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11-05 22:09
[만물상] 기록물 보관 정신
[만물상] 기록물 보관 정신

김태익 논설위원
이메일tikim@chosun.com


미국 동북부 세일럼의 피바디박물관에 갔다가 지하 수장고에서 개화파 핵심인 김옥균·서광범의 명함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빛깔이 바래긴 했지만 두 사람 이름이 한자와 영문으로 또렷했다. 세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130년 전 한국인 명함일 것이다. 피바디박물관 2대 관장인 에드워드 모스 박사는 1882년 일본 고베에서 도쿄로 가는 배에서 일본에 사절로 온 김옥균과 서광범을 만났다. 두 사람은 헤어지면서 모스에게 명함을 건넸고 모스는 이를 세일럼까지 가져가 고이 보관했다.

▶권이혁 전 서울대 총장이 1950년대 서울에서 친하게 지냈던 미국 미네소타대 콜트 교수를 찾아갔다. 그의 집에서 함께 옛일을 회상하다 그때 사진을 좀 보자고 하니까 콜트 교수는 "모두 학교 문서보관소(아카이브)에 보냈다"고 했다. 미네소타대 문서보관소는 그가 평생 간직해온 기록물을 상자 500개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중의 하나를 열어보니 권 전 총장이 콜트 교수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까지 들어 있었다.

▶일류 국가를 따지는 잣대로 "그 나라에 숲이 잘 조성돼 있는지와 기록물이 잘 보존되고 있는지를 보라"는 말이 있다. 미국이나 유럽 명문대 아카이브는 교수들의 편지와 노트, 심지어 여백에 낙서를 한 논문까지 버리지 않고 보관한다. 일본 교토대 병리학교실에는 훗날 서울대 총장을 지낸 조선인 조수 윤일선이 1923년 작성한 부검 기록이 아직도 남아 있다.

▶우리도 조선시대엔 기록 보존에 대한 집착이 무서울 정도였다. 우암 송시열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면 꼭 그걸 베껴 따로 보관했다. 그 덕에 우암이 죽은 뒤 그의 문집에는 6000통 가까운 편지가 실릴 수 있었다. 후대 사람들은 그 편지들을 통해 우암 시대 정치권 동향이나 어떤 인물에 대한 우암의 견해를 엿볼 수 있다.

▶재미 건축가 최용완씨가 1962년 숭례문 해체·보수 공사 때 작성한 실측(實測) 기록을 문화재청에 기증한다는 소식이 어제 조선일보에 실렸다.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직후 공사에 참여했던 최씨는 이 육필 기록을 50년 동안 보관해왔다. 숭례문 내부 설비물들의 재료와 크기, 기울기까지 자세히 표시돼 있어 숭례문 복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고 했다. 자잘한 것이라도 꼼꼼히 기록하고 보관하다 보면 그것이 모이고 쌓여 사회의 자산이 된다.

- 조선일보 2011. 1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