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12-20 10:17
책 납품을 주유소·철물점이 한다고?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20/2016122000244.htm… [262]

[도서정가제 도입 후… 공공기관 도서 구매 입찰 때 '유령 서점' 난립]

책값 10%이상 할인 못해 이윤 커 개인 사업자들 부업으로 활용
대형서점에 수수료 받고 권리 넘겨… 실제 동네서점 입찰 30% 불과


울산의 한 고등학교는 지난 10월 교내 도서관에 책을 납품할 업체를 선정하려 서점들을 상대로 공개 입찰을 했다. 그런데 울산서점협동조합이 조사한 결과, 입찰에 참여한 11곳 가운데 진짜 서점은 한 곳도 없었다. 모두 철물점이나 주유소 같은 본업(本業)이 따로 있고, 사업자 신고에 '서점'을 부업(副業)으로 끼워 넣은 '유령 서점'이었다. 변광용 울산서점협동조합 본부장은 "유령 서점은 납품 권리를 대형 서점에 팔고 10% 정도 수수료를 받는다"며 "지역에 있는 실제 서점 중 공공기관의 낙찰을 받아 책을 공급하는 경우는 30%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동네 서점을 살리기 위해 2014년 11월 개정된 '도서정가제'가 오히려 '유령 서점'을 양산하는 엉뚱한 결과를 낳고 있다. 과거에는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들이 최저가 경매 방식으로 업체를 선정했다. 그러나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책값 할인율이 최대 10%로 묶이는 바람에 경매가 의미 없게 됐다. 경매에 참여하는 모든 업체가 똑같이 10% 할인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입찰 방식이 추첨제로 바뀌었고, 평소 서점 영업을 하지 않는 유령 서점들이 속속 입찰에 참가해 진짜 서점을 밀어내게 된 것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이모(56)씨는 "동네에 서점이라고는 우리 가게 하나뿐인데, 책 납품 입찰 때 보면 듣도 보도 못한 서점들이 우르르 튀어나온다"며 "추첨에 뽑히는 게 로또나 다름없게 됐다"고 했다.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분류된 공공기관의 도서 구입 공개 입찰에는 대형 서점이 아닌 지역 중소 서점들만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책과는 관계없는 개인 사업을 하면서도 '서점업'을 추가로 등록하면 입찰 참여가 가능하다. 광주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6월까지 광주광역시의 학교 도서관과 공공도서관 등에 납품한 업체 153곳 중 유령 서점이 111곳(72%)이었다. 조강우 광주서점조합연합회 조합장은 "예전에 최저가 경매 입찰 때는 브로커가 낙찰받는 데 성공해도 남는 돈이 많지 않았지만, 책값이 고정되며 이윤이 더 많아지자 오히려 유령 서점이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졌다"고 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유령 서점을 막기 위해 서점으로 등록된 곳이 실제로 책을 파는지를 지자체가 직접 확인하는 '서점인증제'를 도입하고 있다. 경남 창원시는 지난해 11월부터 '창원 지역 서점 인증제'를 실시해 47개 서점을 인증했다. 경북 포항시도 지난 7월부터 이런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대부분 지자체는 근거가 될 법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서점인증제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방의원이 유령 서점과 유착 관계인 경우가 많아 서점인증제 입법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전국 서점가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박용덕 출판기반조성본부장은 "시행 3년째인 2017년에 정책 성과를 보고 문제점을 보완할 예정이며, 아직은 모니터링만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문현웅 기자. 2016.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