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10-22 12:12
[기록이 없는 나라]<3> 설문조사 : 53개기관 실태조사
세계일보 2004년 6월 2일

<세계일보 참여연대 공동기획>
◆특별기획취재팀=채희창, 박병진, 주춘렬, 김형구, 이우승기자 (specials@segye.com)


<3-1>부처당 年평균 3만8000권 국가기록문서 무단폐기

우리나라 국가기관들은 한 곳당 연간 3만8000권 가량의 기록물을 무단 폐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국가기록의 근간인 영구보존기록물은 한해 동안 고작 600권에 불과해 ‘기록 불감증’이 심각했다. 또한 청와대와 국무조정실·교육인적자원부 등 중앙부처 10곳의 문서고가 20평에도 미치지 못했고, 국가기관 두 곳 중 한 곳은 기록물 보관에 치명적인 습기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특히 기록물관리법에 명시된 전문인력이나 자료관을 갖춘 곳은 거의 없었다. 이같은 사실은 세계일보가 지난 5월11일부터 24일까지 중앙부처 18개와 광역시·도청 16곳 등 국가기관 53곳(응답기관은 45곳)을 대상으로 기록물 생산·관리 실태를 설문조사한 결과, 밝혀졌다.

조사결과, 응답기관 중 34곳은 2002년 이후 2년4개월여동안 폐기대상 기록물 336만7375권 중 97%인 326만7603권을 폐기했고 나머지 9만9705권(3%)을 보존했다. 기관별 연평균 기준(2004년 폐기분 6개 기관, 61만962권 제외)으로는 한 곳당 폐기문서가 3만8221권에 이른다. 통상 기록 1건은 A4용지 12장 분량이고 20건이 모여 1권이 된다. 그러나 문서폐기심의에 기록물 전문요원이 참여한 사례는 한 번도 없었고 아예 심의회를 구성하지 않은 기관도 국무조정실·재정경제부·산업자원부·금융감독위원회 등 4곳에 달했다.

반면 영구보존기록물은 2000년 이후 3년동안 39개 기관에서 7만3750권이 생산됐다. 행정기관 한 곳이 한해 동안 평균 603권 가량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특히 과학기술부(연평균 8권)·재정경제부(37권)·산업자원부(34권)·여성부(10권)·정보통신부(39권)·국세청(22권) 등 6곳은 50권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같은 사실은 기록물관리법이 2000년부터 시행됐지만 과거 행정편의 위주의 문서폐기 관행이 여전하고 기록의식도 박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가기관의 문서설비와 관리분야도 극히 부실, 기록물관리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 청와대의 문서고가 15평인 것을 비롯하여 ▲국무조정실(8평) ▲교육부(10평) ▲법무부(14평) ▲과학기술부(15평) ▲정보통신부(16평) ▲해양수산부(17평) 등 핵심 부처들이 하위권을 기록했다.

또한 올 연말이 설치시한인 자료관(체계적인 자료관리가 가능한 신종 서고)을 마련하지 못한 기관은 41곳에 이르렀고 준비작업도 예산부족 탓에 지지부진했다.


<3-2>설문조사:53개기관 실태조사 - 국가기록 대충심사 휴지처럼 폐기

국가기록관리가 총체적 부실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국가기관들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멋대로 문서를 버리는가 하면 기록작성·보관원칙을 지키는 곳도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기록 전반에 걸쳐 법과 현실이 따로 놀고 있는 난맥상이 고스란히 포착된 셈이다.

심각한 것은 정부가 오락가락하는 기록관리정책과 탁상행정으로 일관하며 청사진만 남발, 국가기록의 부실을 더욱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기록생산·보존·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고 정부의 기록의식마저 마비된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마구 버리고, 기록은 인색=가장 주목할 대목은 폐기대상문서 100권 가운데 97권이 폐기되고 3권가량만 보존판정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폐기심의회가 형식적으로 열리고 과거처럼 보존기한만 채우면 무조건 버리는 관행이 여전하다는 반증이다. 실제 심의회에 앞서 법에 명시된 전문요원의 사전심의는 한번도 열리지 않았고 8곳은 심의회를 열지 않거나 아예 구성하지도 않았다. 또 응답기관 중 31곳은 폐기기준이 없다고 밝혔고 그 이유로 각 처리과의 의견을 수용(13곳)하거나 필요없다(3곳)고 응답했다.

