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12-26 10:19
결국 짐싸는 공씨책방 “시민과의 기억 두고 떠나려니 착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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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공씨책방 (서울신문 DB)



임대차 소송 패소한 ‘미래유산’… 내년 인근 건물 지하로 이전
2013년 서울시가 지정한 미래유산이자 45년 된 서울의 대표적 헌책방인 ‘공씨책방’이 가게를 비워 달라는 건물주의 요구에 따라 가게를 이전한다.

서울 신촌에 있는 공씨책방 대표 최성장(71·여)씨는 24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건물주와 내년 초까지 가게를 비워 주기로 약속해 조만간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 한다”면서 “아직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는데 일단은 다음달 말쯤 인근 건물 지하에 있는 창고로 이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972년 동대문구 회기동에서 시작한 공씨책방은 1980년대 광화문 근처에 자리잡으며 한때 전국 최대 규모 헌책방으로 명성을 날렸다. 1995년 서울 서대문구 신촌 현대백화점 근처의 지금 자리로 와서 22년째 명맥을 이어 왔다. 최씨는 공씨책방 설립자 고 공진석씨의 처제다. 현재는 공씨의 조카 장화민씨와 함께 책방을 꾸려 나가고 있다.

공씨책방이 이삿짐을 싸게 된 것은 지난해 건물주가 임대차 계약 갱신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소송까지 이어졌지만 1심 재판은 올해 9월 건물주 승소로 결론이 났다. 공씨책방 측은 항소했으나 법적 다툼을 접고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최씨는 “갈 곳이 마땅치 않다”면서 “여기서 20년 넘게 있었는데 옮기려니 착잡하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버려야 할 게 너무 많다”면서도 “요즘 사람들이 종이 책을 많이 안 보니 (헌 책이) 쌓이기만 하는데 우리도 막상 버리지 못하는 악순환”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점점 짐이 늘어나는 데다가 (책을 쌓아두는) 장소가 다 돈으로 연결되니까 헌책방들이 어렵다”며 “가정집도 이사할 때 책이 많으면 짐 챙기기가 어렵지 않으냐.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고 착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공씨책방은 여러 시민이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기억과 감성을 지녔다는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최씨는 법률상 권리를 행사하려는 건물주에 맞서 법정 다툼을 벌일 때 이런 점이 고려되지 않을까 기대도 걸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판사는 “사회 이목이 쏠린 사건이었는데 현행법에서는 이런 결론밖에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최씨는 “서울시에서도 (새로운 장소로) 여러 곳을 권했는데 헌책방인 우리가 쓰기에 적절한 곳을 찾지는 못했다”며 아쉬움과 함께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이제 우리 같은 책방은 건물주들이 그리 반기는 손님이 아닌 것 같다”며 “지하는 몰라도 1, 2층은 건물 임대에 영향을 준다고 꺼린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서울신문. 문경근 기자. 2017.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