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6-11 10:57
미국내 한국문학 아카이브 형성은 현지 연구자들이 주도해야 할 과제-박선영 교수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9410 [365]
미국내 한국문학 아카이브 형성은 현지 연구자들이 주도해야 할 과제
박선영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 <근대서지>9호에 '해외 한국문학연구 현황' 소개

한국문학의 해외 소개가 늘고 있지만, 과연 연구 현황은 어떨까. 근대서지학회(회장 전경수, 서울대)가 반년간으로 펴내는 <근대서지> 제9호에 실린 박선영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동아시아학과)의 글 「아카이브 오디세이: 해외 한국문학 연구 현황에 대한 일고」가 좋은 단초를 제공한다. 박 교수는 푸코의 설명을 가져와 아카이브를 “지식을 생성해 내는 제도적 공간이며, 또한 그 창출된 지식의 본체이기도 하다”라고 정의하면서 미국내 한국문학 연구 현황을 짚어나간다. 이 같은 박 교수의 접근에는 ‘해외 한국문학 연구’가 한국문학에 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만들어내는 제도 공간인 동시에, 지식 그 자체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특히 그가 “체계적인 지식으로서의 한국문학 아카이브를 형성하는 일은, 한영 독해력을 갖추고 미국 내 학술 및 문화 담론에도 익숙해서, 선별된 개별 문학 작품들에 현지적 중요성을 부과, 소개할 수 있는 현지의 연구자들이 주도해야 할 과업”이라고 지적한 부분은 향후 해외 한국문학 연구의 한 방향성을 제시한 아이디어로 읽힐 수 있다. 박 교수의 「아카이브 오디세이: 해외 한국문학 연구 현황에 대한 일고」에서 미국 내 한국문학 연구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발췌했다. 특히 발췌 부분은 박 교수가 직접 검토했으며, 지면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과 달리 좀 더 짧게 단락을 구분했다. <근대서지>에서 각주로 제시된 부분도 필자인 박 교수의 요청에 따라 괄호 안에 처리해 미국내 한국문학 연구 현황이해를 돕고자 했다.

이 글에서 나는 내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로 미국에서의 한국문학 연구 현황을 최근 몇 년 간 연구 성과가 활발한 근현대 문학 분야에 한정시켜, 학술 단행본 위주로 논의해 보고자 한다 (최근 몇 년 간의 연구 현황을 검토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이 글에서 미처 언급되지 못한 연구자들이 있다. UCLA의 피터 리, 하버드의 데이비드 멕켄이나 브리티시 컬림비아대의 브루스 풀턴 등 수많은 번역집과 문학개론서를 내어 한국문학 연구의 기반을 닦은 선학들, 컬럼비아대의 고 김자현 하부시, 뉴욕주립대(Bingamton)의 마이클 페티드, 오하이오주립대의 박찬응 등 근대 이전 시기의 문학 연구자들, 그리고 문학과 인접 분야인 연극 영화 등 다른 매체의 연구자들이 그들이다. 물론 그들의 학술적 성과도 한국문학 아카이브의 형성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 이들과 혹시라도 누락됐을지 모르는 다른 선학들에게 이 글의 한계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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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국문학자들과는 달리, 미국의 연구자들은 애초부터 동아시아 문학 내지는 비교문학이라는 보다 넓은 제도적인 틀 안에서 한국문학을 접하게 된다. 필자의 경우만 하더라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탈식민주의 이론을 공부하던 중 동아시아학을 접하게 되면서 한국문학을 재발견하게 된 바 있다. 원래 필자는 영, 불, 일, 한국의 사실주의 문학을 비교 연구할 목적으로 영문과에서 비교문학 프로그램으로 소속을 옮겨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참고문헌 조사과정에서 한국문학 관련 학술 논문이 거의 전무함을 깨닫고, 이 부재하는 아카이브를 형성하는 데 일조할 취지로 한국문학을 주된 대상으로 하는 논문 「Writing the Real: Marxism, Modernity, and Literature in Colonial Korea 1920-1941(식민지 조선의 사실주의 : 맑시즘, 근대성, 그리고 문학 1920~1941)」라는 논문을 쓰게 됐다(Sungyoung Park, 「Writing the Real: Marxism, Modernity, and Literature in Colonial Korea 1920-1941」, 컬럼비아대 비교문학과 박사논문, 2006). 이를 수정, 확대해서 금년 말에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책은 그 제목 -The Proletarian Wave-에 드러나듯이, 한국의 근대 사실주의 문학을 20세기 전반에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사회주의 문학운동의 국제적인 맥락에서, 또한 일본 제국 내에서 발달된 대항문화의 일부로서 재검토한 연구서다. 이 책은 국내에서 이미 많이 연구돼 온 바 있는 주제를 국제 비교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기존의 민족주의 문학사와 구소련 중심의 세계 사회주의 문화사, 그리고 계급의 문제와 좌익 성향의 문화를 등한시하는 최근의 식민지 근대사의 서술에 비판적으로 개입한다.