반면 기록에는 극히 인색하다. 영구보존 기록물은 한 곳당 ▲2000년 570권 ▲2001년 494권 ▲2002년 745권 등으로 연평균 603권에 머물렀다. 이는 영구보존기록물의 분류잣대에 비춰볼 때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현재 기록물관리법에는 영구보존문서기준이 ▲법령제개정 혹은 중요한 정책이 결정·변경된 사안 ▲주요 조약 협약협정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사업·공사 ▲국회 또는 국무회의 심의 사항 ▲다수 국민이 관심을 갖는 주요 사건 또는 사고 ▲토지 등 장기존속물건 또는 재산관련사안 ▲역사자료가치 등 무려 31가지에 달하고 대상도 문서와 회의록, 사진 등이 모두 망라돼 있다.

특히 중앙부처의 영구보존기록물은 524권으로 지자체 738권을 크게 밑돌았다. 오히려 국가정책결정의 핵심인 중앙부처의 기록자산이 지자체에 비해 빈곤하다는 얘기다.

◆‘기록맨’이 없다=인력난은 기록부실의 주범 중 하나로 꼽힌다. 문서관리인력은 한 곳당 4.6명에 불과했고 5∼7급 공무원 혼자 전담하는 곳도 14곳에 달했다. 특히 중앙은 3.2명으로 지방 6.5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전문요원배치를 둘러싼 혼선은 정부의 부실한 문서관리정책과 탁상행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전문요원제도란 행정기관마다 체계적인 문서관리능력과 기록물관리학 석사학위 등 자격증을 갖춘 전문가를 한 명 이상 배치하는 것으로 시행시기가 당초 2000년에서 우여곡절 끝에 2004년 말(지방은 2006년 말)로 늦춰졌다. 그러나 이번 조사결과, 올 연말까지 전문인력을 배치한다는 응답은 11곳에 불과했다.

전문인력배치의 애로사항으로는 인사제도미비가 21곳(이하 복수응답)으로 가장 많았고 ▲전문인력 수급부족(14곳) ▲예산부족(3곳) ▲행자부와 국가기록원의 비협조(2곳) ▲기관장 등 기관내 이해부족(1곳)의 순이었다. 정부가 인사제도나 전문인력 확보 등 준비작업도 없이 ‘공수표’만 남발하며 기록부실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장밋빛’ 기록물관리법=문서보존시설도 사정이 비슷하다. ‘신종 서고’인 자료관을 갖춘 기관은 극히 드물었고 제습기·보안·소독 등 관련시설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실제 올 연말까지 자료관을 설치한다는 응답은 17곳에 달했지만 이 중 실제 예산이 반영된 곳은 재경부·외교통상부 등 8곳에 불과했다. 또 ▲2005년 중(7곳) 혹은 ▲2006년 이후(2곳)에 설치하거나 ▲아직 계획이 정해지지 않았다(4곳)는 응답도 14곳에 이르렀고 11곳은 설치여부조차 불투명했다. 당초 2004년 말로 정해진 자료관설치작업도 지지부진한 셈이다. 또한 조사대상기관 중 20곳은 항온항습기와 제습기를 설치하지 않아 사실상 ‘창고’나 다름없었다. 보안장치가 없는 곳도 16곳에 달했다.

결국 중앙부처와 지자체 가릴 것 없이 기록물의 생산·보존·관리·폐기 등 전반에 걸쳐 위법·편법이 만연, 국가기록의 부실이 심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정부 내부에서는 ‘기록물관리법’과 기록물관리정책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중앙부처의 한 기록물담당자는 “(기록물관리법의 경우) 마치 중학생보고 대학입학시험을 치르게 하는 격으로 현실성을 상실한 장밋빛 법률”이라고 말했다.

