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6-24 11:23
‘책 읽는 대학이 미래다’⑧우리시대의 도서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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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구입비 감소로 학술도서 비중도 줄고 있다
한국학술출판협회-교수신문 공동기획 ‘책 읽는 대학이 미래다’ ⑧우리시대의 도서관1

지방 사립대의 이 아무개 교수는 도서관에 필요한 도서가 없어 연구에 애를 먹었다. 문학을 연구하며 작가의 작품을 모으는 등 주로 자료중심 연구를 많이 하고 있는 이 아무개 교수는 “대학도서관에서 오래된 원서를 구비하고 있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원서 대신 영인본을 배치하는 방법도 있지만 도서관 측으로부터 “책으로 분류되지 않아 구비할 수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도서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특히 고자료나 옛날 자료들은 연구와 교육을 수행하는 대학도서관에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대학에서 이를 소장하지 않고 있었다. 대학도서관 측은 “가뜩이나 예산도 감소해서 자료구입비도 줄었는데 특정 자료까지 구입하기에는 무리”란 입장을 보였다. 결국 이 아무개 교수는 필요한 서적을 마련하기 위해 중고서점을 찾아야 했다. 이처럼 대다수의 교수들이 “필요한 책이 도서관에 없어 어려움이 많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운영하는 학술정보통계시스템을 살펴보면, 대학총예산 대비 자료구입비 비율이 최근 5년간 해마다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년제 일반대학의 경우, 2009년과 2010년 1.1%를 차지하던 자료구입비는 2011년을 거쳐 2012년 1%로 떨어졌으며 지난해 0.9%로 줄었다. 대학도서관은 다양한 장서를 확보해 연구와 교육기능을 해야 하는 공적인 의무가 있지만, 대학에서 예산을 줄이는 데 있어 도서관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어 가장 먼저 타격을 입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도서관에 학술도서의 소장 비중이 해마다 줄고 있는 것은 학술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도서관의 역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등록금 동결이 도서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인다. 대학마다 등록금을 인하하거나 동결하면서 재정이 악화되자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눈에 안 띄는 도서구입비의 예산을 줄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부가 실시하는 대학평가도 도서관 예산과 연관성이 높다. 취업률 등 정량적인 면으로 대학을 서열화하면서 장기적으로 봤을 때 소득이 없어 보이는 도서관의 예산을 가장 먼저 줄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남대 도서관장을 맡고 있는 최재목 교수(철학과)는 “대학 입장에서는 보지도 않은 책을 사야 되며, 보관비용을 많이 들이면서 왜 투자해야 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도서관을 無用부분으로 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학정보공시센터 대학알리미를 통해 대학도서관별 예산을 살펴본 결과, 서울대 중앙도서관의 경우 2012년 도서관의 자료구입비는 81억8천만원으로 총예산(6천371억7천만원) 대비 1.3%의 비중을 차지했다. 2013년 자료구입비는 81억7천만원으로 총예산(6천888억2천만원) 대비 1.2%로 감소한 수치를 나타냈다. 대학 총예산은 증가했으나 오히려 자료구입비는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자료구입비는 1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9억 가량 예산이 늘었지만 총예산(7천421억1천만원) 대비 1.3%를 차지해 여전히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고려대 도서관도 2012년 77억8천만원을 자료구입비로 사용했다. 이는 총예산(6천727억만원) 대비 1.2%였다. 2013년 자료구입비는 73억8천만원으로 총예산(6천825억3천만원) 대비 1.1% 규모다. 이 시기에 대학총예산은 98억 증가했으나 자료구입비는 주춤거리는 모양새였다. 2014년 자료구입비는 76억4천만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증가했지만 총예산(6천862억9천만원) 대비 1.1%를 기록했다.

국립도서관과 공공도서관의 상황은 어떨까. 국립중앙도서관이 제시한 국립도서관 예산현황(국립중앙도서관,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법원도서관, 국회도서관 합계)을 살피면 2012년 자료구입비는 100억7천만원에서 2013년 자료구입비는 124억7천만원로 증가률을 나타냈지만, 공공도서관의 경우,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에서 예산현황을 확인한 결과 2012년 자료구입비 733억7천만원에서, 2013년 719억7천만원으로 떨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자료구입비가 감소하면서 소장도서의 수도 줄고, 이는 곧 학술도서의 비중도 줄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대학도서관의 경우만 하더라도 학부생이 선호하는 수험서나 취업서, 베스트셀러 소설 위주로 우선 구비되기 때문이다. 최재목 영남대 도서관장은 “실용서 위주로 책을 구입하는 것은 대학의 지적능력이 저하될 수 있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승환 중앙대 중앙도서관 학술정보팀 과장은 “도서관에서도 학과 강의에 필요한 학술도서 위주로 구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만 소설류 등의 일반 단행본을 신청하는 학생들이 많고, 선호하는 도서도 소설류가 많기 때문에 학술도서와 일반 단행본의 비중을 비슷하게 유지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제공한 ‘2013 대학도서관 통계분석 자료집’을 살펴보면 대학도서관의 전체 장서 수는 7천300만종, 1억3천500만책이다. 최근 5년간 대학도서관의 평균 장서 수는 2009년 28만책, 2010년 30만책, 2011년 31만책, 2012년 33만책, 2013년 34만 책으로 매년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해외 대학과 비교하면 아직 수준은 미미한 편이다. 재학생 2만명 이상 대학도서관 가운데 가장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는 서울대 중앙도서관은 462만책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는 북미연구도서관협회(ARL)의 114개 대학도서관 중 35위인 플로리다대 도서관과 비슷한 수준이다.

대학도서관의 자료유형별 구입비율을 살피면 단행본 28.9%, 연속간행물 11.7%, 비도서자료 1.6%, 전자자료 57.8%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자료 구입비율이 전체 자료구입비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주태훈 고려대 도서관 학술정보관리부 과장은 “전자책을 활용하는 학부생이 늘면서 최근 몇 년 간 예산의 70~80%는 전자자료에 투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자자료의 원가가 단행본을 구입하는 것보다 저렴한 것도 전자자료 확대의 이유 중 하나로 꼽혔다.




이에 대해 최재목 관장는 “전자책과 인터넷의 관심만큼 책을 서가에 꽂아 놓는 것도 중요하다. 지나가면서 제목을 훑을 수 있고, 당장은 읽지 않아도 몇 년 뒤에 꺼내 읽을 수 있는 변수가 많기 때문”이라며 “문자를 읽는 행위는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발상을 창출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소장도서를 줄인다는 건 그런 발상의 전환을 감소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수들의 연구를 원활하게 돕고, 학생들의 지적 능력을 기르기 위해 책은 중요한 매개가 되고 있다. 한 권의 책이 연구와 교육을 활성화시키고 그것이 곧 수준높은 콘텐츠의 강의와 학술출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책 읽는 대학을 조성하기 위해 도서관의 기본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 교수신문 2014.11.10 윤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