필자뿐 아니라 현재 미국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활동 중인 연구자들의 대다수가 탈식민주의 이론의 대세하에 일본 제국 내 문화의 일부로서 근대 한국문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다. 크리스토퍼 한스콤(UCLA)은 The Real Modern: Literary Modernism and the Crisis of Representation in Colonial Korea(실재하는 근대 : 근대 모더니즘 문학과 재현의 위기)에서 1930년대 구인회의 모더니즘 문학을 민족적 리얼리즘/반민족적 모더니즘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재조명함으로써, 모더니즘을 식민지 근대 조선에서의 경험적 현실과 인식, 혹은 지배적 담론 질서 간의 괴리를 언어적 실험을 통해 재현 극복하고자 한, 다분히 정치적인 미학운동으로 재정의했다(Christopher Hanscom, The Real Modern: Literary Modernism and the Crisis of Representation in Colonial Korea, Harvard University Asia Center, 2013). 그리고 서석배(UC Irvine)는 Treacherous Translation: Culture, Nationalism, and Colonialism in Korea and Japan from the 1910s to the 1960s(반역의 번역 : 한일 문화와 민족주의, 그리고 식민주의 1910년대~1960년대)에서 번역을 단순한 등가적 언어의 환치가 아니라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실천으로 재규정하고, 한일 양국의 식민주의와 민족주의 담론의 모순을 번역된 테스트가 어떻게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드러내고 비판하는가를 연구했다(Serk-Bae Suh, Treacherous Translation: Culture, Nationalism, and Colonialism in Korea and Japan from the 1910s to the 1960s, UC Berkeley, 2013).

비교문학적 성향과 학제간 연구 두드러져

식민지 시대 검열이 문학 텍스트 창작에 미친 적극적이고 다중적인 영향을 세밀히 검토한 최경희(U of Chicago), 근대 한일 문화인들 간의 밀접한 교류 관계를 살펴보고 그 같은 관계를 식민지 시대 말기 ‘친일 협력’으로만 기억하는 한일 양국의 역사적 망각을 비판하는 작업을 한 권나영(Duke), 1930년대 서울과 타이페이를 중심으로 한중 도시 문화의 근대성을 비교 연구함으로써 이들 공간에서의 근대 체험을 민족국가 차원을 넘어 일본 제국, 나아가서는 세계 근대사의 맥락에서 재발견한 지나 김(smith College), 19세기 말부터 1930년대까지 근대 신여성의 담론적 형성을 살펴본 이지은(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식민 말기의 문학과 철학, 시각문화 등에 나타난 시간의 재현에 초점을 맞추어 당대 문화적 근대성을 연구한 자넷 풀(U of Toronto) 등도 이미 출판 계약이 된 연구서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아직 출간되지 않은 위 연구서들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Kyeong-Hee Choi, Beneath the Vermilion Ink: Japanese Colonial Censorshio and the Making of Modern Korean Litrature(붉은 잉크 밑에서: 일제 식민지 검열과 근대 한국문학의 형성); Aimee Nayoung Kwon, Intimate Empire: Collaboration and Colonial Modernity in Korea and Japan(친밀한 제국: 근대 한일 문화 교류와 식민지 근대성): Jina Kim, Urban Modernity in Colonial Korea and Taiwan(식민지 조선과 대만의 근대 도시 문화); Ji-Eun Lee, Women Pre-scripted: Reading Women’s Issues in Pre-colonial and Colonial Korea(쓰여진 여성: 개화기와 식민시대의 신여성 담론 읽기); Janet Poole, When the Future Disappears: The Modernist Imagination of Late Korea(미래가 사라질 때: 식민지 맑기 조선에서의 근대적 상상력)).