◇행정자치부(삼풍사고 관계철·유흥업소 잔존부조리 척결·제2의 건국 관련 계획서철), 재정경제부(국민연금법 개정 관련철), 서울시청(북한산 형질변경 반대 관련철) 등 주요 행정기관에서 폐기처분된 주요 국가기록물 목록. 폐기심의회가 열렸다는 기록이 없고, 폐기심사 의견 및 사유도 뚜렷이 적시되지 않은 채 빈칸으로 남아 있다.


◆ 설문 어떻게 했나

53개 행정기관 대상…한달간 46개항 조사

세계일보와 참여연대가 공동기획, 53개 행정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는 방대한 작업이었다. 지난 4월 29일 최초 설문조사 준비모임을 가진 뒤 설문조사지 배포, 회신, 답변 분석에 이르는 전 과정이 약 한 달 만인 5월 24일에야 끝났다.

이번 설문조사는 각급 행정기관별로 ▲기록물 관리 실태 ▲자료관 구축 현황 ▲기록물 업무담당자 인력 현황 ▲기록물 보존 및 폐기 현황 등을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객관식과 단답형 등 모두 46개 문항에 달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설문조사지를 5월 11∼12일 행정기관 기록물관리 담당 공무원에게 전자메일로 보냈고, 19일 청와대를 끝으로 설문지 회신이 완료돼 취재팀과 참여연대, 기록물관리 전문가들이 모여 답변 분석작업을 벌였다. 조사 대상기관도 ▲중앙행정기관 29곳 ▲광역 시도, 지방자치단체 16곳 ▲국회·법원행정처 등 특수기록물관리기관 8곳 등 53곳에 이르렀는데, 이 중 통일부와 국가정보원 등 8곳이 답변을 거부했다.


<3-3>통일부 "국감하겠다는 거냐" 거부, 국정원·헌재등 7개기관도 답변 불가

이번 설문조사 대상에 오른 각 행정기관은 “도대체 왜 하는 것이냐”며 설문조사 이유를 거듭 물어왔다. 기관별로 기록물의 생산→보존→폐기에 이르는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해도, 상당수 기관의 공무원들은 “꼭 해야만 하느냐”, “기사는 어떤 방향으로 쓰려고 그러느냐”며 내키지 않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최초 설문 대상 53개 기관 가운데 가장 먼저 ‘답변 불가’라는 회신을 보내온 곳은 국가정보원이었다. 지난달 12일 이메일을 통해 보낸 설문조사를 받아본 다음날 국정원 공보과는 취재팀에게 전화를 걸어와 “보안문제와 관련된 사항이 많아 설문에 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헌법재판소·중앙선거관리위원회·법원행정처와 육·해·공군 등 나머지 6개 특수기록물관리기관도 “기록관리 시스템 자체가 일반 행정기관과 달라 조사내용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 등으로 답변에 응하지 않았다.

18개 장관급 부처 가운데 유일하게 통일부가 답변을 거부했다. 통일부 측은 “국정감사를 하겠다는 거냐”며 반문한 뒤 “설문내용이 지나치게 세밀하고 너무 많은 걸 요구해 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광역 시·도 등 지방 자치단체가 답변지를 비교적 일찍, 그리고 성실하게 작성해 보내온 데 반해 청와대와 법무부 등 ‘힘 있는’ 기관들은 답변을 늦게 보내왔다. 설문 문항의 취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정확한 답변을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때문에 답변지가 회신된 뒤에도 제2, 제3의 추가 통화를 거듭한 뒤에야 현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기록물관리 담당 직원이 대부분 1∼2년 만에 자리이동하는 탓에 전문성이 떨어진 데다 서무 등 다른 업무를 겸직하고 있어 자신이 속한 기관의 기록물 업무 자체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3-4>힘있는 부처일수록 문서관리 엉망, 중앙부처 난맥상

