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4-22 10:39
[박정호의 사람 풍경] 고서 수집은 블랙홀 … 젊어서 번 돈 수백억 몽땅 바쳤죠-여승구 화봉문고 대표
   http://news.joins.com/article/21502023 [232]
고서 10만 권 모은 여승구 화봉문고 대표
“귀중한 고서(古書)를 10만 권이나 모았다고 합니다.” 인터뷰 첫머리로 그의 공적을 꺼내 들자 여승구(82) 화봉문고 대표가 손사래를 쳤다. “10만 점? 별 의미 없어요. 1000원에 내놓아도 안 나가는 책도 있는데요, 뭐. 수량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합니다.” 초반부터 한 방을 맞은 셈이다.

“제 수집품 중 가장 많은 돈을 들인 게 고활자본입니다. 5000권은 넘을 거예요. 한국이 세계에 내놓을 최고의 문화는 금속활자입니다. 고려시대 『직지(直旨)』(1377)만 해도 서양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 초판본(1450~55)보다 훨씬 앞서잖아요. 1403년 조선 태종 때도 계미자로 책을 찍어 냈고요. 구텐베르크 이전에 나온 금속활자본이 한국에 수천 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가치를 몰라요. ‘코리안 브랜드’를 알릴 최고의 한류 상품인데 말이죠. 울화통이 터집니다.”

팔순의 노인은 거침없었다. 스스로 “불쌍한 인생”이라고 했다. 남들은 그를 인정하는데 갑자기 웬 신세타령? “젊어서 번 돈을 책에 다 꼬라박았어요. 1998년 외환위기 때 책을 지키려고 사옥을 처분한 것을 포함하면 아마 수백억원이 될 겁니다. 한국 문화 지킴이라는 오기로 버텨 왔는데 여든이 넘은 이제 기력이 달리네요. 그러니 불쌍하죠.”

고활자본도 5000권 넘게 수집
구텐베르크보다 앞선 금속활자본
최고 한류상품인데 가치 몰라 울화통

서지학자 안충근 따라다니며 배워
외환위기 때 고서 놔두고 건물 팔아
한국문화 지킴이란 오기로 버텨와


그럼에는 그는 꿋꿋했다. “좋은 고서가 나오면 빚을 내서라도, 다른 책을 팔아서라도 살 겁니다. 그것만이 제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했다. 고서 수집은 그토록 매혹적인 것일까. “블랙홀 같아요.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죠. 애첩을 팔아 귀중본을 구했다는 중국 고사가 있을 정도입니다. 저도 젊음을 몽땅 바쳤고요.”

서울 관훈동 백상빌딩 9층 화봉문고 서재. 여 대표 책상에 근현대 잡지가 수북하다. 그가 손끝에 풀을 묻혀 가며 낡은 책 표지를 손질했다. “그 나이에도 풀질을 하나요”라고 물었더니 “평생 책 먼지를 먹고 살았어요. 아직 건강하니 괜찮은 것 아닌가요”라며 웃었다.

질의 : 시작은 외국 신문·잡지 수입·판매였죠.
응답 :“63년입니다. 뉴욕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르몽드·슈피겔 등 내로라하는 매체의 판매 대행을 맡았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도 수입했고요. 그때 돈을 꽤 만졌습니다. 고서 수집의 발판이 됐지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환율이 뛰면서 23억원이란 빚을 떠안았지만 말이죠. 달러당 850원에 외상으로 사서 6개월 뒤 1950원에 갚았습니다. 할 수 없이 부동산을 넘겨야 했어요. 그때 책을 팔았다면 지금 여유가 있겠죠.”

질의 : 고서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라면요.
응답 :“55년 광주에서 상경해 1년 정도 헌책방에서 일한 적이 있어요. 중고생 때부터 시인을 꿈꾸기도 했죠. 82년 외국 서적을 할인 판매하는 서울 북페어를 처음 열었는데 당시 지인에게서 구입한 『진달래꽃』 『님의 침묵』 등 한국 문학 초판본 200여 권을 전시했습니다. 다시 다른 사람에게 팔려다 문학박물관을 세워 보자고 마음먹은 게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때는 고활자가 뭔지도 몰랐어요.”

질의 : 그러면 어떻게 알게 됐습니까.
응답 :“을유문화사 주간이었던 서지학자 안충근 선생의 권유가 컸습니다. 안 선생님을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녔어요. 그분이 사라는 책은 빠짐없이 구입했습니다. 한국 문화의 자존심을 알게 된 거죠. 인사동·청계천·장안평 서점가를 매일매일 순례했습니다. 단단히 홀린 셈이죠. 시간이 흐르면서 안목도 생겼고요.”

질의 : 고서 인생 3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응답 :“문학에서 시작해 고서·고지도·교과서·활자·인쇄도구 등 분야를 계속 넓혀 왔습니다. 물론 중심은 활자 인쇄본이고요. 87년 한국고서학회도 설립했죠. 지금까지 고서 경매도 총 41회 진행했습니다. 나름 고서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생각해요.”

여 대표는 이달 말까지 백상빌딩 지하 1층 전시장에서 제3회 인사고전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조선 문예 부흥을 이룬 정조(正祖) 즉위 240년을 기념하는 자리다. 정조 재위 당시 제작된 활자(임진자·정유자·정리자 등)로 찍은 책을 모았다. 『정유일기』(이순신), 독립신문(서재필) 등 역대 정유년에 간행된 책과 자료도 내놓았다. 번드르르한 전시는 아니지만 한국 문화의 큰 흐름을 짚어 볼 수 있다.

