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4-02 10:38
[안준석의 좋은 건축 나쁜 건축 이상한 건축] 유리지붕 타고 쏟아진 봄 햇살이 지하 1층 가득
   http://www.seouland.com/arti/culture/culture_general/3225.html [35]

(사진1) 별마당 도서관 내부
(사진2) 별마당 도서관 유리 지붕
(사진3) 별마당 도서관 외관


삼성동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


고독하고 외로운 느낌 주는
기존 도서관과 달리
도심 한가운데 상업몰 지하에
봄바람처럼 가벼운 도서관


평생을 도서관에서 살다 간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항상 천국을 도서관과 같은 곳이라고 상상했다’고 했다. 도서관 없는 그의 일생을 말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그는 웬만한 도서관에 얽힌 이야기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단골 등장인물이기도 했다. 지나친 독서로 시력을 잃었다 알려진 그에게 도서관은 우주였고, 어둠 속에서도 자신을 세우는 외로운 신전이었다.

보르헤스의 도서관이 그랬듯, 흔히 도서관은 외롭고 고독하다. 조용하고 숭고하다. 많은 이의 지적 노력이 성취되는 엄숙한 장이다. 그런데, 고층 빌딩이 가득한 서울의 가장 발달한 업무지구이자 온갖 매장이 모인 화려한 상업지역이고, 복잡한 교통 환승이 이루어지는 북새통 한가운데, 외롭지도 엄숙하지도 않은, 심지어 조용하지도 무겁지도 않은, 봄바람처럼 가벼운 도서관이 생겼으니,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이다.

인류가 발명한 것 중 가장 멋진 물건이라는 도서관은 기록을 보관하는 창고로 시작되었다. 물론 초기에는 파피루스나 점토판으로 된 기록물들을 다루었으니 지금의 책이나 도서관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이후 양피지를 사용한 예술품 수준의 도서들은 종이의 발명 이전까지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보물로 다루어졌고 도서관에서는 책에다 쇠사슬까지 채워 보관하며 아무나 함부로 열람도 못 했다. 그러던 것이 종이와 금속활자의 보급으로 비로소 대중의 손에까지 책이 들어오게 되었고, 시민사회 이후 보편적 지식의 전파에 공공 도서관의 몫이 지대했다.


도서관이 숨 막힌다면 코엑스로 가보자

그러나 도서관에 정붙일 기회를 찾지 못한 이들에게는 여전히 도서관이라 하면 꼼짝없이 붙들려 앉아 입도 못 떼고 졸린 책을 들여다봐야 하는 숨 막히는 공간일 수도 있다. 만약 이것이 내 얘기인가 싶다면 이곳,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을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삼성동 무역센터 부근 지하에 그물망처럼 연결된 지하 상업공간 일부를 움푹 떠내서 밖으로 덜어내고 유리로 지붕을 덮었다. 2800㎡(약 850평)나 되는 면적이 기둥도 없이, 십수 미터나 되는 높이에 만들어진 너울거리는 유리지붕으로 덮여 실내로 햇빛을 쏟아내는 광경은 장관이다. 그 유리지붕은 빛을 단순히 통과시키지만 않고 사방으로 산란하는 기능을 담당해주어서, 눈부시지 않은 부드러운 자연광을 지하 1층의 도서관 구석구석까지 곱게, 고르게 뿌려준다.


사회적 기능 갖춘 커뮤니티 시설

도서관은 지식의 전달이나 자료의 보관 기능이 중심을 이루지만, 일반인이 도서관을 통하지 않고도 수월하게 책을 구하고 정보를 얻게 되면서 도서관이 지니는 성격 중 공공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요즘은 커뮤니티 시설로서 사회적인 기능을 가장 높은 가치로 놓고 디자인한 공공 도서관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상 1층의 외부에서도 별마당 도서관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대부분의 방문자는 지하 상업 몰을 지나 도서관으로 들어온다. 지하 몰의 천장은 결코 낮지 않다. 하지만 공간의 형상 자체가 한정된 높이에 수평으로만 확장된 납작하게 생긴 모양이라 답답함은 어쩔 수 없다. 거기다 중간중간에 끼어드는 안내판과 키오스크(무인 정보 안내 시스템)들도 시야를 가리고, 어디로 가는지 방향 잃기 딱 좋은 골목골목 이어지는 길들도 어지럽다. 그런 납작한 상가를 걷다가, 햇빛이 퍼지는 넓은 공간이 저 앞에 등대처럼 보이고, 빨려들듯 들어선 자리에서 갑자기 맞는 확 터진 공간에, 천장 없이 파랗게 열린 하늘이라니! 낮고 답답하며 어둡게 느껴지던 (조명이 어둡다는 얘기는 아니다) 압축된 공간으로부터, 높고 시원하게 발산해 오르는 공간으로의 극적인 전환에 속이 다 뻥 뚫린다.


