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6-11 10:26
[한마당-정진영]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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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기억은 잘 지워지지 않지만 변하는 반면 기록은 지워질 수 있지만 변하지 않는다. ‘사실(팩트)’이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나 현상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이유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백서’가 주로 활용됐다. 디지털이 일상화된 요즘은 그 형태가 ‘아카이브(Archive)’로 진화됐다. 아카이브는 특정 장르의 자료를 수집·보존·관리·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창고나 기록관, 보관소 등을 뜻한다. 하드웨어만이 아니라 자료 그 자체만을 지칭하기도 한다. 미국의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영국 국립기록보존소, 우리나라 국가기록원 등 국가기록 기관의 영문 명칭에는 예외 없이 ‘아카이브스(Archives)’가 들어 있다.

아카이브는 이미 역사를 복원 또는 저장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잊어서 안 되는 역사는 그것이 자랑스러운 것이든, 부끄러운 것이든 기억에서 빼내 기록으로 만드는 작업이 아카이브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나 공공기관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재 추진 중인 5·18광주민주화운동 아카이브가 대표적이다. 5·18 아카이브설립추진위원회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5·18 관련 기록물을 영구 보존할 수 있는 수장고를 비롯해 전시관, 열람실 등을 만들기로 하고 지난달 13일 기공식을 했다. 외국에서는 시민사회의 자발성이 아카이브 활성화의 밑거름이다. 미국인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성찰하기 위해 ‘아큐파이 아카이브(Occupy Archive)’를 만들었고, 보스턴 마라톤 참사 직후에는 ‘아워 마라톤(Our Marathon)’을 통해 공공 안전의 중요성을 논의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아카이브가 지난 8일 첫발을 뗐다. 사실상 국내에서 처음 전적으로 시민사회가 중심이 된 아카이브다. 사고 초기부터 진도 팽목항에서 사고 원인, 구조작업 자료와 함께 자원봉사자 및 유족 목소리 등을 채록해 온 시민단체와 기록관리단체 20여곳이 모여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민네트워크(http://sewolho-archives.org)’를 조직한 것이다. 시민네트워크는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의 연립주택에 ‘세월호 기억저장소’를 만들기로 했다. 직접 모았거나 제공받은 구술, 사진, 기록, 동영상 등을 이곳에 전시할 계획이다. 희생자들의 사연과 진상 규명을 위한 자료를 바탕으로 ‘개인의 기억’을 ‘사회적 기록’으로 자리매김한다는 복안이다. 기록되면 반드시 기억된다는 것이 시민네트워크의 믿음이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 국민일보 2014.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