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6-23 11:51
‘서울미래유산’ 지정됐지만 ‘신촌 헌책방’ 또 쫓겨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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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2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의 공씨책방 모습. / 최미랑 기자
(사진2) 21일 공씨책방에서 고 공진석씨 처제 최성장씨가 공씨 생전 펴내던 계간지 ‘옛책사랑’을 펼쳐보이고 있다. 작가 정현석씨 등은 지난 4월 옛책사랑 복간호를 펴내기도 했다. / 최미랑 기자



23년째 한자리를 지켜온 서울 신촌의 헌책방은 결국 쫓겨나게 될까. 빚을 내 건물을 샀으니 ‘월세를 두 배 이상 올려줄 수 없다면 나가달라’는 건물주와 수천권의 책과 함께해온 터전을 하루아침에 포기할 수 없다는 책방 주인은 결국 법정에서 맞섰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인근에 위치한 ‘공씨책방’은 1995년부터 지금의 자리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고 공진석씨가 1972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에 처음 헌책방을 연 이래 여러 차례 자리를 옮겨 안착한 곳이다. 1985년 서울 광화문 새문안교회 건너편에 문을 열었을 때 공씨의 헌책방은 전국 최대 규모였다. 시인 이문재씨와 정호승씨를 비롯한 문인들이 단골손님이었다.

1990년대 초 광화문 재개발로 서점이 위기에 처한 무렵 공씨는 헌책을 사들고 오다 시내버스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숨졌다. 조카 장화민씨(60)와 처제 최성장씨(71)가 고인의 뜻을 이어받았다. 1990년 가게를 어디로 옮길지 막막하던 때 ‘대학이 많은 신촌으로 가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사람은 단골손님이던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였다.

1991년 신촌으로 옮긴 뒤에도 한 차례 건물주와의 명도소송에서 패소해 쫓겨났다. 1995년 가을 현재 위치로 옮긴 이래 공씨책방이 다시 위기에 처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임대차 계약만료 1개월을 앞둔 지난해 8월 말 당시 건물주는 장씨에게 ‘계약을 지속하지 않겠으니 나가달라’고 통보했다. 이어 지난해 10월 초 이 건물을 매입한 새 건물주는 장씨에게 ‘재산 증식을 목적으로 건물을 샀으니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300만원을 줄 수 없다면 나가달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원래 내던 금액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액수다. 새 건물주는 ‘2주를 더 줄 테니 책방을 비우라’고 했지만 장씨는 수천권의 책과 함께 당장 옮길 곳을 찾지 못했다. 그는 가게를 비우기를 거부했다.

새 건물주는 결국 법원에 ‘계약이 끝났으니 공씨책방이 건물을 비우도록 해달라’는 명도소송을 냈다. 22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첫 변론기일에서 건물주 측 대리인은 “(건물주가) 대출을 통해 건물을 매입했는데, 세는 하나도 못 받고 대출 이자가 너무 많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책방 측 대리인은 “공씨책방이 가진 무형의 가치는 서울시도 인정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명도소송에서 이런 부분이 얼마나 감안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책방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젊은 예술가들이 책방을 보존하는 데 힘을 보태자고 나섰다. 작가 정현석씨(22) 등은 지난 4월, 공진석씨가 생전에 내던 계간지 ‘옛책사랑’을 27년 만에 다시 펴냈다. 공씨책방 보존 문제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예술가들의 글이 실렸다. 지역주민과 지역 활동가, 예술가들은 공씨책방에서 시 낭송회, 인문학 강의를 지속적으로 열고 있다.

서울시는 2014년 공씨책방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가운데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유산을 보존하자는 취지다.



-경향신문. 최미랑 기자. 2017.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