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11-26 18:02
도서정가제 ‘아쉬운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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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 문화부 차장

모든 책의 할인율을 최대 15%로 정한 새 도서정가제가 지난 21일 시행에 들어갔다. 아직 안착 여부를 예측할 수 없지만 새 도서정가제 시행을 전후해 벌어진 사회적 논쟁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어떤 분야든 새 제도가 시행되면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이에 따른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가장 근본적인 사회적 논쟁이 벌어지기 좋은 시점이기 때문이다. 책 소비자들에겐 책값 변화가 가장 절실한 문제지만 새 도서정가제 이슈가 ‘막판 책 할인 광풍 연출’에 흔들리고 단순 ‘책값 예측’에 머문 점은 못내 아쉽다.

새 도서정가제 논의는 2013년 1월 출판·서점계의 요청으로 도서 할인율을 정가의 10% 이내로 제한한 개정안 원안이 발의되면서 시작됐다. 그 뒤 한편에선 할인율 0%의 완전 정가제를, 온라인 서점은 기존 19% 할인을 주장하면서 교착상태에 빠졌고, 올해 초 정부의 중재로 최대 15%에 합의하면서 지난 4월 관련 법안이 통과됐다. 지난 몇 년간 업계 내부에선 이에 대한 논의가 치열하게 전개돼온 것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따져 보면 이 논쟁은 사회적 가치에 대한 논의라기보다는 출판·서점 등 제각각 입장들의 충돌이었다. 이에 이번 도서정가제도 업계의 이익이 적당히 반영된 타협의 산물이라는 평가와 함께 벌써 편법 할인, 변칙 할인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우리 도서정가제 역사를 살펴보면 논의와 철학 부재는 더 뚜렷이 드러난다. 1970년대 출판·서점계의 자율 결의로 시작된 도서정가제는 2000년 들어 입법화가 추진돼 2003년에야 처음으로 ‘출판 및 인쇄 진흥법’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법의 중심은 아이러니하게 전자 상거래 육성으로 온라인 서점의 10% 할인이 허용됐다. 그 뒤 오프라인 서점에도 10% 할인이 적용됐고, 2010년에는 최대 19% 할인으로 확대됐다.

결국 책 시장은 광폭 할인에 휘청거렸고, 중소 출판사 입지는 좁아졌고, 동네 서점은 문을 닫았다. 게다가 아마존 같은 외국 유통업체의 진출이 예상되면서 누구도 할인 경쟁 중심의 책 시장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이 같은 위기 속에서 새 도서정가제가 시행에 들어갔지만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에 비유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연출됐다. 도서정가제의 존재 근거는 책이 문화공공재로 다른 상품과는 다르다는 사회적 합의임을 생각하면, ‘출판 단통법’ 비유는 이에 대한 우리의 합의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보여준다.

“책을 다른 일반 상품과 동일하게 간주하는 것을 거부하고 시장의 메커니즘을 수정해 당장의 이익에 가려서는 안 될 책의 문화적 특성을 보장하고자 한다. 독서 평등권을 확보하고, 유통의 집중화를 방지하며, 어려운 작품을 창작 출판할 수 있는 출판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 1981년 프랑스 문화부 장관 자크 랑이 도서정가제를 실시하면서 밝힌 말이다.

여전히 유효한 이 ‘기본’을 다시 한 번 새길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단단한 합의가 있어야 향후 가능한 편법 할인을 막을 수 있고, 의지를 갖고 법적 보완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chm@munhwa.com

- 문화일보 2014.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