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11-18 11:44
[World & Now] 책의 부활 알리는 `컬래버 서점`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5&no=1090755 [275]
서울의 청담동 격인 일본 도쿄 오모테산도에 지난달 여행사 HIS 대리점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여행상품을 파는 대리점이지만 실내 분위기는 커피 향기가 풍기는 고급스러운 서점과 다름없다. 대리점 1층에는 일본 유명 커피점인 사루타히코 커피점이 들어와 있다. 보통 여행 대리점에는 국내외 여행상품을 소개한 현란한 팸플릿들로 가득 차 있지만 이곳에는 온갖 종류의 책들이 벽을 채우고 있다. 여행 가이드북은 물론 에세이, 소설, 지도, 사진집에 이르기까지 1500권이 넘는 책들이 도서관처럼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서점에 여행 대리점이 들어와 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릴 정도다. 평범한 여행사 대리점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재해석했다.

신주쿠의 브루클린파라라는 카페는 클래식풍의 고급스러운 서재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디지털 서적에 몰려 점점 설자리를 잃고 있는 `책`을 문화공간의 필수품으로 재해석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곳은 `쓰타야`라는 곳이다. 컬처컨비니언스클럽(CCC)이라는 회사가 설계한 쓰타야는 점점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는 책을 문화공간의 중심으로 가져왔다. 지난여름 문을 연 세타가야의 쓰타야에는 넓은 1, 2층 공간에 즐비한 책장에 수많은 책들이 꽂혀 있고, 그 책장 사이에는 전자제품과 요리기구, 자전거, 로봇까지 전시돼 있다.

책장 사이에는 수십 명이 앉아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도록 널따란 책상과 의자가 마련돼 있는가 하면, 푹신한 소파에 누워 종일 책만 있다 가도 될 만큼 안락한 공간까지 있다.

이에 앞서 몇 년 전 문을 연 시부야 근처 다이칸야마의 쓰타야는 도쿄를 찾는 관광객들이 한번쯤 들르는 필수 관광코스가 됐다. 쓰타야가 일본 서부의 사가현 시골의 한 지자체와 손을 잡고 문화공간으로 재해석한 도서관은 지역 명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서점에서 액세서리나 문구류를 파는 수준을 넘어 서점이 다른 상품과 결합해 문화공간으로 변신하는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 서점` 또는 서점3.0이라는 개념은 점점 더 다양하게 확산될 조짐이다. 책을 소품으로 한 작업을 해온 북 디렉터 하바 요시다카 씨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책은 모든 테마에 대해 인류의 지적활동을 기록한 것"이라며 "어떤 업종에도 대응할 수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책은 주변에 꽂혀 있는 것만으로도 시각적으로 꽤나 지적인 이미지를 가져다주는 데다 잠깐 서서라도 제품과 관련이 있는 책을 읽다 보면 바로 옆에 전시된 제품에 대해 이해가 높아지는 효과를 내고 있다.

전통적인 서점은 줄고 있지만 책을 매개로 한 문화공간이 늘고 있는 것은 단카이 세대와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전후 일본 경제를 이끌었던 단카이 세대가 은퇴하면서 문화공간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디지털 만능시대에 책의 부활이 한 번의 유행에 그칠 것인지, 디지털과의 공존으로 뿌리내릴지 흥미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매일경제 2015.11.17 황형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