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10-13 09:36
[매경춘추] 종이잡지를 마감하며 - 세종문화회관 『문화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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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간 이어온 월간 잡지를 그만 내기로 했다. 세종문화회관이 1983년부터 지금까지 발행해온 `문화공간` 얘기다.

규모가 큰 공공 예술기관 중에 정보지를 발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매달 발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자기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이벤트를 중심으로 다양한 읽을거리를 싣는다. 정보와 교양을 겸한 예술잡지인 셈이다. 대부분 무가지로 유료 회원을 중심으로 관련 인사, 예술기관 등에 배포한다. 2000년대 들어서는 e북으로도 유통되었다. 종이 잡지보다 e북을 통한 소비가 더 많아졌다.

세종문화회관은 우리나라에서 예술정보지를 처음 시작한 기록을 갖고 있다. 1983년 3월이다. 세종문화회관이 개관한 지 5년쯤 된 때였다. `세종문화가이드`라는 제호로 시작해 1991년 2월 `문화공간`으로 이름을 바꿔 현재에 이르렀다. 한때는 매달 1만부를 발행했다. 올해 1월 발행 주기를 연 4회로 바꾸기 전까지 매달 빠지지 않고 독자를 찾았다. 그렇게 세상에 선보인 잡지가 396권이다. 10월에 발행한 396호를 끝으로 내년부터는 더 이상 발행하지 않는다. 대신 2년 전부터 발행해온 웹진 `스토리175`와 합쳐 `문화공간175`라는 웹진으로 새 출발한다. 종이 잡지로서의 역할은 영영 끝나는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입장에서는 망설이다 내린 결론이다. 냉정하게 보면 때늦은 결정이다. 독자의 소비 형태와 우리 사회의 미디어 환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언론과 방송도 고민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공연 쪽으로 돌아와 봐도 그렇다. 전단과 포스터 등 인쇄 매체에 의존하던 시대가 아니다. 포털을 비롯한 온라인 미디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세종문화회관도 대부분 정보를 모바일이나 웹을 통해 유통시킨다. 정보 검색뿐만 아니라 구매와 결제까지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아날로그 속성이 강한 예술 부문도 시대의 변화를 비켜갈 수 없다.

34년 전 잡지 창간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제 우리는 급격한 문화의 변동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항상 격동의 시대를 살아왔다. 압축 변화는 우리 현대사의 일관된 속성이다.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이나 사회 차원에서도 영원한 숙제다.

- 매일경제 2017.10.13 이승엽 세종문화회관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