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9-22 11:48
강변을 독점하지 않고 풍경 거스르지도 않는 주민 쉼터 겸 지식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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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상부와 하부 사이의 비워져 있는 공간이 프레임이 돼 하늘과 강을 하나의 풍경으로 엮어준다. 사진 임여진


극성맞은 비바람을 뚫고 비아나 두 카스텔로(Viana do Castelo) 도서관에 도착했다. 날씨로만 보자면 ‘산책’이라기보다 ‘탐험’에 가까운 방문이다. 리마 강변을 따라 가까이 가니, 어둑한 날씨에 하얀색 콘크리트로 된 도서관만 도드라져 보인다. 2008년 1월 문을 연 이 도서관은 스페인 국경과 맞닿아 있는 포르투갈 북서부의 휴양도시 비아나 두 카스텔로의 시립 도서관이다.

인구 9만명 규모의 비아나 두 카스텔로는 13세기에 만들어진 도시다. 서쪽은 대서양이, 남쪽은 리마 강변이 경계를 두르고 있다. 대항해 시대 이후 교역에서 주요 역할을 했기에, 도시는 배를 들이는 남쪽 강 하구를 중심으로 시가지-배후 농지-산이 내륙으로 켜켜이 연결돼 있다. 이런 도시구조 때문에 비아나 두 카스텔로 시 정부는 도시를 생기 있게 만들기 위해 이 도시에 정체성을 주는 강변(waterfront)을 재생하기로 하고, 포르투갈 현대 건축의 선구자로 불리는 건축가 페르난도 타보라에게 도시재생계획을 맡겼다.

알바로 시자 1933년 포르투갈 포르투 출생.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으로 불린다. 세할베스 현대미술관, 아베이루 대학 도서관 등 각국에 지은 건축물로 유명하다. 1992년 포르투갈 건축가로서는 최초로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2005년 한국 안양예술공원에 ‘알바로 시자홀’을 설계하면서 국내에도 친근하다. 2012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타보라의 복안은 문화복지 시설과 공원을 강변에 긴 띠처럼 배치하고 도시의 중심지와 연결하는 것이었다. 그는 세 가지 주요 건물을 강변에 뒀다. 중심의 복합 문화공간은 마스터플랜을 제시한 건축가 타보라, 체육관은 건축가 소투 드 모라, 그리고 도서관은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맡아 설계했다. 건축계의 노벨상 격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두 명의 건축가와 이 건축가들 앞에서 초석을 놓은 선배 건축가 타보라의 작업이 마치 포르투갈 건축의 세대별 연혁처럼 줄지어 있는 것이 흥미롭다.

도서관 내부. 건물을 환형(環形)으로 관통하는 중앙 통로 위로 천창이 나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
상업건물이 강변 전면 차지하는 개발 지양
각각의 문화시설은 마당·광장·공원을 두고 서로 이어져 있다. 이 리마 강변 재생계획은 쇼핑·식당가·호텔·컨퍼런스·주상복합 같은 상업 건물이 강변 전면에 도열해 있는 요즘의 ‘워터프론트 개발’과 정반대의 태도다.

상업적 이윤에 쉽사리 넘겨줄 만한 강가라는 땅에 이윤과 거리가 있는 공공의 건축물과 광장, 공원을 세우는 계획. 이것이 이 도서관의 출발점이라는 대목이 상당히 근사하다. 모두에게 가치 있는 공간이 도시의 얼굴이 된 것이다.

건축가 알바로 시자는 이 장소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 도서관을 계획했다. 그는 파주출판단지의 출판사 ‘미메시스’ 건물과 안양예술공원의 ‘안양 파빌리온’등의 설계로 한국에 얼굴을 이미 알렸다. 그는 언제나 집이 앉혀질 땅에 흥미를 느끼며, 그 땅에 질문하고,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건축으로 실현한다. 비아나 두 카스텔로 도서관을 계획하면서 그가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은 아마도 ‘도서관이 강변에 놓이되 혼자만 강을 점유하지 않는 방식은 무엇일까?’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해답으로 그는 지층과 닿는 부분을 최소화하면서 도서관 건물을 들어 올렸다.

