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6-24 11:09
‘책 읽는 대학이 미래다’③ 대학강의, 교재활용 실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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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복사·공유‘심각’… 인식 변해야 학술출판 산다
한국학술출판협회-교수신문 공동기획‘책 읽는 대학이 미래다’③ 대학강의, 교재활용 실태1

지난 16일, ㅅ대 복사실 앞. 한 대학생이 A교수의 강의 교재를 찾았다. 복사실 운영자가 한편에 쌓여있던 스프링 제본 한권을 건네주며 ‘6천원’을 불렀다. 눈 짐작으로 봐도 족히 100페이지 이상이었다. o대 복사실 앞도 강의에 필요한 자료를 복사하려는 학생들로 끊임없었다. 대학 내 복사실은 학기 초를 맞아 제본된 교재를 사려는 학생과 책 일부를 복사하려는 학생들로 줄을 이었다. 몇 군데의 대학을 돌며 복사실을 방문할 때마다 상황은 비슷했다.

대학 강의실에‘교재’가 사라지고 있다.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제본으로 묶거나 필요할 때마다 복사하는 학생이 늘었다. 제본조차도 돈이 아깝다며 불법으로 스캔해서 다운받는 학생도 생겼다. 교수는 이러한 현상이 저작권 침해인 줄 알지만 모른 척 눈 감아 주고 있다. 한 대학의 교수는 “학생들에게 책을 사라고 하면 강매 아니냐며 반발한다”며 “어쩔 수 없는 현실 아니냐”며 씁쓸해했다.

PPT강의도 출판성장의 저해요소
o대 인쇄소에서 한 여학생이 PPT 자료를 A4로 출력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강의명과 교수 이름이 적힌 출력물을 든 학생은 계산대에서 “13장이요”라며 650원을 지불했다. 13장의 출력물은 여러 권의 도서에서 발췌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단 650원에, 저자와 출판권자의 저작물이 팔렸다. 이처럼 많은 학생들이 ‘저작권 침해’란 인식 없이 자료를 자유롭게 출력한다. 교재 대신 PPT자료를 강의에 활용하는 교수들이 많아지면서 자료를 출력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떨리는 강사 설레는 강사』(학지사刊) 저자인 이의용 국민대 교양대학 교수(교양과정부)는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PPT를 활용한 강의도 늘었다”고 말했다. 책을 펴고서 구두로 강의하는 것보다 PPT를 활용하는 게 전달에 효과적이고 흡인력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반면에 부정적인 면도 존재한다. 이 교수는 “학생들이 책은 보지 않고 강의 내용이 요약된 PPT만 다운받아 공부한다”며 “단순 암기를 지양하고 강의 내용을 이해했는지에 대한 평가가 이뤄져야 자료를 다운받지 않고 교재를 사서 공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책의 중요 부분만 요약해 강의 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지난 2월 ‘수업 목적 저작물 이용 보상금(이하 수업목적보상금)’이 개정되면서 저작물 활용이 보다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자료를 학생들이 무단으로 복제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수업목적보상금이 저작물의 무분별한 이용을 허가한 것은 아니다. 수업목적보상금이 적용되더라도 자료를 출력해 공유하는 것은 엄연히 저작권 침해다. 한국복사전송저작권협회(이하 복전협)김준희 팀장은 “최근에는 학생들이 필기대신 노트북에 달린 카메라로 강의를 녹화해 동영상을 돌려보는 사례도 늘었다. 이는 분명한 저작권 침해이지만 일일이 법으로 제지할 수 없어 속이 탄다”며 “학생들 스스로가 인식을 달리 하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책을 구입하지 않고 제본하거나 PPT자료를 출력하는 것은 결국 저작물을 창작한 저작권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꼴이다. 특히 학술출판물은 저자가 교수인 경우가 많기에 교수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게 된다. 이는 다시 학술출판에 큰 타격을 주고, 교수들의 저술활동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학술출판협회 회장으로 있는 김진환 학지사 대표는 “대학에서 교재로 채택된 책의 구매율이 10%도 채 넘지 않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교양 강의나 온라인 강의에서 활용된 강의 자료를 무단으로 다운받는 학생 수가 늘면서 책 판매는 더 하락했다. 김 대표는 “그동안 여러 대학에서 학지사의 책을 교재로 사용해 왔지만 저작권 허락을 요청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며 “많은 비용을 들여 책을 냈는데 팔리니 않으니 피해가 막대하다”고 탄식했다.

전자책 시장은 더 열악하다. 전자책이 나오면 사람들이 무단으로 복제해 배포하기 때문에 출판사에서는 전자책 내놓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학술출판은 더욱 심각하다. 출판 관계자는 “이미 무분별한 복사와 스캔이 성행하고 있는데 전자책까지 나온다면 학생들이 책을 사야 하는 필요성을 깨닫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본이 더 싸다는 건 편견
대학마다 제본이 성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하대에 재학 중인 라웅균(정보통신공학과 3학년) 씨는 “제본이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럴까? o대 앞에서 인쇄소를 운영 중인 아무개씨는 “제본이 더 저렴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일반적으로 교재가 2만원인데 제본하면 1만7천원이 나온다”라고 밝혔다. 출판사는 대량으로 책을 인쇄해 판매하기 때문에 개인이 한 두 권 제본하는 것보다 오히려 값이 더 저렴하다. 책을 구입하는 것이 학생 입장에서도 효율적일 수 있다. 비싼 책값 때문에 제본하겠다는 건 인식의 차이에 서 온 잘못된 편견이다.

다만 대량으로 제본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익명을 요청한 사회과학부 1학년 아무개양은 300페이지 가량의 제본을 학교 제본실에서 1만5천500원에 구입했다. 교양 강의에 쓰인다는 그 제본은 시중에 파는 여러 권의 책을 발췌해 놓았다. 아무개양은 “강의실에서 제본을 원하는 학생들의 신청을 받아 인쇄소에 주문제작을 맡긴다”고 설명했다. 대학 내 복사실마다 제본을 단체로 주문 제작해 인쇄단가를 낮추고 저렴하게 공급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학술출판의 성장은 저해되고, 이는 교수들의 저술활동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나마 반가운 것은 저작권 단속이 강화되면 서 복사실마다 저작권 침해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복전협은 ‘저작물복사허락계약’을 체결한 복사업체에 한해 도서, 학위논문, 정기간행물 등 저작물의 10% 이내만 복사를 허용하고 있다. 예전처럼 무분별하게 책 전체를 제본해 주는 경우는 많이 사라졌고,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복사가 이뤄지는 곳도 많았다.

교재가 사라지고 있는 강의실의 풍토 속에서 출판이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김진환 대표는 “무엇보다 저작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바로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의용 교수는 “두고두고 봐도 좋은 책, 정말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들어야 학생들도 교재를 살 의향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알찬 내용의 수준 높은 교재를 출판하려는 노력은 수강 학생들의 교재구입 의욕을 부채질할 수 있다. 또한 교수들도 학생들을 평가하는 다양한 항목을 정립하고, 교재의 필요성을 좀 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 강의실에 교재가 돌아올 때, 학술출판의 미래는 조금 더 밝아질 것이다.

-교수신문 2014.09.22, 윤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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