시장같이 사람 냄새 나는 도서관

신전 같은 거룩한 도서관이 아닌 사람 냄새 나는 시장 같은 도서관이니 소음은 당연하고 옆 사람 먹는 음식 냄새까지 전해져온다. 렘 콜하스의 시애틀 공공 도서관에서도 유리로 만든 높은 지붕까지 훤히 트인 1층에서는 커피 내리는 향과 토스트 냄새가 방문자를 맞는다. 각종 잡지와 정기간행물들을 읽을 수 있는 편안한 자리에 자기 집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는 자세로 여기저기 널브러지듯 앉아 있는 시애틀 시민들은 즐거웠다. 비슷한 그림이 별마당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고운 망사 같은 가벼운 유리 지붕을 이불 홑청처럼 서로 당기며 지탱해주는 세 개의 높은 목재 서가는 6만여 권의 책을 꼭 안고 있다. 이 거대한 서가는 상상을 넘는 형태와 높이만으로도 흥미롭다. 그런데 그 속에 커피점, 편의점 등의 콩을 품고 있는 콩깍지 같은 쓸모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 더욱 재미나다. 윌리엄 알솝이 설계한 런던의 페컴 도서관 안에도 어린이 놀이방과 연구실, 회의실 등의 공간을 품고 있는 재미있는 콩깍지가 세 개 있다. 페컴 도서관이 경제와 사회 문제로 우울하던 페컴 지역에 활기찬 기운을 불어넣는 공을 세웠듯이, 별마당 도서관도 이 지역의 경제적, 문화적 상황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오고 있다. 쉴 곳도, 문화적 내용도 빈약하던 지하 상업지역에 만만한 도서관이 생겼으니, 업무 외에 짬을 내 들리거나, 오가다 지친 시민들에게는 더 없는 선물이다.


상업적 위선…이 정도면 도시의 오아시스

책을 대하기엔 시끄럽고 음식 냄새마저 독서를 방해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이 도서관을 대하는 사람들의 느낌은, 어쩌면 한결같지는 않을 것이다. 까마득한 책장을 가득 채운 위층의 높은 선반에 꽂힌 책들이 진짜 책이 아니듯, 이 넓고 높은 거대한 공간을 깊이 없는 문화적 허영과 상업적 위선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가스처럼 부풀어 오른 공갈빵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공공성 있는 쉴 곳에 목마른 우리 시민들에게는 이 정도 공간이면 메마른 도시의 오아시스다. 아무런 제재도 없이 들어갈 수 있고, 아무 책이나 뽑아 어디든 앉아 펼칠 수 있고, 잠깐의 짧은 회의도 가능한데다, 약속 시간에 늦는 친구를 기다리면서도 투덜거릴 필요 없어 더없이 속 편하다. 게다가 때때로 운 닿으면 만날 수 있는 전시에 강연까지…. 대가 없는 공공성을 이렇게 푸짐하게 주니 고맙기만 하다.

흔히 랜드마크는 주위의 환경을 압도하며 우뚝 선다. 코엑스 몰의 별마당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주변 지하상가의 환경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공간의 볼륨으로 자신을 세운다. 하지만 이 도서관은 랜드마크임을 내세우는 다른 건물들과 달리 위로 솟지 않고 아래로 파고들었다. 따라서 지상에 드러난 도시의 맥락에선 별다른 불협화음을 만들 거리도 없다. 외부 지상 광장에서 보는 도서관은 지붕만 좀 특이하지, 나지막하고 차분한 단층짜리 유리 건물이다. 하지만 광장에서 평범해 보이는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역시 눈앞에서 열리는 거대한 공간에 숨을 멈추게 된다. 규모 자체는 주변을 압도하지만 그 규모를 안으로 갈무리했으니 부담되지 않고, 사람 오가는 길 위에 놓여서 앉아 숨 돌릴 자리를 내주니 정겨운 장마당과 다르지 않다.


개관 반년 만에 입장객 천만 명 넘어

또한 이곳은 거미줄 같은 지하의 상업공간에서 내가 선 위치를 알려주고, 갈 길을 열어주는, 말 그대로 충실한 랜드마크다. 시작도 끝도 없이 확장감만 주는 어지러운 지하 공간에 하늘까지 닿는 솟대를 꽂아두고 우리의 중심을 잡아준다.

개장한 지 반년 만에 천만 명 넘는 사람이 별마당 도서관을 다녀갔다 한다. 비키 마이런이 그랬다. 훌륭한 도서관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언제나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기에 아무도 그 존재를 알아채지도 못하는 법이라고. 우리 도시에 문턱 없이 드나들 사랑방 같은 도서관이 점점 많아지면 누가 나서서 문화란 간판 붙여가며 애써 광고하지 않더라도, 서울은 정말 근사한 문화도시가 될 것이다.



-서울신문. 안준석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 l 건축가(AIA)·공학박사. 2018.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