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5-22 13:10
[동서남북] 전자책시장은 디지털 시대 공공도서관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21/2017052101957.htm… [213]

지난주 출퇴근 길에 칼 세이건의 명저 '코스모스'를 읽었다. 엄밀히 말하면 전자책의 오디오 기능을 이용해 스마트폰으로 들었다. 이처럼 출퇴근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읽고 싶은 책을 오디오로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코스모스는 손으로 잡았다 놓기를 반복하면서 읽기를 미뤘던 책이다. 첨단 스마트폰과 전자책 덕분에 독서 버킷리스트(Bucket list) 하나를 지웠다.

지난해 초 리디북스라는 한국어 전자책 앱을 스마트폰에 깔고 나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읽고 싶은 책을 만나고 있다. 신문이나 대화를 통해 책 정보를 접하면 스마트폰에서 바로 구매하고, 자투리 시간에 오디오로 듣기 시작한다. 인공지능과 같이 첨단 분야 신간도 전자책으로 쉽게 소화한다. 가끔 유명 소설가의 신간 작품을 들으며 머리를 식히곤 한다. 새로운 독서 루틴 덕분에 독서량이 크게 늘었다. 또 독서 중 지적 자극을 받으면, 그 책을 바로 구매해서 연결 독서를 할 수 있는 점을 활용해 지식을 넓혀간다. 마치 유능한 사서가 운영하는 대형 도서관을 손안에 늘 들고 다니는 듯하여 마음이 뿌듯하다.

하지만 전자책 사랑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주말 신문에 소개된 새 책을 구하기 쉽지 않다. 또 전자책에 인용된 고전 반열의 책을 구할 확률도 낮다. 출판사들이 신간을 전자책과 동시에 내기를 꺼리고, 또 기존 종이책의 전자책 전환율이 낮기 때문이다. 영어권 전자책 시장은 출간 속도와 포괄 범위에서 한국어 시장을 압도한다. 가령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새 책 기사를 보고 아마존에 접속하면 실패 없이 구할 수 있다. 그 책에 소개된 다른 책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아마존은 500만 권 이상 전자책을 보유해 세계 최고의 도서관 역할을 하고 있다.

전자책 시장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공공도서관이다. 무엇보다 종이책과 비교하면 접근성이 좋다. 책과 책을 이어주는 연결성은 디지털의 고유한 매력이다. 또 종이책에 비해 싸기도 하다. 이런 전자책 시장은 국민의 지력을 크게 높인다. 첨단 지식의 대중 유통 속도도 획기적으로 높인다. 나아가 거짓과 선동의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이성적 균형자 역할을 한다. 사실성과 과학적 근거를 스마트폰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도서관이 도시 문명을 이끌었던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이상을 디지털 시대에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다.

한국어 전자책 시장이 열악한 것은 국내 출판 시장의 복잡한 상황 때문이다. 아직도 출판사가 종이책과 전자책을 동시에 출간하는 것을 꺼린다. 종이책이 덜 팔릴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도서 정가제와 같은 규제도 시장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한국어 전자책 시장은 시장 기능이 실패한 영역이다. 새 정부가 전자책 시장을 한국어 지식 문명 위기를 타개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하기 바란다. 중국 정부는 영미권 지식 패권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어 전자책 시장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는 천재 몇 명이 끌어가는 시대가 아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부단히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 연결하면서 사회 전체 지력을 높일 때 경쟁력을 갖는 시대다. 세이건의 책을 읽고 자란 영미권 인재들이 오늘날 인공지능 시대, 우주개발 시대를 이끌고 있다.



-조선일보. 우병현 디지털전략실장. 2017.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