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11-21 13:12
"글로 써두니… 부부싸움한 날 겁나게 생생"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1/17/2016111700214.htm… [220]

(사진1): 김안제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는 “무엇보다 내가 간 장소까지 발걸음 수를 정확히 기록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며 “20년 전쯤 일본에서 산 만보기가 그 고충을 단번에 해결해줬다”고 했다.



['기록의 大家' 김안제 서울대 교수]

먹은 음식·첫 월급·관람 영화 등 70년의 흔적 '안제백서' 발간
"기록하다 보면 정직한 삶 살게 돼"

"일상생활을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면 저절로 선하고 정직한 인간이 됩니다. 글로 남기 때문에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게 되는 것이죠."

김안제(79)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가 다음 달 팔순(八旬)을 맞아 '안제백서'를 발간한다. 초등학교 4학년에 시작해 7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크고 작은 삶의 흔적을 기록한 책이다. 관람한 영화와 찍은 사진, 받은 상, 마신 술, 피운 담배 등 항목이 700개가 넘는다.

김 교수는 우연히 두 번 읽은 책 때문에 기록을 시작했다고 했다. "너무 아까웠어요. 새 책을 한 번 더 읽을 수 있는 시간에 한 번 본 책을 또 봐버렸으니.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여태 본 책을 쭉 적어 내린 게 첫걸음이었죠."

담임 선생님과 친구 이름, 공부 내역, 일기, 가족 대소사 등 기억해 둘 필요가 있는 건 모두 적었다. 신혼여행 중에도, 자녀 결혼식 날도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일기와는 달리 감정을 담지 않고 사실만 기록했다. "기록에 내 판단이 끼어들면 제3자가 봤을 때 믿기 어려워지니까요. 부부싸움을 한 날엔 '부인이 내가 3차까지 갔다는 이유로 화를 냈다'고 적는 식이죠."

대부분 숫자로 채워진 김 교수의 기록은 당시 사회를 되짚어볼 수 있을 만큼 상세하다. 그가 물리학과에 입학한 1957년 1학기 서울대 문리대 등록금은 2만1215원이었다. 4학년이던 1961년엔 1학기 등록금이 5만3745원으로 올랐다. 바나나는 11세 때 처음 맛봤고, 외식은 21세 때 처음 경험했다. 27세 때인 1962년에 남긴 인생 첫 술의 기록은 '병'이 아닌 '홉' 단위로 돼 있다. 연말에 내는 판본에는 그가 기록한 경제적 숫자를 현재 물가로 환산해 통계표로 첨부할 예정이다. "1972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전임강사로 발령받았을 때 받았던 첫 봉급은 5만원, 지금 돈으로 100만원이 좀 안 되더군요."


안제백서의 깨알 기록


기록은 모두 종이에 남겼다. 기록물이 점점 무거워져 아파트에서 살 수 없었다고 한다. "종이라는 게 낱장은 가볍지만 한데 쌓아두면 무게가 상당해요. 내 기록물도 톤 단위를 헤아리니 지하실 있는 단독주택 말고는 갈 곳이 없었죠." 1998년 전주 한옥종이박물관에서 3t 트럭을 보내와 김 교수의 기록물을 받아간 뒤에야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었다. "박물관을 세운 한솔제지에서 찾아와 기록물을 기증해 달라는데 처음엔 거절했어요. 그런데 두 번째로 한솔 사장이 직접 찾아오니 아내가 나서더라고요. 집도 좁고 관리도 힘든데 잘됐다고."

연말에 나오는 800쪽 분량 '안제백서'는 네 번째 판본이다. 환갑 기념으로 교수들이 으레 발간하는 논문집 대신 백서를 낸 게 처음이었고, 정년퇴임 때와 칠순 때도 사비(私費)로 한 편씩 냈다. "하루의 끝에서 기록하려 기억을 되짚다 보면 부끄러운 일이 많이 떠오릅니다. 적다 보면 '내일은 그러지 말아야지' 마음을 다잡게 돼요. 지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한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돼 있을 겁니다. 그렇게 기록은 사람을 키우는 힘이 있습니다. 널리 알리고 싶어 내 기록을 온 세상에 내보이려 하는 거예요."



-조선일보. 문현웅 기자. 2016.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