질의 : 왜 지금 정조입니까.
응답 :“저는 대왕이라고 부릅니다. 세종 대왕과 견줄 만합니다. 그가 추구했던 탕평정책, 인재 양성은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더 절실하다고 봐요. 정권 획득에 눈이 어두워 진영싸움에 빠져 있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만약 정조가 48세 젊은 나이에 죽지 않고 70세까지 살았다면 안동 김씨의 국정 농단도, 일제의 식민지 전락도 없었을지 몰라요.”

질의 : 한학을 공부한 적도 없지 않나요.
응답 :“외서 수입, 고서 수집을 오래하다 보니 영어·일본어·한자 단어는 많이 압니다. 물론 전문학자의 지식은 따라갈 수 없겠죠. 그래도 저만큼 실물을 많이 본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학계에서도 함부로 하지 못하죠. 사실 많이 보는 것만큼 좋은 공부가 있을까요. 전시도록 해제도 온갖 자료와 인터넷을 뒤지며 제가 직접 써왔습니다.”

질의 : 『춘향전』 판본만 해도 상당합니다.
응답 :“대략 600여 종이 됩니다. 남북한 및 외국에서 간행된 것을 보이는 대로 모았습니다. 영화 시나리오나 포스터, 각종 음반 등도 수집했어요. 『춘향전』은 고활자 다음으로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콘텐트입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 얘기잖아요. 한류 소재로 그만한 스토리가 또 어디 있을까요.”

87년 한국고서학회 설립해 대중화
국립책박물관 건립되면 기증 계획
고활자본 세계서 공인받도록 해야

정조 즉위 240년 기념 고전문화축제
탕평정책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
진영싸움 빠진 현재를 비추는 거울


질의 : 수집품 기증의사도 밝혔는데요.
응답 :“국립책박물관 건립이 확정돼야 합니다. 우리가 금속활자 종주국 아닙니까. 국립박물관·도서관·규장각 등 국가기관과 개인 소장 고서를 한데 모아 전시·연구하는 박물관이 생긴다면 제 고물(古物)도 내놓겠습니다. 그게 제 인생에는 승리하는 길, 가장 큰 보람이라고 봅니다. 오랫동안 외쳐 왔는데 아직 반향이 적어요. 자칫 고서적상으로 끝날까 걱정됩니다.”

질의 : 골동품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습니다.
응답 :“인사동 사람들의 원죄죠. 가짜를 진짜로, 진짜를 가짜로 만들어 해먹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셈이죠. 그래도 ‘인쇄된 고서’는 기술적으로 모작이 불가능합니다. 필사본은 간혹 있지만 말이죠. 미술품에 비해 값이 싼 것도 이유가 될까요.”

질의 : 상주본 『훈민정음 해례본』이 논란이죠.
응답 :“소장자도 문제이지만 문화재 당국도 책임이 큽니다. 국가기관의 이름으로 앗으려고 하면 곤란해요. 국보 중 국보인 문화재를 찾아낸 공을 인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 줘야 한다고 봅니다.”

질의 : 남은 인생의 바람이라면요.
응답 :“한문세대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2015년 말 『진달래꽃』 초간본이 1억3500만원에 팔린 것은 한글세대의 본격 부상을 알린 사건이죠. 그래도 고활자본은 변치 않는 유산입니다. 한국 문화의 진수가 세계의 공인을 받도록 후배들이 더욱 뛰어야 할 때입니다.”

[S BOX] 1980년대 중반 3000만원 주고 산 『삼국유사』 … “숨이 멎는 듯했다”

1980년대 중반께다. 여승구 대표는 숨이 멎는 듯했다. 꿈일까, 생시일까. 평소 알고 지낸 대구의 한 딜러가 책 보따리를 풀어놓았는데 그 안에 『삼국유사』 권3이 있었다. “고서 애호가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책 아닙니까. 눈이 확 돌아가는 줄 알았다”고 했다. 상대가 3000만원을 불렀다. “당시 시세로는 미친 값이었다. 그래도 한 푼도 깎지 않았다. 몇 권 남지 않은 국보가 눈앞에 있는데, 값을 흥정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여 대표는 『삼국유사』를 인생 최고의 책으로 꼽는다. 총 2책 5권으로 구성된 『삼국유사』 가운데 권2, 3을 소장하고 있다. 권2는 2010년 초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물론 망설임 없이 사들였다. 단 구입가는 밝힐 수 없다고 했다. “민족의 정통성이 깃든 책이다. 단군신화가 최초로 실렸다. 특히 권2를 좋아한다. 향가 14수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전질을 갖고 싶어한다면 탐욕스럽다고 할 건가요. 여든 넘은 노인이 그 정도 욕심은 부려도 되지 않습니까.”

여 대표가 아끼는 또 다른 책은 『삼국사기』다. 10여 년 전 대구의 업자로부터 사들였다. 그는 “사대주의 사관에 입각한 정사(正史)인 『삼국사기』보다 승려 일연의 개인 저술인 『삼국유사』에 개인적으로 더 정이 간다”고 했다. 그 다음은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다. ‘나의 책 베스트 3’ 모두 고려시대 역사서라는 점이 흥미롭다. 아쉽게도 『제왕운기』는 고려가 아닌 조선 초기본이라고 밝혔다.

- 중앙일보 2017.04.22 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jhlogo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