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10-08 11:14
450년 전 판결로 본 조선 상속소송 “요절한 부인 재산, 친정에 절반 줘라”

시집간 딸이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사위가 곧바로 재혼하자 친정에서 “시집갈 때 가져간 재산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후처와 후처의 자식들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이유였다. 결혼한 뒤 자녀 없이 죽은 딸의 재산을 친정이 돌려받을 수 있을까?

 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법문화축제’에서 공개된 조선시대 판결서 ‘경주부결송입안(慶州府決訟立案)’의 내용을 보면 친정에서 재산을 상당 부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당시엔 배우자보다 친정의 혈족 상속권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와 조선 초까지는 결혼해 일찍 죽은 딸의 재산은 친정으로 귀속시켰다. 하지만 16세기 전후로 죽은 딸의 제사를 시댁에서 챙긴다는 이유로 시집 측에도 상속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조선시대 상속 법규를 담은 ‘경주부결송입안’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판결문이다. 1560년(명종 15년) 11월 1일부터 12월 10일 사이 있었던 조선시대 문신 집안 경주 손씨와 화순 최씨 간의 소송내용이 담겨 있다. 판결서에는 조서와 증거까지 기재돼 소송의 전체 모습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판결서에 따르면 화순 최씨 가문은 경주 손씨 가문에 조부와 손자 대에 걸쳐 2명을 시집 보냈다. 먼저 시집간 최씨는 결혼 당시 노비 32명을 데려갔다. 최씨는 사망하며 손자인 손광서에게 시집 온 같은 집안 최씨에게 노비를 상속했다. 하지만 손주며느리 최씨마저 이른 나이에 자식 없이 요절했다. 그러자 손주며느리 최씨의 오빠인 최득충이 사돈 집안을 상대로 “최씨 가문의 노비 32명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최씨 가문은 “누이동생의 재산을 손광서의 후처인 경주 김씨와 그의 소생들이 차지하는 것이 부당하다”며 “원래 재산의 주인인 친정에 노비를 돌려달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손씨 가문에서는 “사망한 최씨의 제사도 후처의 자식이 지내는 만큼 제사를 받드는 쪽이 재산을 상속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재판부인 경주부에서는 ‘경국대전’을 적용해 양측이 16명씩 노비를 나눠 가지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전에 따르면 자녀가 없는 여자의 경우 전체 재산의 5분의 4는 친정이, 5분의 1은 시집에서 갖도록 돼 있다. 단 시집에서 (죽은 며느리의) 제사를 지낼 경우 원래 몫에 10분의 3을 더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친정과 시집이 노비를 균등하게 분배한 것이다.

 자녀 없이 사망한 경우 재산 처리는 당시로서는 매우 까다로운 문제였다. 경국대전의 내용도 조정에서 치열한 논의 끝에 내려진 결론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법을 적용하면 결과는 다르다.

현행 민법 775조 2항에 따르면 부부는 서로 1순위 상속권한을 가진다. 부인이 자식 없이 사망할 경우 남편이 상속권을 갖게 된다. 현대 법에선 친정에서 사위의 재혼을 이유로 상속 분할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중앙일보 2012.10.5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2/10/05/9114764.html?cloc=olink|article|defaul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