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4-01 11:41
13만권 한자리에… ‘헌책 보물창고’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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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구불구불한 책 터널 국내 최초 공공 헌책방인 ‘서울책보고’가 27일 개관해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명사의 기증도서 컬렉션부터 기존 도서관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독립출판물까지 총 13만여권의 책을 만날 수 있다. 하상윤 기자



서울시 ‘서울책보고’ 개관 / 443평 규모 대형 물류창고 개조 / 25개 헌책방서 위탁받은 책 판매 / 최고가는 잡지 ‘선데이 서울’ 모음 / 독립출판물·명사 기증서가 ‘눈길’


서울 시내 헌책 13만권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공공헌책방 ‘서울책보고’가 27일 문을 열었다. 서울시와 서울도서관은 송파구 잠실나루역 근처의 대형 물류창고를 개조해 초대형 헌책방으로 변신시켰다. 이날 개관식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에 5개 거점 도서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헌책방이 들어선 자리는 과거 암웨이 물류창고였다. 규모가 1465㎡(443평)에 달한다.

서가에서 먼저 눈에 띄는 풍경은 책벌레가 구불구불 지나간 흔적 같은 긴 통로다. 아치형 책꽂이 32개가 둥근 책 터널을 이룬다. 책꽂이 칸칸에는 청계천 동아서점, 동신서점 등 25개 헌책방이 내놓은 12만여권이 꽂혀 있다. 서울책보고는 이를 수수료 10%를 받고 위탁판매한다.

이곳의 최고가 헌책은 그린북스에서 의뢰한 ‘선데이 서울’ 창간호∼마지막호 모음 다섯 박스다. 박스 하나당 3000만원씩 모두 1억5000만원으로 판매가가 매겨졌다.

이정수 서울도서관장은 “이 잡지를 통해 당시 사회상을 볼 수 있으나 여성 비하 등 여러 시각이 있고 어린 고객도 있어 서가에는 배열해 놓지 않았다”고 밝혔다.

건물 한쪽은 ‘독립출판물 도서관’으로, 2130여권을 모아놓았다. ‘명사 기증도서’ 서가에는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심영희 한양대 석좌교수 부부가 기증한 책 1만600여권이 꽂혀 있다. 개관기념 특별전시도 열린다. ‘국민학교 부독본 겨울공부, 셈본 4-2’같은 1950∼90년대 교과서, 전과, 전화번호부 등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낯선 책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서울책보고는 민간 기업의 중고서적 시장과 겹칠 우려가 있다. 이 관장은 이와 관련해 “기업형 중고서점이 신간 위주라면 이곳은 오래된 책의 보고”라며 “서울책보고에는 도서관에서조차 볼 수 없는 오래된 책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중고서점주들은 책방을 둘러보며 조심스레 희망을 내비쳤다. 중고서점은 PC통신·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1990년대 초반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서문서점 정병호 사장은 “책을 많이 안 보니 장사가 안 돼 어려웠다”며 “젊은 세대에게 헌책의 매력이 전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책읽는풍경 정창영 사장은 “기대 반”이라며 “종이책을 워낙 안 봐서 호응이 얼마나 있을지는 오픈해봐야 알 것 같다”고 밝혔다.

서가에는 이날 오전부터 고객 발길이 이어졌다. 한 달 전부터 개관을 고대하다 직장에 반차를 내고 왔다는 김예슬(32·가명)씨는 “서울·경기도에 있는 중고서점 100곳 정도를 다 가봤다”며 “여기는 원하는 책을 바로 찾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어서 서가 사이를 헤매는 헌책방 분위기를 즐길 만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기존 헌책방들이 남을 곳만 남다 보니 다들 개성적 공간이 됐는데 이곳은 그런 공간적 재미는 줄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개관식에서 박 시장은 “작은 도서관 정책을 쭉 추진해보니 한계가 있어서 곧 서울에 5개 거점 도서관을 만들 생각”이라며 “이 중 하나는 독립출판물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세계일보. 송은아 기자. 2019.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