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12-02 17:54
책 밖으로 나온 문학을 즐기다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12/01/20141201003442.html?OutUr… [413]
“이것 봐. 여기 소화네 집이 있어.”

“신당도 차려져 있네. 꼭 소설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


보성군이 태백산맥문학관 옆에 복원한 소화네 집.
50대 여성 두 명이 신기한 듯 격자문 안을 들여다봤다. 지난달 29일 오후 전남 보성군 읍내에 있는 태백산맥문학관 앞 ‘소화네 집’에서다. “문학관이 있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왔어요. 소설 속에 맛있다고 표현된 꼬막도 맛볼 생각이에요.” 소화네 집에서 20여m 떨어진 현부자네 집에서는 두서넛 짝을 지은 관람객들이 집안을 돌아보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벌교는 조정래 작가의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다. 태백산맥문학관은 보성군이 2007년 44억6500만원을 들여 건립했다. 연면적 1375㎡, 지상 2층 규모다. 작가의 육필원고와 집필 당시 사용했던 만년필, 취재수첩 등 7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문학관 앞에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현부자 집과 소화의 집을 복원해놨다.


태백산맥문학관
문학이 책 밖으로 걸어 나왔다. 1일 현재 전국 문학관은 65곳(한국문학관협회 가입기준). 추리소설을 주제로 한 추리문학관에서 현대시문학관까지 주제도 다양하다. 전국에 문학관 건립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2000년쯤 부터다. 2000년 이전에는 문학관이 7곳에 불과했다. 그러다 1997년부터 문학관 건립에 국고가 지원되기 시작하면서 문학관 수가 늘어났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지역문화 활성화 등을 내세우며 문학관 사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에 있는 박경리문학공원은 ‘한국문학의 산실’이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1999년 5월 완공된 이곳은 박경리 작가가 20여년 가까이 거주하던 옛집과 손수 채소를 가꾸던 텃밭, 집필실 등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옛집은 소설 ‘토지’의 4부와 5부를 집필한 곳으로 유명하다. 소설 속 배경인 평사리 마당과 홍이동산, 용두레벌도 있다. 지상 5층 규모의 박경리 문학의 집은 2010년 개관했다.

이곳은 차별화된 프로그램으로 더 유명하다. 시낭송과 백일장 등 문학행사는 물론이고 어린이와 청소년, 성인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인문학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동화토지학교와 동화로 풀어보는 인문학교실은 인기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두 5차례 운영되는 이 강좌는 아동문학가들이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문학수업을 하고 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강좌는 ‘토지’를 연구한 교수들을 초청해 진행한다. 정혜원 박경리문학공원 소장은 “독특한 인문학 강좌로 매년 10만명의 관람객이 찾고 있다”며 “일부 관람객은 1년 전부터 예약해 놓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남 목포시 용해동의 목포문학관도 관광 코스이다. 목포는 극작가 김우진·차범석, 소설가 박화성, 평론가 김현 등 다양한 갈래의 문인들이 배출됐던 문학동네다. 2007년 문을 연 목포문학관은 이들 작가 4명의 작품과 유품을 한자리에서 전시하는 복합문학관이다. 이곳에서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작가수업’인 문예대학 창작반을 운영한다.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론 문학교실과 시낭송, 스피치, 동화구연 등이 있다.홍미희 목포문학관 연구사는 “문학관을 찾는 방문객이 하루 평균 80여명이다. 한 해엔 평균 3만여명이 찾아 작가들의 꿈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문학관은 올해 초 호남권 거점 문학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추리문학관 셜록 홈즈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 오르는 부산시 해운대 달맞이 언덕에는 추리문학관이 있다. 1992년 문을 연 이곳은 특정 작가를 기념하는 문학기념관이 아니다. ‘추리문학’이란 장르를 주제로 내세운 공간이다. 추리작가 김성종씨가 개인 재산으로 땅을 매입하고 건물을 지어 올렸다. 국내외 추리소설 등 5만여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

이효석 작가의 고향 강원도 평창군 봉평에 있는 이효석문학관은 강원도 문학의 산실이었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메밀꽃을 보기 위해 한 해 200만명 이상이 찾는다. 춘천시 실레마을의 김유정문학촌은 봄이면 노란 ‘동백꽃(생강나무)’을 보기 위해 많은 관람객들이 찾는다. 이런 인기 덕분에 실레마을의 신남역은 철도역사상 처음으로 사람이름이 들어간 ‘김유정역’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모든 문학관이 관람객이 즐겨 찾는 ‘잘되는’ 문학관인 것은 ‘아니다. 짜임새 있는 운영과 특화된 프로그램으로 성공을 거둔 곳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문학관을 관리할 전문 학예사도 두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다. 작가의 유물과 작품집, 생애 등을 단순히 전시하는 데 그쳐 외면받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관람객이 더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오영수문학관 내 오영수 선생의 동상 앞에서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문학관들도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올해 초 개관한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의 오영수문학관은 지난달 작가의 작품 중 하나인 ‘누나별’을 주제로 한 북콘서트를 열었다. 개관 10개월 만의 첫 행사였다. 조성한 뒤 사용하지 않았던 문학관 내 야외공연장은 방문객들로 가득 찼다. 덕분에 관람객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한 달 평균 700여명이던 관람객은 지난 10월 말 현재 1433명으로 증가했다. 외부전문가를 관장으로 선출하면서 나타난 변화다.

이연옥 오영수문학관장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문학관의 제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2016년쯤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연구논문 공모를 진행하고, 작품집도 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원주·목포·보성·울산=박연직·한승하·이보람 기자

- 세계일보 2014.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