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10-13 17:04
[태평로] 박물관에 나붙은 '유물 수배' 전단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0/12/2015101203661.htm… [403]

김태익 논설위원

박물관 전시장 유물이 있어야 할 자리엔 유물 대신 '공개 수배' 전단이 붙어 있었다.

 "생년월일: 1989년 4월 24일, 부모: 이찬진 김택진 등 4명, 특징: 워드프로세서 '한글'의 최초 상용 버전으로 디스켓에 담겨 있음…."

용산 국립 한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글 정보화 특별전'은 디지털시대 한글 기계화의 발자취를 실물(實物)로 보여주는 귀한 전시회다.
그런데 이 자리에 꼭 있어야 할 자료가 없었다. 1989년 4월 발매돼 한글 워드프로세서 대중화의 출발을 알린 '한글1.0' 패키지(5.25인치 플로피디스크·설명서·박스)다.
한글 정보화 역사에서 단군할아버지에 해당하는 자료다. 전시를 앞두고 박물관은 홈페이지에 공고를 내고 전국의 IT 전문가들에게 수소문하는 등 백방으로 뛰었다.
그러나 끝내 '한글1.0' 원본을 찾지 못했다. 우리 IT 발전 속도가 숨 가쁘긴 했다.
그렇다 해도 불과 26년 전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전시장에 수배 전단을 붙여야 하는 박물관 전시에서 우리 문화의 부실한 뒷모습을 본다.

며칠 전 미국 뉴어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컬러 사진이 공개됐다.
고종이 조선에 온 미국 대통령 딸 일행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학문적으로 이 사진이 중요한 것은 '광무9년 재경운궁 김규진 조상(光武九年 在慶雲宮 金圭鎭 照相)'이란 열석 자가 옆에 쓰여 있기 때문이다.
 '1905년 덕수궁에서 김규진이 찍었다'는 뜻이다. 김규진은 한국 사진의 개척자다.
지금까지는 그가 1906년 일본에 가 사진을 배우고 그해 한국인으로선 처음 고종 사진을 찍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번 사진 발견으로 한국 사진사(史)를 다시 써야 하게 됐다.
문제는 이런 자료를 어째서 한국이 아니라 미국 박물관에서 찾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한국 최초의 사진관을 열었던 김규진은 사진을 수천 수만 장 찍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열댓 장이다. 반면 미국 사절단 일행은 이 사진을 선물 받아 30년 넘게 보관했다.
그가 죽자 유족은 이를 박물관에 기증했다.

미국 보스턴 근처에 있는 피바디 에섹스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거기서 김옥균 서광범 윤웅렬 등 한국 개화파 지도자들의 명함을 보았다.
 1882년 일본에 가 있던 이 박물관 에드워드 모스 관장이 도쿄에서 김옥균 일행을 만났을 때 받은 것이다.
한자와 영어 알파벳으로 이름을 썼다. 빛바랜 명함에서 한국 개화사가 겪었던 비바람이 느껴져 뭉클했다. 물론 한국엔 없는 것들이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선 미국 독립선언서 원본만 중요한 게 아니다.
 거기 있는 문서 90억 장 중에는 "내 자식 먹일 쌀, 쥐새끼가 다 먹는다"는 빨간색 한글 표어가 선명한 1960년대 한국 쥐잡기 계몽 포스터도 있다.
 1950년 시인 고은이 다니던 때의 군산중학교 학생 수(453명)를 담은 자료, 마포 당인리 발전소를 지을 때 한국인 노무자들에게 지급한 일당 명세표도 고스란히 보관돼 있다.
이게 미국의 힘이다.

한국은 제헌헌법 원본이 없는 나라다. 자료 부실에 관한 한 개인이나 기관이나 나라나 차이가 없다.
 공동체가 걸어온 길에 대한 경의(敬意) 없이 새로운 것만 좇는 풍토에서 문화와 지성은 부박(浮薄)함을 피할 수 없다.
 역사를 이렇듯 가볍게 대하니까 진실이 혼란스러워지고, 역사를 보는 눈을 둘러싼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 조선일보 2015.10.13, 김태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