선미는 ‘오늘의 작가’로 선정 
“보수적 나라서 ‘마당’ 흥행 놀라워”

“작가 지망생부터 일반 독자까지 영국인 수십명이 제 작품을 읽고 문학 행사에 와서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는 모습을 보니 영국에서의 인기가 비로소 실감이 나네요.”

황선미(51) 작가가 웃으며 말했다. 8일(현지시각)부터 10일까지 사흘 동안 영국 런던 얼스코트에서 열리는 제43회 런던도서전 ‘오늘의 작가’로 선정된 그의 책 <마당을 나온 암탉>(The hen who dreamed she could fly)은 이미 지난달 30일 영국의 대형 서점 포일스의 런던 워털루점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1위(<한겨레> 4월4일치 23면 참조)에 올랐다. 영문판 출간 한달 만의 쾌거였다.

황 작가는 런던도서전 개막에 앞서 지난 6일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문학 행사를 통해 영국 독자들을 먼저 만났다. 알을 품고 싶은 소망이 간절한 양계장 난용종 암탉 ‘잎싹’이의 삶과 죽음 이야기인 <마당…>은 동화로 소개된 한국과 달리 영국에서는 ‘일반 소설’로 독자들을 찾아갔다. 황 작가는 영국 독자들에게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가 재건으로 힘겨운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형제가 많은 집에서 춥고 배고픈 유년기를 겪어야만 했고,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어른들 속에서 미래라는 걸 상상한 적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결핍은 모든 걸 상상하게 만들었고, 우연히 만난 문학서적은 내 인생의 큰 지표가 돼주었다.”

런던도서전 개막을 맞아 영국에는 ‘한국을 나온 문학’ 바람이 불고 있다. 올해 한국이 도서전의 주빈국이기 때문이다. 1971년 소규모 출판 전시회로 시작해 성장한 런던도서전은 2004년부터 주빈국을 뜻하는 ‘마켓 포커스’ 제도를 도입했다. 그동안 터키, 중국, 러시아, 인도, 스페인 등이 주빈국으로 참여했다. 집중적으로 한 나라의 작가와 작품, 출판 산업을 영미권 ‘출판 시장’에 소개한다는 취지다.

외국 도서전 중 저작권 교류가 가장 활발하다는 런던도서전에 올해는 61개국에서 온 1500여 업체가 전시에 참가하고 114개국 2만5000여명의 출판인이 방문을 신청했다. 런던도서전은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출판인들만의 교류를 위해 열리는 도서전이다. 이번 도서전에서는 전자출판과 관련해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영국의 전자책 시장은 지난 1년 사이 66% 커졌을 정도로 급성장 중이다.

올해 한국은 주빈국으로서 516㎡ 규모의 널찍한 전시 부스를 마련했다. 전시를 주관하는 대한출판문화협회는 ‘마음을 여는 책, 미래를 여는 문’이란 표어 아래 비즈니스관, 전자출판관, 만화·웹툰 홍보관 등을 운영하며 전시 기간 동안 작가 특별전, 한국 근대문학 특별전, 아동 디지털 원화 전시 등의 행사를 연다.

런던에는 황선미를 비롯해 김영하, 김인숙, 김혜순, 신경숙, 윤태호, 이문열, 이승우, 한강, 황석영 등 한국을 대표하는 10명의 작가가 총출동했다. 특히 황선미 작가는 도서전 기간 사흘 중 가운뎃날인 9일의 ‘오늘의 작가’로 선정됐다. 8일과 10일 ‘오늘의 작가’는 영국 작가인 테리 프래칫과 맬러리 블랙먼이다. 런던도서전은 하루 동안 ‘오늘의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행사를 마련하며, 런던 시내의 서점에는 그 작가의 작품이 가장 좋은 자리에 진열된다.

외국 작품을 꺼리는 영국에서 한국 문학작품의 선전은 이례적이다. 코티나 버틀러 영국문화원 문학부장은 “번역물 비중이 2.5%에 불과한 영국 서점가에서도 <엄마를 부탁해>나 <마당을 나온 암탉>과 같은 한국 문학작품이 베스트셀러로 분명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의 정서 등 분명한 개성을 지닌 한국 문학은 갈수록 많은 영국인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말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과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의 국외 판권 판매를 담당해온 이구용 케이엘매니지먼트 대표는 “영국은 외국 작가의 문학작품에 대해 미국보다 더 보수적인 풍토여서 그동안 한국 작가들을 포함한 다른 문화권 작가들이 진출하기 어려웠는데 최근 황선미 작가가 한달 만에 서점 판매 1위를 차지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영국에는 현재 <엄마…>와 <마당…>을 비롯해 한강의 <채식주의자>,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영국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상태다. 이정명의 <별을 스치는 바람>, 안도현의 <연어>도 판권 계약을 완료해 곧 영국 서점가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된다.
런던/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 한겨레신문 201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