청와대, 법무부, 행정자치부, 국무조정실 등 국가정책의 핵심 기관일수록, 그리고 ‘힘 있는’ 부처일수록 국가기록관리는 낙제점 수준이었다.
정부 부처 대부분의 기록관리시스템이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등 경제부처들에서는 기록의식마저 극히 희박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15개 중앙부처의 기록물담당공무원이 어처구니없게도 단 한 명이었고 문서고 등 기록 인프라까지 극히 취약했다. 전 부처에 만연된 ‘기록불감증’과 열악한 설비가 기록의 빈곤화를 가속화시키는 악순환이 빚어지고 있다.

◆청와대부터 낙제점=최고의 핵심권부인 청와대조차 기록물관리법의 사각지대였다. 청와대는 기록물관리전문요원에 대해서도 “2005년 중 배치하겠다”고 답했다. 이는 중앙행정기관의 경우 늦어도 올해 말까지 최소 1명 이상을 배치해야 한다는 기록물관리법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또한 영구보존문서량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전자파일형식이어서 산출이 어렵다’는 군색한 변명으로 응답을 피해갔다. 문서고의 평수도 15평에 불과했다. 청와대 국정기록비서관실 배이철 계장은 “5년 단위로 주인이 바뀌는 청와대의 특수성 탓에 문서고로 들어오는 문서량이 적어 큰 평수가 필요치 않다”고 해명했다.

기록관리정책의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 역시 법을 위반하는 파격을 보였다. 행자부는 기록물폐기심의위원회를 ‘서면심의’로 대체, 전문요원의 심사 없이 문서를 버리고 있었던 것. 실제 행자부의 경우 2002년 폐기대상 기록물 6137권이 한 권도 남김없이 모두 폐기됐다.

특히 1996년 김영삼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신경제장기구상 총괄정책’을 비롯,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관계철(96년 생산) ▲유흥업소 잔존부조리 척결관련 문서(〃) ▲국가재난관리계획수립서(〃) 등이 이때 ‘보존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폐기처분됐다. 참여연대 이재명 투명사회팀장은 “행자부부터 국가기록물을 ‘휴지 버리듯’ 폐기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서면심의만으로도 2002년과 2004년 각각 29만6383권, 12만4049권이나 처분, 폐기물 수위를 차지했다. 감사원 측은 “타부처와 달리 감사대상기관들이 제출한 각종 영수증과 보존연한이 5∼10년인 감사증거자료의 폐기물량이 많은 데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공룡 부처의 ‘초미니 서고’=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도 사정이 비슷했다. 국조실의 경우 문서고의 면적이 8평으로 조사대상기관 중 가장 적었고 기록물담당인력도 1명뿐이었다. 또한 폐기심의위원회조차 구성되지 않아 기록관리체계가 ‘부재중’임을 입증했다.

교육 100년대계를 책임지는 교육인적자원부도 문서고 평수가 10평이고 최근 3년간 폐기심의위원회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자료관도 2005년에야 설치한다는 게 교육부의 답변이다.

나머지 메이저 부처들도 ‘기록인프라’가 옹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법무부와 조만간 부총리 격상이 예고된 과학기술부가 각각 14평, 15평에 불과했고 환경부와 노동부는 각각 20평, 29평에 머물렀다. 신생 부처인 여성부도 아예 문서고가 없었다. 반면 외교통상부와 국방부는 295평, 61평으로 비교적 넉넉했고 경찰청과 대검찰청도 60평, 44평에 이르렀다. 명지대 김익한 교수(기록관리학과)는 “부처에서 생산한 기록물이 제때 이관되지 않고 캐비닛에 쌓여있는 게 사실”이라며 “기록물의 이관·관리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부처는 일 안한다?=기획예산처는 2002년 이후 영구보존기록물을 한 건도 작성하지 않았다는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이는 예산당국의 업무 중 국회나 국무회의에서 심의한 안건(기록물관리법 15조)이 하나도 없고 연간업무계획도 없다는 얘기다. 예산처가 영구보존문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기록물관리법을 알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일 많기로 소문난 재정경제부도 연간 영구보존문서가 고작 37권에 불과했고 ▲공정거래위원회(5권) ▲산업자원부(34권) ▲정보통신부(39권) ▲국세청(22권) 등도 기록문서의 잣대로만 따진다면 ‘일하지 않는 부처’인 셈이다.