땅으로부터 떠 있는 정사각형의 도서관 가운데에는 각 20m의 정방형 공간이 비워져 있다. 즉 네모난 도넛 모양 건물 아래에 강과 도시로 열려 있는 정원이 있는 형국이다. 정보 데스크와 아카이브가 있는 1층 건물은 정원을 피해 살짝 옆으로 밀려나 있다. 도서관의 주인장인 책을 보관하는 코너와 책 읽는 자리는 모두 떠 있는 2층에 있다.

건축가는 이 부유(浮遊)하는 책의 집을 통해 도시의 거리와 강가를 가깝게 이어주려 했다. 비어있는 도서관의 1층은 정원이다. 도서관 바깥까지 이어지는 잔디와 도서관 입구로 인도하는 바닥 돌, 그리고 나무 한 그루로 단출하게 구성돼 있다. 비 오는 날에는 내리는 비가, 날 좋을 때에는 차오른 햇빛이 비어있는 정원을 다채롭게 만든다. 사람들은 도서관에 가지 않더라도 열려 있는 도서관 정원을 통해 강가로 나간다.


강변 산책하다 자연스레 도서관으로 발길 이어져
반대로 강가를 산책하다가 자연스럽게 도서관에 들를 수도 있다. 우리가 방문했던 날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사람들에게 처마가 돼주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도서관의 비어있는 하부 공간이 액자가 돼 강변의 한 부분을 가두고 이 풍광을 그림처럼 만든다. 조금 더 가까이 가면 중앙 정원 상부의 열린 공간이 천장이 돼 하늘과 강을 동시에 볼 수 있다. 도서관은 이렇게 주변의 자연 경관과 하나의 풍경으로 엮인다.

가까운 강을 보고 도서관 2층 열람실로 올라가면 조금 더 먼 저편 강을 만날 수 있다. 사서가 있는 홀을 제외하고 책 읽는 열람실은 이 방 저 방으로 나뉘지 않고 네모난 환형(環形)을 이루며 하나의 공간으로 엮여 있다. 통로를 중심으로 한 편에는 중앙의 정원이, 다른 한 편으로는 바깥의 강과 시가지가 보이는 긴 창이 있다.

창의 높이는 의자에 앉았을 때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고, 보이는 풍광이 창틀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크기도 너무 크지 않게 했다. 시자는 집의 외부와 내부 사이를 맺어주는 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단지 빛을 들이기 위해 필요 이상의 창을 내는 것은 반대한다. 책 읽는데 부족한 빛은 가운데 통로 위 천장의 창문을 통해 은은하게 보완한다. 열람실 좌우로 길게 난 창은 오로지 경치를 바라보는 목적에 충실하다. 책을 읽다 피로해진 사람들은 눈을 들어 먼 강을 바라보며 휴식한다. 공공건축 중에서 도서관만큼 사람들이 그 안에서 오래 머무는 건물이 없다고 할 때, 책 읽는 틈틈이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이들의 긴 시간을 풍요롭게 채워줄 것이다.

앉아 있기 지루하다면 하릴없이 열람실을 돌아다닐 차례다. 공간 전체가 ‘책장’과 ‘책장 사이’로만 구성돼 있어서, 책으로 난 길을 산책하는 기분이다. 양쪽의 책장과 책장 사이가 열람실 전체를 연결하는 길이고, 또 한편 책장과 책장 사이가 책 읽는 자리다. 단순한 구성이지만, 책장과 가구에 따라서 공간은 지루하지 않고 다채롭다. 잡지가 있는 책의 자리는 평대 형식의 책장과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낮은 라운지 의자가 놓이고, 디지털 자료가 있는 곳에는 개인용 책상이 놓인다. 반대로 일반 자료가 놓인 곳에는 여럿이 나눠 쓰는 책상과 의자가 있다. 도서관에서 제일 중요한 책과 책을 보는 방식이 공간을 정의하는 기준이 되는 그야말로 책의 집’이다.


강예린·이치훈 건축가 부부.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SOA)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도서관 산책자』『세도시 이야기(공저)』를 썼다


- 중앙선데이 2014.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