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7-10 11:21
사진책만으로도 1만여 권…숲과 더불어 책이 숨쉰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52586.html#csidxa0… [264]

(사진1) 지난 5일 최종규씨가 전남 고흥군 ’사전 짓는 책숲집, 숲노래’ 도서관에서 소장책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2)
(사진3) 도서관으로 변한 교실. 초등학교 때 사용하던 책상과 의자를 그대로 열람실 사무용품으로 쓰고 있다.
(사진4) 도서관 입구.



[곽윤섭의 사진마을] 고흥 폐교 빌려 도서관 연 최종규 씨


도서관 앞마당엔 아무런 손길이 닿지 않은 풀들이 무성하고 배추흰나비, 호랑나비 등이 하늘하늘 날아다니며 꽃에서 꿀을 빨고 있었다. 이 곳은 한국에서 사진책이 가장 많은 도서관이다. 어림잡아 사진책만으로도 1만 권 이상 있는 그 도서관의 이름은 ‘사전 짓는 책숲집, 숲노래’다. 국립도 아니며 대학교 소속도 아니고 대기업의 소유도 아니다. 서울에 있지 않다. 도서관지기는 최종규(43·사전집필가)씨다. 지난 5일 전남 고흥군 도화면 문안길 220에 있는 그 도서관을 찾아가 최 씨를 만났다.
최 씨가 고흥의 폐교 흥양초등학교를 빌려서 도서관을 꾸린 것은 2011년이었으나 그때가 시작은 아니었다. 2003년에 출판사를 그만두고 2007년에 이오덕 선생의 유고 정리를 마친 최 씨는 그해 고향 인천으로 돌아와 동인천 배다리에서 ‘사진책도서관’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큰 아이가 태어났고 부부가 뜻을 모았다. ‘아이를 시골에서 사람답게 자라도록 하자’라는 생각에 지도를 펴놓고 석 달을 연구했다. 경남과 전남에 있는 핵발전소에 뜻하지 않은 사고가 났을 때 대피반경, 골프장과 공장 등 위해시설을 피할 것을 따져보니 고흥만큼 아름다운 곳은 또 있겠지만 나머지 조건은 고흥이 최고였다.


지도 펴놓고 석 달간 샅샅이 훑어

5톤 트럭 다섯 대 분량의 책을 고흥으로 옮겼다. 초등학교 교실 세 칸과 복도에 책꽂이를 놓고 빼곡하게 책을 채웠다. 사진책 뿐만 아니라 문학, 인문, 환경, 교육, 어린이, 만화, 그림책들도 한 식구가 되었다. 그 후로도 날마다, 해마다 책이 늘어났는데 현재 몇 권인지 세어볼 수도 없고 세어본 적도 없다. 지금 이사한다면 처음의 두 배인 트럭 열 대 분량은 될 것 같다고 한다.

최 씨가 지금까지 지은 책은 모두 33권에 이른다. 그 중 절반 넘는 것이 우리말 관련이다.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3-얄궂은 말씨 손질하기’,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등. 올해 안으로 나올 책만 해도 ‘우리말 동시 사전-형용사 편’,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4-공문서 즐겁게 쓰기’ 등 7권이 예정되어 있다. 스스로 사전집필가라고 말하는 최 씨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진책을 포함한 책들을 모아 도서관을 열게 되었을까?

고등학교 때부터 헌책방에 다니기 시작한 최 씨는 대학에 들어가서는 우리말 공부를 위해 옛날 사전을 찾으려고 헌책방을 본격적으로 들락거렸다. 기억나는 책이 수없이 많지만 그 중 하나는 오윤의 <칼춤> 화집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가 누군지 몰랐고 살 돈도 없어 책을 집었다가 놨다. 헌책방엔 불문율이 있다. 먼저 집는 사람이 임자다. 다른 손님 한 분이 자기가 사도 좋겠는지 물었다. 돈이 없기도 하고 “저는 눈으로 봤으니 아저씨가 가져가세요”라고 했다. 그 후로 다시는 그 책을 볼 수가 없었다.

또 한번은 헌책방에서 어느 선배가 권한 사진집이었다. 사전을 만들 때도 이미지를 알아야 한다면서 사진을 보라며 추천했다. 현대 기술 문명을 거부하고 소박한 농경생활을 하는 미국의 기독교 집단인 아미쉬 공동체의 사람들을 담은 책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사전과 사진이 연결되었다. 살짝 충격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아무리 글로 잘 설명해도 사진 한 장으로 보는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그 사진책을 본 것이 나중에 도서관 주제의 큰 기틀이 되었다.