또한 근대 한국문학의 형성에 번역문학이 끼친 영향을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유입을 통해 분석하고 있는 조희경(U of Washington at Seattle), 이광수의 민족주의와 그의 문학 속의 공간 재현을 공부하는 엘리 최(Cornell), 제국시대 독일과 일본, 근대 조선의 휴머니즘 담론을 연구한 트레비스 워크만(U of Minnesota), 젠더적 시각에서 근대 소설의 기원을 되짚어 보고 있는 양윤선(Boston), 그리고 개화기부터 전후시기까지 잡지에 나타난 어린이의 상들을 연구하는 다프나 주르(Stanford) 등도 머지않은 장래에 책을 마칠 예정이다(Heekyong Cho, Translation’s Forgotten History: Russian Literature, Japanese Meditation, and the Formation of Modern Korean Literature(잊혀진 번역의 역사: 일역 러시아 문학과 근대 한국문학의 형성); Ellie Choi, Space and National Identity: Yi Kwangsu’s Vision of Korea during the Japanese Empire(민족 정체성과 문학적 공간: 일제시대 이광수의 조선관); Travis Workman, Imperial Genus: Formation and Limits of the Human in Modern Korea and Japan(제국의 인류: 근대 조선과 일본에서의 휴머니즘 담론의 형성과 그 한계); Yoon-sun Yang, From Domstics Woman in Sentimental Youths: The Rise of Modern Korea Fiction, 1906-1917(한국 근대 소설의 발생 1906-1917: 가정 내의 여성에서 감상적인 남성으로); Dafna Zur, Figuring Korean Futhers: The Natural Child in Text and Image 1908-1960(민족의 미래상: 1908년에서 1960년까지 텍스트와 이미지에 나타난 어린이상 연구)). 이들의 학술적 성과는 일본 문학 전공자이면서 한일 사회주의 문학을 함께 다룬 사뮤엘 페리(brown) 등의 연구성과와 상통하면서 동아시아 문학이라는 학술적 자장 안에서 근대 한국문학이라는 아카이브를 형성하고 있다(Samuel Perry, Recasting Red Culture in Proletarian JapanL Childhood, Korea, and the Historical Avant-Garde(프롤레타리아 일본에서의 사회주의 문화 재검토: 유년기, 조선, 그리고 아방가르드), 하와이대출판부, 2014).

비교문학적 성향에 더해 학제 간 연구도 미국의 한국문학 연구서들의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위에서 언급된 학술서 중에도 연극과 영화, 사진 등 문학 외 매체를 분석의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는 경우가 있지만, 이러한 경향은 특히 해방 이후 현대문학 연구서들에서 강하게 드러난다. 이는 전후 시대에 영화가 대중매체로 크게 부상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식민지 시대의 영화가 대부분 소실되고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켈리 정(UC Riversid)의 Crisis of Gender and Nation in Korean Literature and Cinema(한국문학과 영화 속의 민족과 성 정체성의 위기)는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한국문학과 영화 작품 속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나타나는 민족의 위기서사를 탈식민주의와 젠더적 시각에서 분석했다(Kelly Jeong, Crisis of Gender and Nation in Korean Literature and Cinema, Lexington Books, 2010). 이진경(UC San diego)의 Service Economies: Militarism, Sex Work, and Migrant Labor in south korea(서비스 경제: 남한의 군사주의와 성노동 이주노동)는 남한 경제 발전의 이면사로, 베트남전 파병 군인들, 기지촌 및 일반 성매매 여성 노동자들, 그리고 최근 등장한 이주 노동자들 등의 문학과 영화적 재현의 분석을 통해, 냉전시대 군사독재정권 치하에서 이뤄진 경제 발전에 구조적인 인종 및 성차별을 통한 노동계급의 편성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을 밝혔다(Jin-Kyung Lee, Service Economies: Militarism, Sex Work, and Migrant Labor in south korea, Universtiy of Minnesota Press, 2010). 테드 휴즈(Colombia Univ.)의 Literature and Film in Cold War south korea: Freedom's Frontier(냉전시기 남한의 문학과 영화: 자유의 최전선)는 이 같은 학제 간 연구를 한층 심화시켜서 식민지 시대부터 전후시기까지의 문학, 영화, 미술 등에 드러난 언어적인 것과 시각적인 것의 상호 소통 작용을 검토했다. 이를 통해 남한이 자유민주국가로서의 국가 정체성을 성립하는 과정에서, 타자로 비가시화되고 배제된 식민시대 담론의 역사적 연속성과 북한 및 이와 관련된 모든 기억의 억제된 담론적 의미를 논의했다.

