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4-10 10:26
[사설] 세계서 인정받는 문화 한류, 제대로 뒷받침해야
   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4/04/10/13987473.html?cloc=ol… [331]
올 런던도서전에 주빈국으로 나선 한국이 깜짝 화제가 된 책 덕분에 출판 한류 바람을 일으켰다. ‘주빈국’이란 영어 문자 그대로 마켓 포커스(market focus)가 된 셈이다. 한국 출판물이 현지 주요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가 하면 판권 상담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 출판시장에서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했던 한국이 문학과 출판물을 내세운 ‘콘텐트 코리아’의 기지개를 켜는 모양새다.

 8일 런던 얼스코트 전시장에서 막을 올린 제43회 런던도서전 ‘오늘의 작가’로 선정된 황선미씨의 『마당을 나온 암탉』 영어판은 영국 대형서점 포일스의 워털루점 종합베스트 1위에 올랐다. 또 다른 대형서점 워터스톤에서는 ‘3월의 책’으로 뽑혔다. 비영어권 문학에 배타적인 영국 출판 시장 벽을 한국 소설이 뚫은 것이다. 모성이라는 낯익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비극적 결말로 깊은 인상을 남긴 『 … 암탉』은 이질적인 문화 차이를 보편성 깊이로 극복했다.

 이미 전 세계에 두루 퍼진 K팝과 드라마, 영화와 게임을 즐기며 한국 문화의 가벼움을 맛본 외국인들이 이제 한국 문학과 출판물을 읽으며 그 이면의 무게를 헤아리게 시작했다. 이번 런던도서전은 그 물꼬를 트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주빈국 작가로 초대받은 소설가와 시인들이 ‘좋은 번역’의 중요성과 그 부족함을 입 모아 강조했다지만 번역 이전에 원전의 완성도를 다시 되짚어 보는 것도 필요한 시점이다. ‘마음을 여는 책, 미래를 여는 문’이란 주빈국 주제는 이런 점에서 출판 한류의 꿈을 대변한다.

 문화융성을 국정기조로 제시한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국민과 예술인들이 더 체감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동안 문화 한류의 길을 내고 세계인의 눈길을 끌어 모은 건 대체로 문화인 개개인의 피땀 어린 노력 덕이었다. 나랏돈 한 푼 만져본 일 없는 가난한 예술가들은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를 헤쳐 나가느라 예술혼을 맘껏 발휘하지 못한 측면이 많다. 도와주지 않아도 좋으니 창작의 자유만 보장해 달라는 예술인들 호소는 귀 기울일 구석이 많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새해 주요 업무 중 하나로 콘텐트의 고부가가치 성장산업화를 내세우며 신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문화기술 개발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영화, 게임, 음악, 뮤지컬, 애니·캐릭터 등 5대 킬러콘텐트 육성을 통한 한류 재점화도 다짐했다. 이번 런던도서전은 문화가 구호나 지원을 먹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행정은 통치행위로서 예술을 이용하려 하지만 예술은 체질상 행정을 믿지 않는다. 문화가 창조경제의 한 축으로 작동하려면 문화융성 같은 행정 캠페인보다는 예술혼을 향한 허심탄회한 존중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앞서가는 예술가를 따라잡으려면 행정도 아트의 수준으로 발전해야 한다. 세계로 뻗어가는 문화 한류를 뒷받침할 행정 아트를 기대한다.



- 중앙일보 2014.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