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6-19 15:44
인쇄가 예술로 진화한 곳, 야창예술센터는 ‘책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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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도시, 深圳


중국 선전(深圳)은 청춘의 도시다. 시민들의 평균 연령이 27세다. 상주인구 900만, 유동인구 2000만인 선전의 거리거리에는 청년들의 젊은 기운이 넘쳐 난다. 1979년에 경제특구로 지정되면서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경제도시 선전의 에너지는 젊음이다.


세계 최대 서점 ‘선전서성’ 북바
불 꺼지지 않는 젊은이의 아지트

예술서적 12만 권 수장 야창센터서
책 향기에 취해 자신을 잃을 지경


선전은 또한 ‘책 읽는 도시’다. 열독률이 중국에서 가장 높다. 선전시립도서관은 장서 450만 권을 자랑한다. 24시간 책을 빌릴 수 있는 240개의 무인도서관이 시내 곳곳에 놓여 있다.

선전시립도서관의 5층 강당에서는 1년에 1400개의 크고 작은 프로그램들이 진행된다. 공공도서관은 680개나 된다. 기업이 열고 있는 도서관과 아파트에 개설된 도서관까지 합치면 2000개가 넘는다.

‘도시가 독서를 사랑함으로써 사람들의 존중을 받는다.’ 선전서성(深圳書城)에 걸려 있는 현수막이다. 세계에서 제일 큰 서점으로 연면적이 8만2000㎡나 된다. 중국에서 책을 가장 많이 판매하는 서점 15개 가운데 3개가 선전에 있다. 2000년에는 매년 11월을 ‘시민 열독의 달’로 정했다.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책 읽는 도시가 됐다. 선전서성의 북바(Book Bar)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책 읽는 선전 젊은이들의 아지트가 되고 있다.

선전은 디자인의 도시이기도 하다. 유네스코는 2008년 12월 선전을 ‘유네스코 디자인 도시’로 지정했다. 연 개인소득이 3만 위안(약 4400달러)을 넘어선 선전은 소득 수준에서 중국 제1의 도시가 됐다. ‘청춘의 경제도시’ 선전을 키워내는 디자인을 시정의 지향으로 삼고 있다. 정치의 도시 베이징이 관료적이라면 선전은 문화와 디자인으로 열려 있는 도시다.

선전에선 야창(雅昌)예술집단이 예술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다. 1993년에 야창컬러인쇄를 창립해 지금 세계의 인쇄계를 선도하는 예술도서를 제작하고 있다. 야창예술집단을 이끌고 있는 인쇄예술인 완제(万捷·55) 회장의 탁월한 안목과 예술기업정신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2015년 새로 개관한 선전의 야창예술센터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경악한다. 세계의 아름다운 예술서적 5만 종, 12만 권을 수장하고 있는 ‘도서관+서점’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책의 예술관, 책의 유토피아다. 폭 50m, 높이 30m의 서가는 지상의 아름다운 예술도서들이 자태를 뽐내는 극상의 책의 숲이다. 야창의 예술인쇄인들은 예술책의 기획과 출간을 선도하는 출판사들과 손잡고, 예술책의 경이로운 차원을 열고 있다.

로마의 철인 키케로는 정원과 서재를 갖는 자의 행복을 말한 바 있다. 아름다운 예술책들이 자욱하게 꽂혀 있는 야창예술센터에 들어서면 현세의 모든 고뇌를 잊게 된다. 신비한 색감으로 물든 책들을 만나면서, 그 내면을 펼치면서, 그 책의 향을 맡으면서 순간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아름다운 책들이 입립한 책들의 숲이었다. 책들의 음향이었다. 야창예술센터에 들어서는 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만족을 표한다.

선전시 정부와 미국의 과학기술기관의 비즈니스 투자 회의가 이곳에서 열렸다. 적어도 하루는 꼬박 소요될 거라고 예측했다. 그런데 한 시간 만에 끝났다. 이 아름다운 공간에서, 장사꾼들처럼 협상 같은 것이나 할 거냐는 것이었다. 파트너들은 한 시간 만에 사인했다. 그러곤 아름다운 책의 세계에서 뛰고 놀았다.


연회비 200만원 내는 회원 300명


야창예술센터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200위안(약 3만3000원)을 내야 한다. 입장객들은 책을 보면서 휴식할 수 있다. 차가 서비스된다. 12만 위안(약 200만원)의 회원제도가 있다. 회원 수는 1000명이다. 현재 300명이 가입했다. 홍콩과 대만에서도 가입하고 있다. 기업인·영화인·연예인·예술가·장서가들이다.

야창예술관에는 진품을 방불케 하는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고흐의 ‘해바라기’ 그리고 치바이스(齊白石)와 황빈훙(黄宾虹), 우창숴(吳昌碩)의 복제화를 볼 수 있다. 야창의 뛰어난 복제기술은 “진짜보다 더 고품질이네” 하는 관객들의 반응을 이끌어 낸다.

완 회장은 야창을 세계 최고의 예술인쇄회사로 우뚝 세웠다. 책에 대한 사랑과 신뢰, 아름다운 책을 창출해 내는 그의 신념과 열정이 세계의 인쇄장인들과 당대의 예술세계를 이끄는 아티스트들을 경탄하게 하고 있다. 인쇄예술을 끊임없이 진화시키는 인쇄예술가로서의 그의 성취에 경탄하고 있다. 타센, 애술린과 펴내는 ‘큰 예술책’은 예술도서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 주고 있다. 수많은 예술전집과 중국의 대표적인 예술가들의 도록도 만들고 있다.


세계의 인쇄상 휩쓰는 야창


야창은 인쇄업계의 오스카상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베니상(Benny Award)을 비롯해 세계의 인쇄상을 휩쓸고 있다. 라이프치히에서 시행되는 ‘세계의 아름다운 책’ 상과 ‘중국의 아름다운 책’ 상도 잇따라 수상했다.

