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1-23 09:43
박맹호 민음사 회장 별세…그는 책을 만들고 책은 그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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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박맹호 민음사 회장이 22일 새벽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1966년 청진동 옥탑방에서 민음사 창립해
이승만 풍자로 신춘문예 선정되고도 낙선
서적 7천여종 출간…고은 등 文人 후견인


자신의 생을 '책'이라는 단어와 동의어로 만들었던 '한국 출판의 산역사' 박맹호 민음사(民音社) 회장이 22일 0시 4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고인은 1933년 충북 보은 비룡소에서 태어났다. 1946년 청주사범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살았던 비룡소는 이후 민음사 아동·청소년 서적 브랜드의 이름이 됐다.

고인은 1966년 청진동 옥탑방 한 칸에서 민음사를 창립해 굴지의 출판그룹으로 키워냈다. 서울대 문리대 동기 이어령을 비롯해 신동욱 박재삼 신경림 등 문인들과 교류했던 '문학청년'을 출판의 길로 이끈 건 공교롭게도 신춘문예 탈락이었다.

자서전 '책'에 그는 "내 대학 시절은 모두 소설 습작에 바친 세월이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그가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투고한 '자유풍속'은 이승만의 자유당 정부를 신랄하게 풍자해 일석(一席)으로 선정되고도 낙선했다. 이에 실망한 박 회장은 출판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민음사는 연매출 400억원을 넘는 대형 출판사로 성장했다. 50년간 서적 7000여 종을 출간했으며 이문열 고은 등을 비롯한 수많은 문인의 후견인이 됐다.

민음사는 고비마다 한국 출판의 주춧돌을 놓았다. 전집물 출간과 방문판매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출판시장에 '세계 시인선' '오늘의 시인 총서' '오늘의 작가 총서' 등 획기적인 단행본 기획물을 통해 변혁을 일으켰다.

민음사는 1974년 9월 '오늘의 시인 총서' 다섯 권을 펴냈다. 김수영 '거대한 뿌리', 김춘수 '처용', 정현종 '고통의 축제', 이성부 '우리들의 양식', 강은교 '풀잎' 등 다섯 권은 500원의 가격으로 출간됐다. 초판 2000부는 나오자마자 매진됐다. 폭이 얇은 30절 판형도 당대의 혁명이었다. '시집의 시대'는 그렇게 열렸다.

많은 작가가 민음사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40년을 이어온 계간지 '세계의 문학'과 '오늘의 작가상' '김수영 문학상'을 통해 한수산 이문열 최승호 강석경 하일지 장정일 등의 작가를 조명했다.

1990년대 초에는 편집부 직원이었던 이영준을 주간으로 발탁해 문인 또는 교수가 아니라 편집자가 출판을 주도하는 '전문 편집자 시대'를 열기도 했다. 이후 비룡소, 황금가지, 사이언스북스 등 임프린트를 통해 각각 어린이 책, 대중문학, 과학 책 전문 출판에도 도전했다.

민음사의 가장 큰 대중적 성공은 1988년 이후 346권에 이른 '세계문학전집'이다. 전 시대와 작가를 아우르는 고전만으로 1300만부를 돌파했다.

2012년에 낸 박 회장의 자서전 '책'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완성된 인간'은 책 없이는 불가능하다. 출판 종사자들은 이러한 사명감을 갖고 꾸준히 책을 펴내서 독자들에게 접근해야 한다. 만날 하는 진부한 얘기 같지만, 이 점이야말로 변하지 않고, 앞으로도 쉽게 변하지 않을 사실이다."

고인은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한국단행본출판협의회 대표를 지냈고 대통령표창,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화관문화훈장, 서울시문화상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위은숙 씨와 상희(비룡소 대표이사), 근섭(민음사 대표이사), 상준(사이언스북스 대표이사)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 24일 오전 6시.



-매일경제. 김슬기 기자. 2017.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