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9-08 13:20
“미국 대사관 숙소 터에 멋진 ‘책의 전당’ 지으면 단연코 대박”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07798.html [267]

[짬] 그림책 전시회 연 한길사 대표 김언호 씨


헤이리 한길책박물관 4개층 털어 연말까지 ‘그림책의 탄생’ 전시회
출판인생 40년간 모은 500종 공개
구텐베르크 ‘42행 성서’ 등 희귀본 고흐가 모사하려다 포기한 책도
“우리 출판문화도 세계에 자랑할만”


“19세기 전후 근대 유럽 출판문화 전성기 때 거장들이 생애를 바쳐 창출해낸 고전적인 그림책의 세계를 보여주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그림책의 차원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또 디지털 문명시대에 종이책의 가치와 미학을 새삼 인식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김언호(70) 한길사 대표는 자신이 관장을 겸하고 있는 경기도 파주 헤이리의 한길책박물관 4개 층 250여 평을 채우고 있는 <그림책의 탄생-19세기 전후 유럽 그림책의 풍경> 전시회 책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애정을 표시했다. 지난 7월20일 문을 열었고, 연말까지 계속될 이번 전시회에는 당대를 빛냈던 출판 장인들과 예술가들의 작품 110종 193권이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에 걸쳐 4가지 주제별로 나뉘어 진열돼 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최고의 민중화가’로 칭송하면서 ‘그의 그림을 따라 그리려 했지만, 불가능하다’고 했다는 프랑스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판화작가)의 책들이다. 당시 화가들도 책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중과의 소통을 꾀했다.” 2층 전시실에는 도레의 <갈까마귀> <실낙원> <런던:순례여행> <스페인>이 펼쳐져 있고, 벽에는 고흐가 모사했던 그의 <런던 뉴게이트 교도소 풍경>이 걸려 있다. 윌리엄 터너의 그림과 윌리엄 모리스의 명작들도 다시 볼 수 있다. 진본들도 있지만 대부분 원본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인쇄상태가 좋은 전사본(재현본)들인데, 그것도 구하기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가격도 만만찮단다.
지하 1층에는 성화와 그림 성경 12종이 전시돼 있다. ‘최고의 인쇄예술품’으로 “빌 게이츠도 욕심을 냈지만 못 구했다”는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를 비롯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과도 밀접히 연관돼 있는 독일 성경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알브레히트 뒤러, 살바도르 달리 등의 그림이 담긴 한정판 성경들도 볼 수 있다.
지상 1층에서는 그림책의 역사를 바꾼 ‘영국 3대 작가’인 랜돌프 칼데콧·월터 크레인·케이트 그린어웨이를 비롯 현대 그림책의 등장을 알린 유럽의 주요 그림책들, 3층에서는 그리스·로마 신화와 아라비안나이트에서부터 돈키호테·셰익스피어와 찰스 디킨스 작품 등 고전들이 다양한 크기와 색상을 자랑하면서 관람객을 맞는다.
전시품들은 모두 김 대표의 개인 수집품들이다. “이제까지 모은 게 한 500여권 될까요?” 특별히 애착이 가는 것으로 그는 “윌리엄 모리스의 출판공방 켈름스콧 프레스에서 만든 53종 68종의 책 세트”를 맨먼저 꼽으면서 “굉장히 의미있는 콜렉션”이라고 강조했다. 사회주의자였던 윌리엄 모리스에게 사상적으로 영향을 준 영국 사회사상가 존 러스킨 전집을 그 다음으로 꼽는다. “러스킨 관련 주요책들은 다 갖고 있다.” 또 ‘세계 3대 아름다운 인쇄본’의 하나라는 윌리엄 모리스 디자인의 제프리 초서 작품집…, 줄을 잇는다.
“국제출판협회(IPA) 서울 총회 때 각국 참석자들이 와서 보고 반색했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작가인 오에 겐자부로도 윌리엄 모리스 작품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 덕분에 둘이서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책을 매개로 세계인들이 그렇게 모여들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교류하면서 친구가 된다.”
‘왜 그렇게 많은 품과 돈을 들여 그림 책을 수집하는가?’에 대한 그 나름의 답변인 셈이다. “책을 매개로 한 인식의 공유, 지평의 확장 심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출판·인쇄의 올바른 발전, 고품격 발전에 기여하는 것”도 빼뜨릴 수 없는 그의 의미 부여 가운데 하나다.
김 대표는 책박물관과 연결돼 있는 북하우스도 안내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라고 그가 자찬한 북하우스 서가들은 파주 출판도시가 최근 개장해 “예상 이상의 호응을 받았다”는 책읽는 공간 ‘지혜의 숲’의 원형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김 대표는 파주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과 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고, 내년 출범 10돌을 맞는 동아시아출판인회의에도 주요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근교에 있는, 장서 600만권을 자랑하는 헌팅턴 라이브러리 같은 데 가보면 정말 대단하다. 일본에서 열리는 앤티크 북쇼도 볼만하다. 좋은 책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간다. 네덜란드에 가면 1200년 된 고딕 성당을 책방으로 꾸며 놨다. 책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곳들이다.
그는 문득 말했다. “한진이 얼마 전 경복궁 옆 옛 미대사관 숙소 터에 호텔 대신 복합문화공간을 세우겠다고 밝혔는데, 평가받을 만한 결정이다. 거기에 도서관을 포함한 멋진 책의 전당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책은 문화융성의 핵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최고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관광상품도 될 수 있다. 거기에 전시나 공연도 함께 할 수 있는 책의 전당을 만든다면 단연코 호텔보다 훨씬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것이고,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도 훨씬 높아질 것이다. 금속활자와 팔만대장경, 조선왕조 실록 등 우리는 세계에 보여줄 뛰어난 출판문화를 갖고 있다.”
김 대표는 내년 출판인생 40년을 맞는다. “지금까지 3천 종 정도의 책을 냈다. 내년에는 큰 책과 작은 책, 젊은층과 고령층의 조화를 염두에 두고 약 40가지 주제별로 책을 보여주는 기념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그는 “다시 새로운 책 운동을 펼치겠다”고 다짐했다.
“서점이 무너지고 편집도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종이책의 시대가 가고 있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 유럽만해도 종이책이 아니라 전자책이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이런 변화를 제대로 감지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책·출판이라는 국가적 중대사를 관련 업계가 알아서 하라는 건 정부의 할 일을 망각한 무책임한 얘기다.”
오는 19일 그는 도쿄에서 열리는 저서 <책의 공화국에서-내가 만난 시대의 현인들 책만들기 희망만들기>의 일본어 번역판 <책으로 만드는 유토피아-한국출판 정열의 현대사> 출간 기념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글·사진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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