완 회장은 “잉크 냄새를 맡지 않으면 잠을 못 자는 버릇이 나에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기업의 생명은 품질이다”고 했다. “고객이 합격점을 주어도 내가 만족하지 못하면 인쇄를 걸지 않는다”고 했다. 중국미술관 판디안(范迪安) 관장은 “야창은 세계로 향하는 중국의 예술브랜드”라고 했다. 저명 수장가 마웨이두(馬未都)는 “야창은 인쇄를 예술로 끌어올렸다. 야창은 인쇄를 뛰어넘어 문화와 진실을 추구한다”고 했다.

디지털문명 예찬론자들은 종이책의 종말적 운명을 예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완 회장은 동의하지 않는다. 종이책은 ‘본질적인 아름다움’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새롭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책은 예술품이다. 종이책은 더 호화로워질 것이다. 책은 더 커지고, 장정은 더 고급화될 것이다. 종이책은 수장품으로서의 가치를 더 높일 것이다. 책은 예로부터 귀중품이었다. 1993년 창업 때부터 내가 가진 생각이었다. 책은 예술가와 책 제작자가 협업하는 예술품이다. 예술책은 출판의 미래방향이다. 과학기술이 어떻게 발전하든, 생활이 얼마나 부유해지든 집 안에 책 한 권 없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

완 회장은 베이징인쇄학원 출신이다. 베이징인쇄학원 출신 100여 명이 야창의 핵심 일꾼들이다. 이른바 ‘학원파’가 오늘의 야창을 이끌고 있다. 학생 수가 2만이나 되는 베이징인쇄학원은 인쇄기술뿐 아니라 디자인·미술·경영을 함께 가르치는 종합대학이다. 미술과 과학이 함께하는 야창이다.


북디자이너 뤼징런과의 협업


야창의 예술책 작업이 끊임없이 진화하는 데는 인쇄예술인 완 회장과 북디자이너 뤼징런(呂敬人)의 협업이 있다. 완 회장은 칭화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퇴임한 뤼징런과 협업함으로써 야창은 아름다운 책의 세계를 구현해 내는 예술집단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뤼징런은 한 해 두 차례씩 중국의 젊은 북디자이너들과 함께 한국 파주출판도시를 방문해 동아시아적인 책의 세계, 동아시아적인 책의 미학을 탐구하고 있다. 그는 사라져 가는 중국적인 책의 전통, 책의 미학을 재현·재생하는 작업을 해내고 있다. 완 회장과 뤼징런의 아름다운 협업으로 야창의 예술도서 작업은 계속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인쇄로 시작한 야창은 다시 그 영역을 예술 전방위로 확장하고 있다. 중국의 장대한 예술유산을 데이터베이스화하면서 이 콘텐츠를 글로벌 비즈니스로 키워 내고 있다. 중국예술유산의 ‘사고전서(四庫全書)’라고 별칭되는 야창의 데이터베이스는 제2·제3의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으로 확장된다. 온라인·오프라인으로 전시된다. 예술품의 감정·관리도 또 다른 비즈니스다. 야창은 현재 4000여만 건의 도판자료를 확보하고 있다. 4000여 문화예술기관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야창은 2006년 ‘중국예술상’을 제정했다. ‘올해의 예술가’ ‘올해의 청년예술가’ ‘올해의 예술도서’를 선정하고 성원하는 일이다. 선전·베이징·상하이에 운영기지를 둔 야창은 항저우·광저우·난징·청두·시안·우한에 예술서비스센터를 두고 있다. 베이징 공항 근처에 또 하나의 ‘야창예술도서센터’를 내년에 개관한다.

3400명이 일하는 야창은 지난해 15억 위안의 매출을 기록했다. 내수가 80%이고 20%가 수출이다. 규모로는 그리 큰 회사가 아니다. 그러나 야창은 청춘의 도시 선전의 문화예술적 랜드마크가 됐다.

야창엔 미술전공자들이 몰려든다. 인쇄를 뛰어넘어 예술작업이 진전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더 높은 예술의 경지를 구현하기 위해 직원들의 마인드가 예술적이어야 한다. 위탁받은 인쇄물을 찍어주는 단계에서 콘텐트를 기획하고 생산하는 단계로 진입했다.

“야창에 입사하는 직원은 나의 동업자다. 공동창업정신을 발휘해야 발전할 수 있다. 나는 독립하는 직원들에게 가능한 한 도움을 주려 한다. 독립하는 직원들과 협업관계를 만들어가려 한다. 나는 사장이란 호칭이 제일 싫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수많은 부의 신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메이드 인 인디아’ ‘메이드 인 베트남’이 중국 시장에 진입하면서 저가의 노동력에 기반하는 중국식 제조산업은 새로운 실험기·시련기를 맞고 있다.

야창은 전통적인 제조업으로부터 성공적으로 변신해 문화예술 창조산업에 진입했다. 중국 민영기업의 발전과 진화의 한 모델이다. 높은 수익이 가능한 문화예술품 인쇄에서 독보적 존재가 됐다.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네트워크를 만들었다. 1만 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야창의 사이트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누리고 100만 명이 넘는 예술애호가들이 이 사이트를 출입하고 있다.

“예술의 아름다움을 전달한다.”

야창이 내걸고 있는 기업이념과 그 실현방법이 중국을 넘어 세계인들에게 울림이 되고 있다.



-중앙선데이. 김언호 한길사 대표. 2017.6.18-19

김언호 한길사 대표: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1976년 한길사 창립. 한국출판인회의·동아시아출판인회의 회장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역임. 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과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책의 탄생』 『책의 공화국에서』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