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1-06 11:57
[현장에서] 구멍가게식 도서 유통이 부른 송인서적 부도
   http://news.joins.com/article/21086265 [254]

대형 출판도매상 송인서적의 부도로 출판계가 시끄럽다. ‘대형’이라고 했지만 신문의 경제면을 장식하는 대기업 부도 사건에 비하면 송인의 부도 규모는 그야말로 새 발의 피 수준이다. 휴지 조각이 된 송인 어음이 100억원, 출판인들이 ‘잔고’라고 표현하는 각 서점에 깔린 피해 출판사들의 도서 물량 등을 모두 합쳐도 기껏해야 수백 억원 규모다. 전체 도서 유통 물량 가운데 송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10% 정도에 불과하다. 많은 출판사들이 교보문고나 yes24 같은 대형 온라인 서점과는 직거래를 하기 때문에 송인 같은 중간 도매상은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서다. 한 출판인은 “어려움을 겪는 출판사가 많겠지만 1997년 IMF 직후처럼 서점들이 줄도산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세원 노출 꺼리는 작은 서점들
판매관리시스템 POS 도입 안 해
결제 엇박자로 중간도매상 피해

그런데도 송인의 부도가 ‘액면’ 이상으로 시끄러운 이유는 독자 친화성 때문이 아닐까. 가령 한진해운의 부도는 피부에 잘 와닿지 않지만 내가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을 낸 작은 출판사의 부도는 남의 일 같지 않다. 여기다 출판업이 단순 제조업이 아니라 지식과 교양을 생산하는 문화산업이라는 점이 작용해 정부가 공적 자금을 투입해서라도 급한 불을 꺼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

출판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당장 급한 불을 끄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낙후된 도서 유통 구조를 현대화하는 일인 것 같다. 문외한이 들여다 보면 쉬운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우리의 출판 유통 관행과 질서는 복잡다단하다. 상식적인 시각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출판사가 자기 책이 전국의 어떤 서점에서 몇 부가 팔렸는지 알 수 없게 돼 있다. 세원 노출을 꺼리는 작은 서점들이 ‘판매시점관리시스템(POS)’을 도입하지 않아서다. 교보문고나 대형 온라인 서점은 예외다. 편의점에서 초콜릿 바를 하나 구입해도 작동하는 POS가 서점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송인 같은 중간도매상이 중뿔나게 특정 도서의 판매부수를 파악할 리 만무하다.

송인의 내부 전산화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한쪽에서는 팔리지 않은 책을 출판사에 반품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같은 책을 주문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무슨 책이 얼마나 팔리는지 집계되지 않는 상황은 외상 거래의 빌미가 된다. 100원어치가 팔렸다면 실제로 서점이 도매상에, 또 도매상이 출판사에 지급하는 판매 대금은 60∼70원 정도다. 대충 ‘때려잡아’ 판매대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런 관행은 도매상이 출판사에서, 또 서점이 도매상에서 책을 가져갈 때 책을 사가는 게 아니라 일단 가져갔다가 실제 책이 팔리면 대금을 지급하는 위탁판매 때문에 가능한데(팔리지 않으면 손쉽게 반품), 출판사들은 블록버스터 영화가 관객 늘리기 위해 상영관 많이 확보하는 식으로 일단 서점에 자기 책이 많이 진열되길 바란다고 한다. 그러자면 위탁판매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규모가 작은 영세 출판사들은 현금보다는 길게는 6개월까지 어음을 받는 경우가 많다. 내가 1인 출판사를 차려 아무리 의미 있고 잘 팔리는 책을 냈다 쳐도 서너 달 후에 그것도 찔끔찔끔 판매대금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출판인은 말했다. “IMF 직후에도 출판 유통구조 현대화 얘기가 나왔지만 20년 동안 바뀐 게 없다”고. 왜 우리는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나.



-중앙일보. 신준봉 기자. 201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