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2-19 16:28
학술지 - 학술적 소통과 논쟁의 새로운 장 … 부정기성 극복·구성원 참여가 관건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2089 [231]

‘비평논문’·‘서평’, 학술지 자리 잡을까?

학회 학술지를 통해 소통과 논쟁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학술대회장의 한정된 시간은 연구자들에게 충분한 대화와 논쟁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학술지 지면을 빌려 논쟁을 치밀하게 전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학술지 하면 빼곡하게 각주를 단 논문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학문 연구의 정석이 선행연구에 대한 검토, 방법론 제시, 기존 주장에 대한 비판, 새로운 해석의 도출 등에 놓여 있으므로 각주를 동반한 논문이 학술지 중심에 놓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韓國史學史學會(회장 조성을)는 반년간지 학술지인 <韓國史學史學報>에 ‘서평’을 실어오다 2012년 제26집에 이르러 이색적인 코너를 확장했다. ‘비평 논문’이란 이름의 새로운 꼭지다. 그렇다고 ‘서평’을 폐기한 것은 아니다. 최근호에는 정구복과 조성을의 서평도 게재돼 있다. 눈여겨볼 대목은, 매호마다 ‘비평 논문’을 수록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정기적인 꼭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자리가 없는 것도 아닌 즉, 부정기적인 운용이란 점이다. ‘비평 논문’의 형식 또는 서평의 확장이 학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단적인 예다. 무엇보다 ‘비평 논문’ 집필이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사학사학보> 편집위원인 오항녕 전주대 교수는 “‘비평 논문’은 단순한 리뷰가 아니라 비평 대상을 넘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걸 지향한다. ‘비평 논문’이 부정기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비평, 평가를 할 수 있는 전공 영역 연구자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이번 32집에 실린 ‘비평 논문’은 계승범 서강대 교수의 「광해군, 두 개의 상반된 평가」다. 광해군에 대해 서로 달리 접근한 한명기 명지대 교수의 『광해군: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역사비평사, 2000)와 오항녕 교수의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너머북스, 2013)을 대상으로 했다. 계승범 교수 역시 광해군에 관한 일련의 논문을 발표한 전공 교집합 연구자라 할 수 있다. 이런 조건이 맞아야 ‘비평 논문’이 가능하니, 집필자를 적시에 찾아내기란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다.

또 하나 이유는 ‘업적평가제’의 그늘에서 찾을 수 있다. 학술지 서평은 업적평가에 쫓기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품은 품대로 들지만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는 ‘어정쩡한’ 중간 형태라는 게 껄끄러웠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집필 청탁을 흔쾌히 수락할 수 있는 뱃심 좋은 연구자를 찾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국사학사학보>의 ‘비평 논문’은 논문에 방점을 쳐서 이 문제를 넘어서려 한 것으로 보인다. 33쪽 분량에다 참고문헌, 영문초록(abstract)까지 갖췄다. 논문 투고일, 논문심사 완료일, 게재 확정일까지 명시했다. 논문과 같은 ‘점수’를 챙길 수 있는 방안임을 알 수 있다.

학문공동체 내부에서 대화나 논쟁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본다면, 학회 학술지를 통해 소통과 논쟁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학술대회장의 한정된 시간은 연구자들에게 충분한 대화와 논쟁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학술지 지면을 빌려 논쟁을 치밀하게 전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국문학 분야의 한 학회장을 맡고 있는 박 아무개 교수는 “요즘 학회가 너무 요식화 되고 있다. 세분화가 너무 빨리 진행되고 있다. 논문 발표자와 토론자, 학회 관계자를 빼면 참석도도 떨어진다. 학술지에 논쟁적인 리뷰를 만들어, 논쟁을 지면으로 옮기고 싶은데,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박 교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연구자들이 많을 것이다. <한국사학사학보>의 ‘비평 논문’은 부정기성이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신중하게 검토해볼 수 있는 지적 소통의 활성화 방안이 될 것이다.

‘비평 논문’은 아니지만 서평 방식을 적극 활용해 학술지를 풍요롭게 만드는 사례로 한국사회사학회(회장 한영혜)의 <사회와 역사>를 꼽을 수 있다. 통권 제108집까지 나온 이 학술지는 최근 꾸준히 ‘서평과 반론’을 운용하고 있다. 기존의 서평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반론까지 게재함으로써 역시 ‘논쟁적 대화’를 모색하고, 지적 지평을 확장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서평 행위는 어떤 형태로든 ‘반론’과 이어지게 돼 있다. 따라서 <사회와 역사>가 학술지 출간 일정을 조율해 ‘서평과 반론’ 형태로 대화의 현재성을 강조한 것은 다른 학술지도 참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회와 역사> 제108집의 경우, ‘서평과 반론’에는 김학재(베를린 자유대 동아시아대학원)의 책 『판문점 체제의 기원: 한국전쟁과 자유주의 평화기획』(후마니타스, 2015)이 놓여 있다. <사회와 역사> 편집위원회가 서울대 사회사/역사사회학 공부 모임(이하 공부 모임)에 제안을 함으로써 공부 모임이 이 책에 대한 세미나를 진행하고, 이에 대한 서평을 공동으로 작성한 사례다. 서평은 저자에게 보내졌고, 반론이 들어왔다. 물론 <사회와 역사>의 ‘서평과 반론’은 <한국사학사학보>의 ‘비평 논문’처럼 완전한 논문 형식을 갖추진 않았다. 분량도 적고, 영문초록도 달지 않았지만, 참고문헌, 투고일과 논문게재 확정일은 명시해 ‘준 논문’임을 알 수 있게 했다.

<역사와 현실>을 간행하고 있는 한국역사연구회(회장 정용욱)도 ‘서평’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최근호인 제98호는 『고조선사의 전개』(박준형 지음, 서경문화사, 2014)를 리뷰한 박선미의 글과 『민중 만들기』(이남희 지음, 후마니타스, 2015)에 대한 황병주의 서평이 실려 있다. <역사와 현실>은 <한국사학사학보>보다 조금 유연한 편집을 보이고 있는데, 시론, 특집, 일반 논문, 연구동향, 서평으로 구성해 아카데미즘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보니 ‘서평’ 글들에는 투고일, 게재확정일, 참고문헌 같은 게 일체 없다. 달리 보면, 학술형식적 요건 없이도 책임 있는 비판적 리뷰가 가능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사회와 역사>가 갖췄던 형식요건마저 거추장스럽게 여기고 본연의 ‘서평’에만 집중한 것인데, 이는 학회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가 전제되지 않으면 결코 쉽지 않다.
한국사학사학회, 한국사회사학회, 한국역사연구회 모두 공통점은 학술지를 ‘오픈’한 데 있다. 학회원만 볼 수 있게 학회 안으로만 도는 게 아니라 대중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열어두고, 직접 소통의 창에 나섰다. <한국사학사학보>는 정가 15,000원에 경인문화사가 제작, 판매하고 있다. <역사와 현실>도 경인문화사에서 인쇄해 15,000원에 유통되고 있다. <사회와 역사> 역시 12,000원에 출판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학회 운영비로 허리띠를 잔뜩 조인 학회들이라면 이들 학회의 방식도 타산지석이 될 수 있지만, 이들이 운용하는 ‘비평 논문’, ‘서평’의 방식으로 학술담론의 새로운 갱신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는 대목을 더 눈여겨봐야 한다. <한국사학사학보>의 ‘비평 논문’이 모색 중에 있는 형식일지라도, 학술지 편집에 새로운 바람을 가져올 수 있는 시도라고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교수신문 2016.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