경제와 업무효율성에 밝은 부처일수록 기록자산이 경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면 문화관광부와 농림부는 영구문서가 각각 2503권과 542권에 달한다고 응답해 대조를 보였다.

<3-5>"목록 따로 문건 따로 정보공개요청 겁나요”

“솔직히 정보공개요청이 겁납니다. 직원이 다 달라붙어도 기록물을 찾는 데 하루종일 걸립니다. 목록에는 있어도 실제 문서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죠.” A광역시의 기록물관리담당자가 토로했던 말이다. 지방 역시 기록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설문조사결과에서도 지방기록의 부실상태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광역시와 도청 등 지자체의 연간 폐기문서량은 한 곳당 평균 5만8420권으로 중앙 2만2941권의 두 배를 웃돈다. 그러나 폐기심의회 때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는 곳이 강원·충남·충북·대구·광주·제주·인천·부산 등 모두 8곳에 이르렀다.

또 폐기기준이 없다는 응답도 11곳이었고 이 중 6곳(인천·경북·경남·울산·광주·제주)은 해당과의 의견을 받아들여 폐기한다고 답했다. 지방에서도 폐기심의회가 통과의례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실제 서울은 2002∼2003년 중 심의대상물 14만4473권을 전량 폐기했고 ▲경남(5만6733권) ▲광주(1만1800권) ▲전남(3만9100권) ▲제주(8169권)도 보존문서가 한 권도 없었다.

다만 지방의 문서보존과 설비는 중앙쪽보다는 한결 나은 편이다. 문서관리인력은 평균 6.5명으로 중앙(3.2명)보다 2배 이상 많고 문서고 면적도 중앙(56.6평)의 3배에 육박하는 146.3평에 이른다. 서울의 경우 무려 701평에 이르고 ▲부산(277평) ▲경남(197평) ▲경기(165평) ▲전북(150평) ▲대구(138평) ▲인천(110평) ▲충북(108평)등도 100평을 웃돌았다. 김한욱 국가기록원장은 “(기록물관리는)광역시·도가 중앙부처보다 더 잘되고 있다”며 “중앙부처는 업무가 많은 반면 광역시도는 별도 인력을 둘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딴판이다. B광역시의 기록물담당자는 “기록물관리부서는 힘들면서도 생색이 나지 않는 곳”이라며 “이 부서에 배치된 공무원들은 다들 나가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어 업무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방에서도 기록물관리가 대표적 기피부서로 천덕꾸러기로 취급되는 셈이다.

문서이관도 겉돌기는 마찬가지다. 문서이관의 애로사항으로는 각 처리과 직원의 인식부족이 12곳(이하 중복응답)으로 가장 많았고 제재 등 제도적 장치(5곳)와 장소협소(1곳)라는 응답도 나왔다.

C도청의 한 기록물담당자는 “해당과의 기록의식도 부족하지만 실제 문서가 작성 2년 후 원칙대로 넘어와도 문제”라며 “문서고 처리능력이 30% 수준에 불과해 감당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중앙부처에 비해 보존서고가 비교적 넉넉한 지방도 문서들이 역시 각 처리과의 캐비닛에 수북이 쌓인 채 방치되고 있다는 얘기다. 보존서고설비 역시 취약했다.

인천·충북·전북의 문서고는 항온항습기나 제습기가 없어 습기에 무방비였고 소독장치도 서울·충남·전북 등 3곳을 빼고는 모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