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7-20 12:00
나뒹굴던 쓰레기가 보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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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20세기 후반만 해도 나뒹굴던 탄피를 자르고, 다 쓴 유리병 뚜껑을 뚫어 만든 재활용 등(燈)기구가 사용됐다. /사진제공=국립민속박물관
(사진2) 1950년대 쓰레기를 모으는 데 사용된 넝마바구니와 집게 /사진제공=국립민속박물관
(사진3) 특별전 ‘쓰레기X사용설명서’ 전시 전경. 근현대 재활용의 사례와 오늘날의 재활용을 나란히 보여준다. /사진제공=국립민속박물관
(사진4)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재활용 해 장신구로 만든 ‘재주도 좋아’의 기획 작품. /사진제공=국립민속박물관
(사진5) 집안에서 못 쓰는 물건을 정리하던 중 책장 밑바닥에 깔린 종이 쓰레기 뭉치에서 발견된 공재 윤두서의 손자 윤용의 작품 ‘미인도’, 고산 윤선도유물전시관 소장. /사진제공=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쓰레기...'展
넝마바구니·철모 똥바가지 등
시대상 반영한 물품 전시서
폐지될뻔 했던 '정약용 하피첩'
종이 뭉치서 찾은 '미인도'도 선봬



고고학 중에는 ‘쓰레기 고고학(Garbage Archaeology)’이라는 분야가 있다. 말 그대로 쓰레기를 대상으로 고고학적 연구를 진행해 생활사를 복원하는 학문이다. 당장 쓰레기통을 뒤져보더라도 어떤 음식을 많이 먹고 어떤 신문을 읽으며 기저귀·의류 등을 통해 가족구성도 파악할 수 있다. 패총(조개무지) 유적이 선사시대의 쓰레기더미이듯 쓰레기장 발굴을 통해 거주인의 규모와 생활양식, 식습관은 물론 건강상태까지 복원할 수 있다. 1971년 미국의 고고학자 윌리엄 랏제가 애리조나주 투손 쓰레기 매립지를 발굴한 것을 계기로 쓰레기 고고학은 중요한 학문분야로 자리 잡았다.

종로구 삼청로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이 19일 개막한 특별전 ‘쓰레기×사용설명서’는 이 같은 쓰레기에 대한 의미있는 탐구 결과를 펼쳐 보인 자리다. 쓰레기 고고학에 민속학·사회학적 분석까지 더한 이 같은 대규모 전시는 국내 최초다.

전시는 우리가 ‘얼마나 버리는지’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4인 가구가 1주일 동안 배출한 쓰레기의 양은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꽉 채우고도 넘칠 만큼이다. 문명의 이기인 전자제품이 양산되면서 쓰레기가 폭증했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지금은 ‘폐지 줍는 노인’이 복지 부족의 사례로 거론되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고물장수가 쓰레기를 수집해 자원으로 재활용하는 것은 일상 풍경이었다. 넝마 바구니와 집게, 폐지 손수레를 비롯해 군용 철모를 나무 끝에 매달아 분뇨처리에 이용한 ‘철모 똥바가지’등 관련 유물이 전시장에 나왔다. 한국 전쟁 후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 나뒹굴던 포탄 탄피와 다 쓴 유리병에 심지를 꽂아 만든 ‘재활용 등(燈)기구’와 기존 물품을 세련된 디자인으로 다시 활용한 ‘업사이클 조명’이 시대적 대조를 이룬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전하고픈 당부의 말을 적은 서첩 ‘하피첩’은 2004년 경기도 수원에서 폐지 줍는 할머니의 수레에 실려 버려질 뻔했다. 정약용의 부인 홍씨가 남편에게 보낸 빛바랜 혼례복 치마를 활용한 이 유물은 발견자가 고미술품을 감정하는 TV프로그램에 의뢰하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2010년 보물 제1683-2호로 지정됐다. 쓰레기로 오인돼 영영 사라질 뻔했던 보물은 이뿐 아니다. 조선 영조 때 태실(胎室) 돌난간 조성 과정과 의식을 적은 ‘영조대왕 태실 석난간 조배의궤’는 영조의 태실 봉지기로 일했던 사람의 자손 살림집 다락에서 발견됐다. 먼지 뒤집어쓴 유물은 청원군청에 기증됐고, 이것이 의궤임을 알아본 군청 직원의 노력으로 지난해 보물 제1901-11호로 지정됐다. 공재 윤두서의 손자 윤용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미인도’는 책장 밑바닥에 깔린 검은 종이 뭉치 안에서 발견됐다.

플라스틱 바구니를 화려한 작품으로 부활시킨 설치미술가 최정화의 작품 ‘만인보’ 등 정크아트(Junk Art)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가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쉽게 얻고 버리는 현대 소비 풍조에 대한 반성이다. 장난감 재활용 사회적 기업 ‘금자동이’, 버려지는 청바지로 가방을 만드는 마을기업 ‘리폼맘스’, 양복을 기증받아 면접을 준비하는 구직 청년 등에게 값싸게 대여하는 ‘열린옷장’, 제주 바다의 쓰레기를 수집하여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재주도좋아’ 등은 그 해법에 다가서게 한다. 10월 31일까지인 전시 기간 중 박물관에서 에코백·장난감을 무료로 교환하는 코너가 운영되고, 다음달 12일까지는 매주 토요일마다 우산을 무료로 수리해준다.



- 서울경제. 조상인 기자. 2017.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