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10-02 11:21
[기고] 책, 사회를 지키는 최선의 방어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5&no=940676 [265]
2014년은 대한민국과 이탈리아가 외교 관계를 맺은 지 130주년이 되는 해였다.

1884년 6월 12일은 양국 특명전권공사였던 김병시와 페르디난도 데 루카가 조선의 수도 한양에서 우호통상협력조약에 서명한 역사적인 날이다. 조선과 이탈리아의 수교 역사는 서구 어느 나라와 비교해봐도 결코 순위가 뒤지지 않는다. 미국(1882년) 영국(1883년) 독일(1883년)보다 약간 늦지만 러시아(1884년) 프랑스(1886년) 오스트리아(1892년) 벨기에(1901년) 덴마크(1902년)보다는 그 시기가 앞섰다.

주한 이탈리아문화원은 지난 한 해 이를 기념해 인문정신과 한류의 메카 대한민국에서 다양한 문화 교류 행사를 개최했다. 그 과정에서 양국 국민은 서로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더욱 강화했고, 현재와 미래에 당면한 도전에 함께 대응할 수 있는 문화적 정체성도 확립할 기회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우호와 협력의 130년을 기념하기 위해 2014년 `Culture Focus Country` 자격으로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했던 이탈리아는 새로운 131년 수교의 해인 올해 도서전(10월 7~11일·코엑스)에서 `주빈국`으로 부스를 마련한다.

이탈리아문화원은 주한 이탈리아무역공사와 긴밀하게 협력하며 기획·구성한 이탈리아관을 통해 이탈리아 출판 문화와 인문정신을 선보인다.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 연극 공연, 시 낭송회, 음악회, 영화 상영회를 주최하며 작가, 시인, 지식인, 예술가, 과학자들을 초대해 여러 분야의 책들을 폭넓게 소개할 예정이다.

또 이탈리아무역공사는 이탈리아 남부 지역 네 도시인 캄파냐, 풀리아, 칼라브리아, 시칠리아 출판업을 만날 기회도 제공한다.

이탈리아관과 함께 두 개의 이탈리아 행사 공간이 준비된다. 첫 번째 행사는 파비안 네그린의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 삽화전이다. 이탈리아문화원이 기획해 한국에서 처음으로 번역·출판된 책 `늑대 천사`를 만날 수 있다. 어린이들을 위해 책을 읽어줄 사람은 인기 TV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의 고정 패널로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알베르토 몬디다. 두 번째 행사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국민적 시인 알리기에리 단테에게 헌정하는 전시 공간이다. 작품 속 시와 지성을 보여주는 10개의 패널과 작가 안나 오네스티의 기념물을 전시할 예정이다.

이탈리아에 2015년은 세계문학사의 위대한 걸작 중 하나인 `신곡`의 저자 단테 탄생 750주년이자 16세기 대표적 인쇄업자로서 최초의 근대식 출판사를 창업한 알도 마누치오 서거 500주년이다. 이와 동시에 저명한 시인이며 소설가, 영화감독, 무대감독, 극작가, 평론가였던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서거 4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다. 이러한 뜻깊은 해인 2015년 서울국제도서전에 이탈리아가 주빈국으로 참여함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책은 다른 소중한 문화유산들과 동등하게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한다. 로마 철학자 세네카가 염원했던 것처럼 비판적이고 집중적인 독서 형태로 돌아가야 한다. 종이로 인쇄된 책이든, 다양한 수단으로 유통을 확대시키는 기술적 도움을 받은 e북(전자책) 형태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리고 페트라르카와 마키아벨리가 격찬한 대화의 형태로, 프로스트의 교훈처럼 독서를 통하지 않고는 열 수 없는 세상을 향한 시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은 2015 토리노 도서전 개막연설에서 "사람들은 군중의 외로움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우리는 사회 조직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이 위험에 대응해야 하는데 이러한 방어의 최선책은 문화"라면서 "분류, 형태, 내용 등이 바뀔지라도 글과 독서라는 자산은 포기할 수 없다. 독서를 한다는 것은 각 개인의 자산이 아니라 공공의 자산이며 도덕심의 산소"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도서전을 통해 한국 친구들이 수세기에 걸쳐 권위와 실험정신을 인정받은 이탈리아 출판과 독서 문화의 업적을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매일경제 2015.10.02 안젤로 조에 주한 이탈리아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