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11-26 09:30
세월호 아픔 낱낱이 모은 저장소… “비극 잊으면 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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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ㆍ16기억교실 민주시민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교육생들이 열의에 찬 대화를 나누고 있다. 희생자들의 숱한 기록을 소중히 간직한 기억교실과 4ㆍ16기억저장소는 “잊지 말자”는 목표를 위해 시민 교육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송은미 기자


[민간 연구기록관 ‘4ㆍ16기억저장소’]
수많은 기록들 수집과 보존 대부분 유족ㆍ활동가의 몫
“아이 유품 보면 힘들지만… 달라진 나라 보여주려 활동”


아프고 참혹하기에 잊어선 안 될 기억.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수많은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현장으로 달려간 이유는 기억을 저장하기 위해서였다. 학자, 작가, 영상전문가들로 꾸려진 기록단이 현장을 낱낱이 기록해 담았다. 지난해 선체 인양 후 수집된 7,000여건의 기록물이 여기에 더해졌다. 이러한 기록들이 모여 세워진 민간연구기록관 ‘기억저장소’는 개인과 집단의 기억을 합해 더욱 진실과 가까운 기록 집합체를 일궈낸 대표적인 사례이다.

희생자와 생존자들이 남긴 개인 기록, 유가족의 활동기록, 각종 서명용지, 구술기록 등이 보관되고 있다. 단원고 4ㆍ16기억교실 모습의 보존 관리도 맡는다. 기억교실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민주시민교육 프로그램’을 열어 시민들을 초대한다. 희생자들과 그들의 꿈을 기억하기 위해, 참사를 참사로만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시민 100여명이 이 수업을 거쳐갔다.

지난 3일 경기 안산시 고잔동 4ㆍ16기억저장소에서는 수업이 한창이었다. ‘아이들의 꿈’을 주제로 한 강의는 신대광 원일중학교 교사가 이끌었다. 원일중 졸업생 40명이 희생된 참사가 생생하다는 신 교사에게 4ㆍ16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안타까움에 울고만 있을 게 아니라 우리가 이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대하고 있는지를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기록을 해왔다”라며 “교사이다 보니 교육현장의 시각에 관심을 뒀다”고 했다.

이날 강의에서는 유족을 일일이 만나 기록한 희생자 아이들 9명의 꿈에 대해 소개했다. “꽃피지 못한 아이가 숨졌지만, 아이들은 결국 꿈을 남겼죠. 물론 교실 책상은 여기 남아있지만, 아이들의 꿈이나 온전한 정신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개인마다의 사연, 과정들을 기록하는 것이 4ㆍ16을 다시 기억하는 핵심요소가 아닐까요.”

참사 4주기가 지나면서 곳곳에서 기억이 무뎌지는 인상이 뚜렷하지만, 신 교사에게도 유족에게도 깊은 상처는 여전하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그는 “희생자의 동생들은 대부분 사고 난 뒤 제대로 수업도 듣지 못한 것은 물론, 아예 한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라며 “이런 내재된 아픔이 언제 어떻게 나타날 지 모른다는 생각에 늘 참사를 돌아보고, 마음 치유에 공들이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현정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역사문제연구소 관계자 등 많은 이가 재능기부로 돕고는 있지만 기억저장소의 자료를 늘리고 보존하는 일은 대부분 유족과 활동가의 몫이다. 특히 지난해 참사 1,091일 만에 이뤄진 인양 후 나온 7,000건이 넘는 기록물을 복원, 보존하고, 유족에게 전달하거나 다시 기억저장소에 기증받는 과정에서는 고된 작업이 수반됐다. 기록들을 의류, 지류, 금속류 등으로 분류하고 각각 전문가 자문을 구해 복원·보존을 의뢰했다. 의류 등 일부는 4ㆍ16기억저장소 단원고 학생 희생자 가족운영위원들이 교육을 받아 직접 보존처리하기도 했다.

기억을 복원하고 상처를 담은 자료를 그러모으는 작업은 언제나 차가운 현실을 직면하게 한다. 참사가 대중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고 있어 더 그렇다. 이지성 4ㆍ16기억저장소 소장은 “정권이 교체됐지만, 진상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은 아직 제대로 된 게 없다”라며 “희생자들의 기록을 복원, 보존하는 일도 정부가 아닌 유족들이 힘들게 싸워가며 해나가는 게 잔인한 현실”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이 소장은 고 김도언 학생의 어머니다. “참사 당일부터 정부, 공무원, 언론을 믿을 수 없다는 고립감이 심해 모든 것을 알아서 해온 게 여기까지 오도록 했어요. 유품도 어떻게 보존할지 계획이 없어 새끼 잃은 부모들이 직접 기록하고 관리해 오지 않았나요. 아이들의 유품과 옷의 보존처리, 탈염, 세척 모든 것을 그때 바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 비용이든 계획 문제든 모든 게 여의치 않은 상황을 부모들이 직접 풀어온 거죠.” 선체에서 수습된 뻘에 대한 보존처리가 이뤄지면 이 역시 제1서고에 보관할 예정이다.

만만치 않은 비용과 여건 속에서도 기억저장소의 노정을 이끌어내는 동력은 “달라져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이 소장은 “한 학생이 5ㆍ18전야제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으면, 이 비극을 잊으면 그 다음은 우리 차례라는 말을 해 소름끼치고 놀랐다”고 말했다.

“아이들 유품을 자꾸 들여다보는 일이 왜 안 힘들겠어요. 왜 슬프지 않겠어요. 하지만 멈추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학생들에게 다른 대한민국을 제시하기 위해서요. 가만히 있으라는 교육을 이제는 끝내기 위해서요.”

지난해부터 기억저장소가 민주시민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 온 것도 이런 마음 때문이다. 이달 초에는 희생자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은 아카이빙 전시도 열었다. ‘마을 아카이빙 2018- 목소리들’ 전시다. 고심 끝에 준비한 ‘마을기록가 양성과정’도 총 7강으로 기획해 진행했다. 4ㆍ16기억저장소와 함께 이 지역 마을과 공동체 활동을 기록할 시민활동가를 키우기 위해서다.

이 소장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공감대와 연대가 형성되는 게 아닌데다 혼자 기억하면 그만큼 잊혀지기도 쉽지 않냐”라며 “함께 연대하고, 얘기하고, 공감하고, 토론하는 가운데 알지 못한 것도 깨닫게 되고, 무엇보다 잊지 말자는 생각”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방문해서 기억들을 들춰볼 때,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해요. 많은 분들 오해와 달리 가족협의회 산하 기관일 뿐 지원받는 게 없어 힘겨운 부분도 많지만, 후원자인 ‘기억회원’ 분들 덕분에 한 걸음 한 걸음 버티며 나가고 있어요. 이 힘이 흔들리지 않도록 열심히 해야죠.”



-송은미, 김혜영 기자. 한국일보. 2018.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