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10-29 00:01
[기고] '진흙 속 진주' 만료저작물
한응수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장

요즘 유명 작곡가나 가수의 저작권료에 관한 기사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아이돌 가수가 수십억원의 저작권 수입을 올렸다는 기사는 우리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어느덧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저작권도 재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그만큼 타인의 지적 창작물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사회 분위기가 점차 성숙돼가고 있다. 모든 저작물은 창작과 동시에 저작권이 생겨난다. 별도의 형식적 절차도 필요 없다. 창작자가 누구인지, 저작물의 목적ㆍ가치와 형태가 무엇인지 상관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명 작곡가가 만든 가요뿐 아니라 내가 집에서 취미 삼아 만든 노래도 저작물이 될 수 있다.

선진국선 창작 등에 널리 활용

모든 저작물은 사전에 저작권자의 허락을 얻어야 이용할 수 있다. 이용 허락은 저작권을 위탁 받아 관리하는 신탁기관을 통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지만 디지털 환경에서 양산되는 방대한 저작물에 비해 신탁기관이 관리하는 저작물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저작물을 원천소재로 하는 데이터베이스(DB)ㆍ콘텐츠 사업자의 30%는 저작권자를 찾지 못하거나 이용 허락을 받지 못해 원하는 저작물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4년간 저작권 침해로 고소된 사람만 25만명에 이른다.

그렇다면 저작권 문제없이 창작소재를 확보ㆍ활용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먼저 보호기간이 끝나 저작권이 소멸된 '만료저작물'을 재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1960~1970년대 의류나 소품이 빈티지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상업적 생명이 끝난 만료저작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훌륭한 창작소재나 상품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다. 이미 미국은 구글북스를 통해 300만여건, 유럽은 유로피아나 프로젝트를 통해 1,500만여건의 만료저작물을 발굴해 사회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반면, 우리는 활용 가능한 만료저작물이 아직 3만여건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만료저작물을 찾아내는 일은 지난한 작업이다. 개인이나 단일기관ㆍ부처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유로피아나의 경우 유럽 전역의 도서관ㆍ박물관ㆍ기록관 등이 참여해 만료저작물을 발굴하고 민관이 협력해 디지털화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도 범국가적 관심과 참여로 만료저작물 발굴ㆍ활용을 서둘러야 한다. 당장 수요가 있지만 누가 저작권자인지 알 수 없거나 찾을 수 없는 '고아저작물'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얼마 전 저작권법이 개정돼 오는 2013년부터 저작권 보호기간이 저작자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늘어나 고아저작물은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장되는 고아저작물이 없도록 별도의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공공저작물 활용 대책도 필요하다. 공공저작물은 DBㆍ콘텐츠 사업자의 51% 이상이 활용을 희망할 만큼 수요가 매우 크지만 많은 공공기관들은 아직 민간 활용에 소극적이다.

적극적 발굴ㆍ공유정책 펴야

해외 각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저작권 유무에 상관없이 공공저작물의 공유정책을 펴고 있다. 영국ㆍ캐나다ㆍ호주 등은 자국 특성에 맞는 자유이용 라이선스를 도입해 공공저작물의 개방과 재사용을 손쉽게 하고 있다. 적용하는 공공이나 활용하는 민간 모두 만족도가 높다고 하니 우리도 한국형 공공저작물 자유이용 라이선스 모델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저작권 문제없이 활용할 수 있는 공유저작물의 발굴ㆍ활용을 위해 올해부터 '공유 저작물 창조자원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만료ㆍ고아ㆍ공공저작물 활용 문제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어 조만간 성과가 나올 것이다. 다만 저작물 활용은 저작권 주무부처만의 일이 아니라 국가의 창조 경쟁력에 직결된 일임을 명심하고 범국가적 정책으로 확대 추진해야 할 것이다.

- 서울경제신문 2011. 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