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6-16 10:11
[한마당-김나래] 지혜의 숲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2709017&code=11171211… [352]
오는 19일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에 ‘지혜의 숲’ 문이 열린다. 말만 들어도 근사한 이름의 이곳은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와 게스트하우스 지지향의 로비 공간을 활용해 만든 24시간 개방형 도서관이다. 저자와 편집자 등이 애써 만든 종이책이 쉽게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까워 김언호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이 주도해 만들었다.

2600여평 규모에 천장 높이 6.5m까지 빽빽하게 채운 서가 길이만 3.1㎞다.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를 설계한 김병윤 대전대 교수가 원목 재질을 이용해 미로 같은 공간에 ㄱㄴㄷ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접목해 매력적인 공간으로 탄생시켰다.

기증받은 책 50만권 중 20만권을 먼저 꽂았다. 주요 출판사의 신간 코너, 유통사와 출판사가 기증한 도서 코너, 개인 기증자 코너로 구성됐다. 개인 기증자 코너는 다른 도서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공간이다. 한경구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학부장을 비롯해 유초하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등 학자 30여명이 평생 소장했던 책들을 보내왔다. 개인 서재를 옮겨온 듯 기증받은 그대로 진열한다. 서재에 꽂혀 있는 전공서와 인문학, 예술서를 보면서 학자들의 지적 세계를 엿보는 즐거움을 선사하겠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말 근사하다. ‘지식의 리사이클링’이라는 발상도 신선하다. 하지만 실제 운영 과정을 생각할 때 걱정스러운 점이 적잖다.

무엇보다 책임지고 이곳을 운영 관리하는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곳을 ‘인문적 르네상스를 도모하는 기지’로 만들겠다는 출판인의 발상에 국회가 호응해 도서관 건립에 7억원, 인문학 관련 행사 비용으로 2억원의 예산을 확보했지만 운영비를 감당하기엔 턱없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전문 사서 대신 최소한의 경비만 받고 책 관리를 돕는 일종의 자원봉사제도 ‘권독사’를 도입했다.

또 2층 높이의 서가는 보기엔 멋있지만 높은 곳의 책을 꺼내보기엔 불편하다. 기존 도서관처럼 책을 분류하고 바코드를 찍어 관리하는 게 아니라 검색이 쉽지 않을 뿐더러 책 분실마저 우려된다. ‘책의 무덤’이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는 이유다. 과연 ‘책의 무덤’이 아니라 책에 파묻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을 새우는 아름다운 경험을 선사하는 ‘지혜의 숲’으로 남을 수 있을까. 인문학 부흥을 외치지만 정작 도서 관련 예산에는 짜디짠 정부만 쳐다볼 순 없기에, 일단 책을 사랑하는 이용자들의 참여와 양심을 믿어보는 수밖에.

- 국민일보 2014.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