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11-07 13:38
'개벽'부터 '판타스틱'까지…시대를 비추는 창, 잡지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110615311 [377]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
천정환 지음 / 마음산책 / 824쪽 / 3만5000원

‘도합 칠십이호를 내는 중에 발매 금지가 삼십사 회, 거기에 또 벌금, 또 정간, 오히려 부죡하야 그들은 우리의 손에 수갑을 채워 종로 네거리를 걸리고 잔학하게도 <개벽>을 우리들의 손으로부터 빼앗었다.’

1925년 폐간됐다가 1946년 1월1일자로 복간된 잡지 ‘개벽’의 복간사다. 한국 근대 잡지 역사를 대표하는 1920년대의 종합지였던 ‘개벽’은 1920년 창간돼 1925년 8월 72호를 끝으로 폐간당했다. 복간된 ‘개벽’은 1920년대처럼 월간을 표방했으나 잡지는 띄엄띄엄 나왔다. 복간 2호는 3개월 뒤에 나왔고 3호는 무려 1년4개월이 지나서야 발행됐다. 잡지를 만들기 위한 종이가 부족한 데다 미군정이 종이 공급을 통제했기 때문이다.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발행된 잡지들을 통해 한국 현대 문화사를 바라보는 책이다. 저자인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1945~1949년, 1950년대 등 10년 단위로 시대를 나눠 126종·123편에 이르는 잡지 창간사에 담긴 문화와 지성을 읽어낸다.

1945년 12월1일 발행된 ‘백민’을 시작으로 ‘민성’ ‘사상’ ‘현대문학’ ‘씨알의 소리’ ‘뿌리 깊은 나무’ ‘새마을’ ‘문학과 지성’ ‘야담과 실화’ ‘선데이서울’ ‘보물섬’ ‘키노’ 등 잡지 종류도 다양하다. 민족지 정론지 문학지 노동지 오락지 예술지 만화잡지 등 모든 잡지를 망라했다.

저자가 잡지 창간사에 주목한 것은 “잡지의 제호와 창간사에는 그 잡지의 발행인 등이 시대와 사회를 어떻게 보는지, 왜 그 잡지를 창간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집약돼” 있어서다. 장준하 선생은 1953년 4월1일 창간한 ‘사상계’ 창간사에 해당하는 ‘사상계 헌장’에서 이렇게 밝혔다. “청년, 학생, 새로운 세대의 등불이 되고 지표가 됨을 지상과업으로 삼는 동시에 종(縱)으로는 오천년의 역사를 밝혀 우리의 전통을 바로잡고 횡으로 만방의 지적 소산을 매개하는 공기(公器)로서 자유, 평등, 번영의 민주사회 건설에 미력을 바치고자 한다.”

함석헌 선생은 1970년 ‘씨알의 소리’ 창간호에 ‘나는 왜 이 잡지를 내는가’라는 200자 원고지 73장 분량의 글을 통해 “미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하는 싸움”의 도구로 잡지를 만들겠다고 했다.

저자는 이들 잡지의 창간사뿐만 아니라 잡지가 발행된 시대적 배경과 발행 및 유통 현황, 지성계의 동향 등도 복원해냈다. 신문에 비해 자본이 적게 들고 뜻이 통하는 몇 사람만으로도 발간할 수 있었던 잡지는 저마다 견해와 관심을 반영하며 시대의 입과 귀로서 기능했다. 해방기에는 ‘민성’ ‘문학’ ‘학풍’ 등이 그랬고, 1960년대엔 ‘세대’ ‘인물계’ ‘정경문화’ ‘학생과학’ 등이 지성과 대중문화의 새로운 공간을 형성했다.

1970년대 유신정국에 ‘씨알의 소리’ ‘문학과 지성’ ‘뿌리깊은 나무’ 등이 창간됐고, 1980년대엔 ‘실천문학’ ‘녹두서평’ ‘노동문학’ ‘동향과 전망’ 등 사회운동을 위한 잡지가 대거 출현했다. 여성잡지인 ‘여원’, 학생잡지 ‘새소년’ ‘진학’ ‘여학생’, 전문잡지 ‘포토그라피’ ‘기계’ ‘디자인’ ‘계간미술’, 만화잡지인 ‘보물섬’ 등을 보며 기억을 더듬는 재미도 있다.

‘문학과 사회’ 1988년 가을호에는 세이코시계 럭키그룹 대한페인트 보리텐(음료) 등의 광고가 실려 있다. 지금 문학지에 이런 광고가 실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잡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저자는 “영원한 플랫폼이나 매개(미디어)는 없다. ‘잡지스러운 것’도 끝없이 모양을 바꾸고 다른 ‘매개화’를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종이 잡지라는 틀은 바뀌더라도 잡지라는 글 모음의 형식은 유지될 것이라는 얘기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 한국경제 2014.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