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6-18 10:35
[청사초롱-이기웅] 책 만들기로 구원받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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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니, 올해로 책 만드는 일을 한 지 마흔여덟 해가 된다. 어언 반세기에 이른 것이다. 어쭙잖게 책에 뜻을 두기 시작한 어린 시절부터 따진다면 육십갑자를 넘기고도 남았을 것이니, 오랜 책과의 세월들이 나의 몸과 마음에 배었을 터이다.

예로부터 어른들은 책 엮는 일이야말로 ‘숭고한 일’이라 우릴 가르쳐 왔다. 어디 산 어른들뿐인가. 온갖 죽은 어른들이 고전 속에서 외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책이 과연 숭고한 존재인가. 이런 반성이 요즈음 내 머리를 흔들고 가슴을 친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오늘의 이 처연한 슬픔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아야 한다면? 천직처럼 살아온 책장이로서 한 권의 진정한 책을 엮음으로써 나락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내 인생을 구원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文字 발명은 위대한 역사

‘인간’이라는 제복을 지어 입고 자신의 어깨에 ‘만물의 영장’이라는 화려한 계급장을 제 손으로 붙이고는 ‘숭고한 책의 문화’ 어쩌고 하는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면, 답답한 구석이 한둘 아님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허가증을 지니고는 온갖 못된 짓을 서슴없이 해 대고 있지 아니한가.

모든 책이 숭고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책들이 숭고함과는 동떨어져 있다면? 책 만드는 인간들이 숭고한 척 자기최면을 걸고 있는 놀라운 위장술이 백일하에 드러난다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어 우주가 열리고,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나면서 그들은 혼돈과 무질서의 우주적 시간을 헤쳐 뚫고 지금으로부터 삼천년도 넘는 앞선 시기에 소중한 문자(文字)를 만들어 내었으니, 인간의 정신은 참으로 위대하였다. 갑골문자와 수메르문자, 이집트문자가 그것이었다. 그 문자가 역사를 거듭하면서 일정한 종이책의 양식을 창안해 가다듬어 왔고, 우리는 인류 유산 가운데서도 가장 중심인 기록문화, 책으로 금자탑을 쌓아 왔다. 그런데 오늘의 출판문화는 어떠한가.

책은 말을 담는 ‘종이그릇’이다. 책의 유형에 따라 종이보시기도 있고 종이접시, 종이대접, 종이항아리도 있다. 그릇에 담길 음식물들, 곧 책의 내용과 성격에 따라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그릇의 꼴, 곧 책의 형태와 모습이 다양하게 갖추어진 것이다.

내 어릴 적 고향집 선교장(船橋莊)에서 할머니와 마주한 오첩반상은 과장이 없고 쓸데없는 장식이 보이지 않는, 요즈음 밥상에 견주어 매우 고전적이었다고 기억된다. 할머니가 풍기는 격조의 세계는 ‘절제’와 ‘균형’과 ‘조화’가 무엇인지를 말없이 가르쳐 주었고, 여기에 덧붙여야 할 또 한마디, ‘사랑’이 있었다. 이 네 마디 어휘는 밥상에만 머물지 않고 내 삶의 온갖 데에 스며들어, 오늘의 내 인생의 주제가 되고 말았다. 하여, 그것은 끝내 나의 책 만들기 안으로 깊이깊이 스며들었을 것이다. 한데, 이 밥상 차리는 내 꼴이 뭐란 말인가. 귀한 힘으로 우리 인생을 이끌어야 할 ‘말’과 ‘글’과 ‘책’은 나의 주위, 이 세상거리에 쓰레기처럼 흘러넘치고 있지 않은가. 길거리 정치구호들은 얼마나 유치하고 위태로운가. 갖가지 간판과 플래카드, 흔해빠진 서책과 무책임한 팸플릿에 담긴 글의 내용은 물론이요 과장되고 부풀려진 글자꼴과 유치한 색깔들은 우리의 정서와 삶의 터전 곳곳을 심히 망쳐 놓고 있다.

사람들이 말을 아꼈으면

세상이, 사람들이 말과 생각을 아꼈으면 한다. 아무짝에도 쓰일 데 없을 말들로 허비되는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지. 종이도 아끼다 보면 사람도 아껴지고 책도 아껴지겠지. 초심으로 돌아가 숭고한 뜻을 찾아 깊이 정성들여 책을 만든다면 구원받을 수 있지 않을까.

아, 내 여생이 책의 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면.

이기웅 열화당 대표

- 국민일보 2014.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