첫 저서 Writers of the Winter republic: Literature and Resistance in Authoritarian south korea(겨울공화국의 문인들: 독재 정권 시대 남한의 문학과 저항)에서 군사 독재 시절의 저항문학에 나타난 ‘이웃’의 개념의 정치적 의의를 연구한 류영주(U of Michigan) 역시 최근 들어 관심을 음악, 영화 등 다른 문화매체로 확대시키고 있다. 덧붙여, 흔히 ‘여공’이라 일컬어지는 공장 여성 노동자들의근대화 체험과 문학적 표상으로서의 그들의 상징적 의미, 그리고 그 양자 간의 역학관계를 분석한 루스 바라클라우(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의 Factory Girl Literature: Sexuality, violence, and representation in Industrializing Korea(여공 문학: 한국산업화 시대의 성, 폭력, 그리고 문화)도 빠뜨릴 수 없는 학제 간 연구의 성과다.

학술서 저술과 더불어 이 연구자들이 출간한 번역서들도 한국문학이라는 아카이브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북미 한국문학연구자들의 주도로 나온 최근의 번역서들은 주로 근대문학 쪽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연구자들의 학술 경향 탓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정부의 노벨 문학상 염원으로 인해 기존의 번역서 출간이 주로 현대문학을 중심으로 돼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2년 이후 학술 단행본 증가 추세

문학 작품 번역으로는 자넷 풀이 이태준의 수필집『 무서록』을 번역한 Eastern sentiments(동양적 정서), 사뮤엘 페리가 강경애의 『인간문제』를 번역한 The wonso pond(원소라는 이름의 연못), 염상섭의 「만세전」과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등 근대문학 주요 중단편 6편을 수록한 필자의 역서 On the Eve of the uprising and other stories from colonial korea(만세전 외 근대 중단편 선집), 테드휴즈·이진경·김재용·이상경 등이 공동 편집한 Rat Fire: Korean stories from the Japanese empire(서화 외: 식민지 시대 프롤레타리아 문학선집), 권나영 등이 참여한 Into the light:An Anthology of Literature by Koreans in Japan(빛속으로: 재일 조선인 문학 선집) 등이 있다(Janet Poole, Eastern sentiments,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9; Sungyoung Park, On the Eve of the uprising and other stories from colonial korea, Cornell East Asia Series, 2010; Theodore Hughes, Jae-Yong Kim, Jin-Kyung Lee, and Sang-Kyung Lee, Rat Fire: Korean stories from the Japanese empire, Cornell East Asia Series, 2014; Melissa Wenders tet al., eds, Into the light:An Anthology of Literature by Koreans in Japan,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0). 이와 더불어 식민시기의 한국문학, 사회, 역사와 관련된 당대의 논문들을 번역한 Imperatives of Culture: Selected essays on korean history, literature, and society from the Japanese colonial era(문학의 책무: 식민지 시대 한국 역사, 문학 및 사회에 관한 에세이 전집)가 UCLA의 한국문학과정 졸업생들인 크리스토퍼 한스콤·월터 류·류영주의 편집을 통해 출간됐다(Christopher Hanscom, Walter K. Res, Youngsu Ryu, eds, Imperatives of Culture: Selected essays on korean history, literature, and society from the Japanese colonial era, University of Hawaii, 2013. 이외에도 리차드 니콜라스(Richard Nicholas)의 Modern Korean Drama: An Tnthology(근대 한국 희곡선집,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1(2009) 등 많은 시인과 소설가, 희곡가들의 선집이나 단행본이 번역 출간된 바 있으나, 여기서는 지면의 한계상 한국문학 단행본 학술서를 출간했거나 곧 출간 예정인 연구자들의 번역서에 한정해서 소개했다).