본업은 사전 집필가이다
펴낸 책 33권 중 절반이 우리말 관련

고등학생 때부터 헌책방 드나들다
대학 때 우리말 공부 위해 본격 발길

한 선배가 권한 사진집 보고
‘글보다 사진 한 장’ 가치 깨달아

인천에 사진책도서관 연 지 4년만에
아이 사람답게 키우려 찾은 곳이 고흥

폐교 빌려 교실과 복도에 빼곡히
사진 외 인문, 만화 등 트럭 10대 분량

귀한 책 더 많은 사람들 볼 수 있게
읍내에 2호 도서관 여는 게 목표


처음 낸 책이 ‘모든 책은 헌책이다’

최 씨는 2004년에 첫 책 ‘모든 책은 헌책이다’를 내게 된다. 그는 “사전 집필을 본업으로 생각하는 나는 언제나 헌책방에서 도움을 받았다. 사회가 헌책방을 무시하는 기운이 있었다. 헌책방은 수준이 낮거나 케케묵은 곳이 아니라 오래된 책에서 새로운 값어치를 길어올리는 아름다운 쉼터다. 그런 내용이다”라고 했다. 당시 그 책에 들어갈 헌책방 사진을 찾으려 했으나 헌책방은 사진가들의 주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본인이 1998년부터 찍었던 헌책방 사진으로 그 책을 꾸렸다. 2000년부터 헌책방에서 헌책방사진전을 수십 차례 열었다. 짧아도 20년 단골인 헌책방 사장님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다. 올해 7월 초에 ‘내가 사랑한 사진책’이 눈빛에서 나왔다. 이 책에는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출판사쪽에서 독자들이 한 장의 사진도 없이 오직 글로만 상상해서 사진과 책과 삶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도서관의 특이한 이름 ‘사전 짓는 책숲집, 숲노래’에 대해 최 씨는 “내가 사전집필가다. 인천과 달리 고흥은 숲이 있다. 숲하고 책을 같이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그림책 마을을 보면 깊은 시골에 있다. 우리 도서관에 와서 책을 한 권도 안 봐도 된다. 책이 숲에서 나왔기 때문에 새소리, 바람소리 느끼면서 눈 감고 쉬면서 숲을 느끼고 가도 된다”고 말했다.

도서관의 사진책 책꽂이에 만화책도 섞여 있는 게 눈길을 끌었다. 그림과 사진과 만화가 다를 바가 없어 서로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일부러 그랬다고 한다. 최 씨는 “데즈카 오사무가 1950년대에 만화를 그리면서 영화기법을 썼다. 한쪽 페이지를 통째로 한 컷으로 채우면서 클로즈업을 하거나 인물을 하나만 넣거나. 획기적이었다. 만화도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각예술이다. 일본에선 사진가가 만화책을 보고 배우고 만화가들이 사진에서 영감을 얻는다. 사진 찍는 사람들은 그림책과 만화책을 꼭 같이 봐야 눈이 트일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고흥읍의 비어있는 건물에 2호 도서관을 여는 게 목표다. 도화면 동백마을은 고흥에서도 둘레에 있어 교통이 불편해 많은 사람들이 찾기 힘들다. 이곳 도서관의 귀한 책들을 읍내로 들고가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하고 싶은 게 꿈이다.


통번역 공부 하려 입학했는데 실망

최 씨는 인천에서 태어나 거기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통번역 공부를 하려고 1994년 한국외대 네덜란드어과(당시 화란어과)에 들어갔는데 대접에 소주를 가득 부어 마시게 하는 신입생 신고식에 질렸다. 학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회의를 느꼈는데 학기가 시작되자 네덜란드어 사전도 없는 교수들의 수업에 더욱 질렸다. 헌책방을 뒤져서 “1학년 주제에” 네덜란드 사전을 샀다. 교수들이 수시로 그의 사전을 빌려 갔다.

최씨는 “외국어를 배우려면 한국어도 잘 알아야 하는데 이게 바로 요즘 나오는 번역의 문제다. 외국어는 잘 하는데 우리말을 못하니 번역말씨, 일본 한자말, 영어 그냥 갖다쓰기, 짜깁기로 이어지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통번역을 잘하고 싶었기 때문에 외국말 공부, 외국문화 공부, 우리말 공부, 우리 문화 공부를 3:2:3:2로 나누어 하루 내내 공부했다. 대학을 접기로 하고 미래의 계획을 다시 설계하려고 보니 이 사회가 영어나 다른 외국어는 권장하는데 막상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책방의 책 목록에 그대로 반영이 되어 이오덕 선생의 ‘우리 글 바로 쓰기’를 빼고 나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는 그동안 한국어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 20살이지만 0살이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로 했다. 한국말을 배우려면 문화와 역사를 배워야 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책을 봤고, 새 책은 대학 구내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고, 옛날 책은 헌책방에서 읽었다. ‘책은 사서 봐야 한다’라고 하지만 형편이 되질 않아 무작정 살 수가 없었다. 새 책은 엄두도 내질 못하고 헌책방에서 죽치고 앉아 열 권을 다 읽고 나면 한 권은 샀다. 그랬더니 서점 주인이 봐주었다고 한다.
1998년 12월에 다섯 학기를 마치고 대학을 그만 두었는데 그 사이에 ‘우리말을 살려 쓰는 우리’라는 소식지를 내면서 일상생활에서 잘못 쓰는 우리 말글을 찾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기울였고 한글 학회에서 주는 ‘국어운동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1999년에 윤구병 씨가 세운 보리출판사에 들어가 보리국어사전 집필에 착수하게 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사전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최 씨가 2016년에 쓴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은 그해에 서울시와 서울서점인협회에서 ‘올해의 인문책’으로 뽑혔다. 최 씨는 “막상 고흥과 전남에서는 조용했다”라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곽윤섭 선임기자. 2018.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