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6-21 14:45
"古書는 문화재… 사람들과 교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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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승구 화봉문고 대표가 서울 인사동 인사문화중심에서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판본을 들어 보이고 있다. ‘화봉(華峯)’은 그의 호로 고향 담양에 있는 ‘화봉산’에서 따온 것이다. / 장련성 객원기자



[고서 갤러리 화봉문고 여승구 대표]

"요즘 경매에는 한글 고서가 인기… 김소월 '진달래꽃' 1억원 넘기도"
'책 박물관' 만드는 게 마지막 꿈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는 고서(古書)가 전시된 갤러리가 하나 있다. 조선 시대에 인쇄된 '삼국유사'부터 1200년대 발간된 우리나라 최초 도서 목록인 '대장목록'과 같은 사료(史料),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판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 등 근대 한국 문학의 명시집 등이 전시돼 있다.

주인인 여승구(80) 화봉문고 대표는 이곳에서 두 달에 한 번씩 '고서 경매'를 연다. 지난해 12월 경매에서는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판본이 1억3500만원에 낙찰됐다. "제주도에 사는 분이 받아갔어요.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더군요. 요즘은 한국 문학 작품들이 경매에 많이 나와요. 고서에 관심 있는 40~50대가 늘어나면서 한문보다는 한글로 쓰인 고서가 인기를 얻는 것 같아요."

여 대표 역시 어마어마한 고서 수집가다. 서울 성북동 170평 규모의 서고(書庫)에는 지난 34년간 수집한 고서 10만여 권이 쌓여 있다.

여 대표는 "웬만한 건 다 있다. 죽기 살기로 모았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마누라와 아들 두 놈 모두 저를 '고서에 미친 사람'이라고 합디다. 결국 마누라와는 갈라섰어요. 살고 있던 성북동 집을 주고, 저는 지금 보증금 5000만원짜리 월세에 삽니다. 고서라는 블랙홀에 빠져버린 것이죠."

문학청년이었던 그는 젊은 시절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비롯한 외국의 학술잡지를 수입해 국내 대학 도서관에 공급하는 일을 했다. "광주에서 고교 졸업하고 상경해 친척이 운영하던 서점에서 일했어요. 돈 벌어 중앙대 정외과를 갔는데 형편이 어려워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사업을 시작한 거죠."

스물일곱 살 때였다. 이후 '한국출판판매주식회사'를 세우고 '월간 독서'라는 잡지를 만들었다. '이달의 좋은 책'을 선정해 월간 독서를 통해 발표했다. 잡지는 신군부에 의해 폐간됐다. 여 대표는 북페어를 열면서 고서 수집을 시작했다.

"국내 최초였어요. 책을 홍보하기도 하고 정가보다 싸게 살 수 있는 장(場)이었죠. 그때 한 국어 교사가 '고서 200권을 갖고 있는데 판매를 좀 도와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한 일간지 문화부장의 '당신이 사서 문학 박물관을 만들라'는 조언을 듣고 고서 수집가로 방향을 틀었다. 지금 가진 한용운의 '님의 침묵', 백석의 '사슴' 등 초판본은 모두 그때 사들인 것이다.

한 권에 수천만원씩 하는 고서들을 찾아 닥치는 대로 사들이다 보니 본업은 뒷전으로 밀렸다.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사옥으로 사용했던 서울역사박물관 옆 빌딩과 임대해 수익을 냈던 종로의 건물까지 모두 팔아 빚을 갚았다. 남은 돈은 전부 고서적에 투자했다. 마지막 꿈은 '책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잖아요. 수년 전부터 정부에 '박물관을 만들면 내가 가진 고서를 다 기부하겠다'고 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하라고 하는데 그렇게는 못하겠어요. 책은 도서관에 들어가면 '정물'이 됩니다. 고서는 문화재로 박물관에 전시해 '동물'처럼 사람들과 교감해야 해요."

지난 18일 열린 경매에서는 많은 책이 유찰(流札) 됐다. 판본이 다른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나왔지만 표지가 다소 손상돼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청마 유치환이 1939년에 낸 첫 시집 '청마시초'가 1000만원에 낙찰됐다.



-조선일보. 심현정 기자. 2016.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