이들의 학술 성과에 힘입어 한국문학이란 아카이브는 논리적 체계를 갖춘 그러나 국문학과는 다소 다른 하나의 지식으로서의 조금씩 모습을 갖춰나가고 있다. 2012년까지만 해도 문학 분야의 학술 단행본은 단 두 권만 출간돼 있었던 것을 감안할 때, 요 몇 년 새에 대여섯 배의 양적 증가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지극히 고무적이다(김동규, 「시각의 다원화 및 경계 넘어서기: 학술단행본을 통해 본 해외 한국학 연구 동향 2007-2012, <역사와 담론>(67, 2013. 7. 25~71쪽 참조. 이때 기록된 두 권은 앞서 언급한 테드 휴즈와 이진경 교수의 학술 저서들이다. 이 논문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정책과제로 기획된 해외 한국학 연구 업적 리뷰 특집호의 일부다). 90년대에 발족한 국제교류재단과 한국문학번역원 등 정부 기관의 꾸준한 지원이, 당시 박사과정에 입학했던 학생들이 이제 교수가 되어 단행본을 내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그 결실을 거두고 있다 하겠다.

2-3 년 내로 한 학기 대학원 수업의 강의 계획서를 학술 단행본만으로 채울 수 있게 되리라는 전망은, 최근 한국문학 연구 부흥추세의 일원으로 성장해서 이제 후학을 가르치는 입장이 된 필자에서 여간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음 세대의 연구자들은 이제 소규모나마 선학들이 일궈놓은 아카이브 내에서 출발해 자신의 길들을 찾아나갈 것이다. 돌이켜 보면, 국문학도로 시작해서 미국 대학에서 동아시아학과의 한국문학 교수로 교편을 잡기까지의 필자의 개인적 학문 여정은 국문학이라는 아키이브를 보존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하여 한국문학이라는 아카이브를 창조적으로 생성하려는 지점에 이른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한국 문학 교수가 없던 컬럼비아대에서 박사논문의 기조를 잡고 있을 때만 해도 알려지지 않은 국문학 아카이브를 미국 땅에 번역 이식하려는 접근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 시기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그때는 아직 개가식이었던 컬럼비아 도서관의 분관 서고 프렌티스에서, 오랜 세월 아무도 읽지 않아 먼지가 케케 쌓인 식민지 시대 잡지들의 원본을 발견하고 느꼈던 그 환희를 아직도 기억한다. 한국문학 불모지의 미국에 내가 좋아하던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세계를 알려 보겠다는 소명감에 차 있던 당시에는, 마치 그 책들이 나보다 일찍 건너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치기어린 감흥까지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후 수년간, 한국의 사실주의 문학을 근대 세계 사회주의 문학의 식민지적 지류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 필자는 해외에서의 한국문학이란 아카이브의 구축은 국내의 국문학과는 다른, 다소 낯설고 새로운 모습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당연시하게 됐다. 요새 새로 집필 중인 두 번째 학술서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아직 체계적으로 연구되지 않은 장르문학, 영화 및 만화 매체에 나타나는 환상적 상상력의 문화사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저술을 통해 일면으로는 서구중심의 장르문학 담론을 재고하고, 동시에 당대의 대중의 불안이나 희망을 우회적으로 드러내었던 작품들을 발굴함으로써 이들을 소외시킨 채 성립돼 온 (한)국문학 아카이브의 정렬원칙들을 재점검하고자 한다. 문단의 주류 밖의 텍스트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해당 작품들의 번역이나 그를 위한 제도적 지원을 확보하는 것도 태평양을 가로질러 온 필자의 아카이브 오디세이의 다음 여정의 과제가 될 것이다.

- 2014.08.25 교수신문, 박선영 서던캘리포니아대 동아시아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