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6-08 13:21
`7년 산고 끝 개관` 영상자료원 파주보존센터 조소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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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조소연 한국영상자료원 파주보존센터장이 필름 저온 보존고에서 보관하고 있는 작품의 필름캔을 열어 보이고 있다.


"한국영화 100년史 되살리고 기억하죠"

"디지털 데이터가 영구적이고 관리도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착각입니다. 저장매체의 수명이 길지도 않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달라지면 데이터를 읽을 수 없죠. 3~5년에 한 번씩 옮기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요. 하지만 필름은 적절한 환경에서 관리하면 100년은 물론이고 500년까지도 보존이 가능하죠."

조소연 한국영상자료원 파주보존센터장(43)의 얘기를 듣고 지금까지의 상식이 깨졌다. 디지털 데이터가 아날로그 매체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바로 영화 아카이빙(기록물 보관·관리)이다.

한국 영화의 마지막 거처인 파주보존센터는 지난달 19일 개관했다. 2009년 보존고 구축 기본계획을 수립한 지 7년 만이다. 조선희 전임 원장 때 시작한 일이 이병훈 전임 원장을 거쳐 류재림 현 원장에 이르러서야 결실을 맺었다. 조 센터장은 계획 수립 당시부터 참여했다.

이화여대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연세대에서 저작권법, 중앙대에서 영화이론 석사 학위를 취득한 조 센터장은 1998년 정통부 산하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에서 저작권 정책과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담당했다. 그는 "2003년부터 영상자료원에서 일했다. 자료는 무궁무진하고 데이터베이스 작업은 미진했던 한국 영화와 관련해 할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센터 업무는 크게 복원과 보존 두 가지다. 오래되고 손상된 필름을 보수해 새 필름에 복사하고, 스캔해 디지털 데이터로 만든다. 이후 색 보정과 복원 작업을 거치면 옛 작품도 세월을 뛰어넘은 온전한 영화로 부활한다.

센터에는 국내 유일의 필름현상실이 있다. 영화 제작, 상영 환경이 100%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수요가 없어져 민간 현상소가 모두 문을 닫은 탓이다. 조 센터장은 "고민 끝에 영화진흥위원회 시설을 이관받았다. 덕분에 자체적으로 유일본 필름을 복사해 보관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센터에는 국내에 2대밖에 없는 4K(풀HAD 해상도의 4배) 해상도 필름 스캐너도 갖춰 옛 작품도 초고해상도(UHD) 영상으로 되살릴 수 있다. '새집' 자랑에 여념이 없던 조 센터장은 "과거에는 복원 작품을 선별해서 1년에 한두 편 작업하기에도 벅찼는데 이제 디지털 스캔 작업과 함께 복원까지 할 수 있는 인프라스트럭처가 갖춰졌다"고 말했다.

1974년 한국영상자료원이 생기고, 1996년 영화 필름 의무납본(제출) 제도가 정착되면서 작품 보유율은 100% 수준으로 높아졌지만 이전 시대의 작품은 보유율이 미진해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조 센터장은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이 보유하고 있는 영화는 5867편으로 전체(7659편)의 76% 수준"이라며 "한 해 평균 300여 편의 한국 영화가 제작돼 이곳에 온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30년 정도 축적될 자료를 고려해 보존고를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 영화사의 '잃어버린 걸작'이 된 두 편에 영화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1926년 만들어진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과 1966년작 이만희 감독의 '만추'는 현재 필름이 없어요. 납북됐던 고(故) 신상옥 감독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필름보관소 목록에서 '만추'를 봤다고 회상한 것으로 미루어 '만추' 필름은 북한에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북한 측이 입을 꼭 다물고 있어서 확인이 안 되네요."

올해는 최초의 한국 영화로 평가받는 '의리적 구투'(1919)가 개봉한 지 97년이 되는 해다. 한국 영화 100년사를 논하기 위해서는 한국영상자료원과 파주보존센터의 역할이 크다. "필름 복원에 관해서는 이탈리아 볼로냐가 중심지예요. 이제 우리나라도 시설이나 기술력은 그에 못지않거든요. 장기적으로 우리가 '아시아의 볼로냐'가 되도록 차근차근 준비하겠습니다."



- 매일경제. 홍성윤 기자. 2016.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