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6-17 13:08
장난감 60만 점, 중년의 소소한 추억도 미래 유산
   http://www.seouland.com/arti/society/society_general/623.html [225]

‘20세기 소년, 21세기 아재의 장난감 창고’를 주제로 열린 토크쇼에서 만화책 수집가 김형규(왼쪽)씨와 ‘뽈랄라 수집관’의 현태준 관장이 장난감에 얽힌 옛 추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서울문화재단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에 참여한 장난감 수집가 현태준씨 토크쇼 현장

“달려라 마루우치이, 날아라 아라아치이, 마루우치 아라치, 마루우치 아라치, 야!”  

지난 7일, 서울시청 지하 1층 시민청 갤러리에 옛 만화영화 주제가가 울려퍼졌다. 청중은 웃음과 박수로 화답한다. 노래를 부른 사람은? 서울문화재단 주최의 ‘20세기 소년, 21세기 아재의 장난감 창고’ 토크쇼에 관객으로 참석한 서영희(46)씨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마이크만 들이대도 바로 노래가 나오는 걸 보니, 관객들을 불러모은 옛 장난감에 얽힌 추억의 힘은 크다. 용기 있게 노래를 부른 서씨는 토크쇼의 주인공인 현태준(50)씨의 소장품 ‘크로바 우주부록-스페이스 크라울러 SA-14’를 선물로 받았다.  방송인으로 유명한 만화책 수집가 김형규(40)씨가 사회를 보고 ‘뽈랄라 수집관’의 현태준 관장이 자신의 장난감 수집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현 관장은 2008년부터 자신이 모은 놀이판, 딱지, 종이인형, 장난감 상자를 비롯한 옛 장난감 3만 점 정도를 홍대 앞에 있는 ‘뽈랄라 수집관’에 전시하고 있다. 그가 28년간 모은 잡동사니들이 무려 60만 점에 이른다. 현 관장은 토크쇼에서 “작업실 임대료를 충당할 생각으로 처음 전시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물건들을 하나씩 진열하는 데만 3년이 걸리더라고요”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현 관장의 이번 토크쇼에는 관객 50여명이 참석해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꿰고 있는 장난감의 역사가 흥미진진하다. 일례로 한국에 최초로 장난감이 들어온 것은 60년대에 미군부대를 통해서다. 당시에는 장난감이 수입 금지 품목이었기 때문에 미군부대에서 팔던 미제 프라모델을 빼돌려 명동 시내에서 판 것이 장난감 유통의 시초가 됐다. 인기가 많아지다 보니 이를 모방한 국산품도 생겨났는데 ‘과학 교재’라는 명칭을 달고 나와, 아이들이 ‘공부를 위한 것이다’라는 핑계를 대며 부모에게 사달라고 졸랐다 한다.  

토크쇼 중간중간에 퀴즈도 이어졌다. ‘1970년대 문방구에서 팔던 물품이 아닌 것은?’ ‘다음 중 국산 만화가 아닌 것은?’과 같이 옛 장난감과 만화에 대한 것이다. 정답을 맞힌 사람에게는 현 관장의 소장품인 ‘올림퍼스 마크로스’ ‘캔디 인형세트’ ‘크로바 우주부록’ ‘루루 인형세트’를 선물로 줬다. 지난 3월, 현 관장은 장난감동호회와 예전에 장난감을 만들던 회사 등을 찾아 인터뷰하고 자신의 추억을 담아 <소년 생활 대백과>를 펴냈다. 그는 “키덜트 문화를 유아적인, 정신적인 퇴행으로 치부하기도 하는데, 여가 생활을 즐기는 어른이라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 개미처럼 일하기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사라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번 행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작년 6월부터 진행하고 있는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의 일환이다. 서울문화재단은 올해 12월30일까지 서울 시민들의 추억이 담긴 기념품들을 기증 받아 인터넷 박물관을 운영한다. 지금 당장 실물 기증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인터넷을 통해 기록을 남기는 것이기에 데이터 수집의 의미가 더 크다.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기억과 감성을 지닌 애장품이라면 무엇이든 전시할 수 있다. 오래된 가게의 간판, 광고 전단지부터 공연 티켓, 교복 등의 생활 물품 등등 종목도 다양하다. 현재까지 참여한 사람만 418건에 이른다. 이 밖에도 서울문화재단은 캠페인 종료 전까지 전문 수집가 100명을 만나 그들의 사연을 인터뷰하고 물건을 기증받을 예정이다.  애장품과 연계해 옛 추억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사도 꾸준히 기획 중이다. 지난 4월에는 ‘별별수집가’라는 주제로 만화가 허영만을 비롯해 기증자 23명의 수집품을 전시했다. 이번 토크쇼 다음에는 ‘7080 음악다방’이라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시민들의 사연을 받아 ‘보이는 라디오’ 콘셉트로 옛 노래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8월27일 시민청 활짝라운지에서 열릴 예정이다.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에 참여하고 싶다면 캠페인의 페이스북 페이지(www.facebook.com/museumseoul)를 통해 애장품을 접수시키면 된다. 참여자는 서울문화재단이 주최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네트워크 행사에 초청받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기증한 물품은 가치평가에 따라 ‘서울특별시 미래 유산’ 인증 대상 후보가 되고, 2018년을 전후로 설립될 예정인 시민생활사박물관, 사진미술관 등 13개 박물관에 제공되기도 한다. 실물 기증 여부는 등록할 때 선택할 수 있다. 현 관장은 토크쇼에서 “박물관에 가면 임금이나 양반들이 쓰던 물건들이 전시돼 있어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서민으로 살았는데도 말예요.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쓰는 물건을 보관하는 곳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라며 이번 캠페인에 참여한 뜻을 밝혔다. 그는 “이렇게 수집한 물건들을 정리하다 보니 제 개인의 역사를 쓴다는 의미도 생기더라고요” 하고 덧붙였다.  

캠페인에 참여할 물건이 없다면? 지금부터 꾸준히 모아 보는 것도 방법이다. 20년 뒤 나만의 박물관을 만들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현 관장이 전하는 비법은 다음과 같다. “날마다, 조금씩 꾸준히 수집하는 게 중요해요. 이틀에 한 개도 좋으니 조급해하지 말고 자주 꾸준히 모아요. 돈 없이 할 수 있는 물건들 위주도 좋아요. 라면 봉지처럼요. 언젠가 라면이 단종된다면, 이 역시 소중한 물건이 될 테니까요.”  


-한겨례신문. 최아리 인턴기자. 2016.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