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4-19 11:07
북펀딩, 서점가를 흔들다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90417000142 [146]

(사진) 북펀딩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독자들은 책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다는 재미와 경험을, 출판사는 초판 소진의 부담을 덜고 초기 입소문 효과를 얻을 수 있어 매력적인 대안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텀블벅, 작년 펀딩 출판 책 700여권
문학동네 등 메이저 출판사 참여도

집필 중인데도 수천만원 후원
무명 작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독자, 책 만드는 과정 참여 재미얻어


‘기회의 땅’, 요즘 출판계 화두로 등장한 북펀딩을 이르는 말이다. 많게는 수억원의 펀딩이 모이는가하면 베스트셀러도 심심치 않게 나오면서 독자와 출판사들이 몰리고 있다. 출판사 문턱을 넘지 못한 소수 취향의 책들이 후원을 통해 겨우 세상에 나오곤 했던 통로가 문학동네, 창비, 푸른숲 등 메이저 출판사들까지 참여하면서 대안의 출판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쓰지 않은 글도 수 천만원 펀딩!=최다 출판 펀딩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텀블벅에서 현재 가장 인기리에 펀딩이 진행되고 있는 ‘괴초록’은 현재 4600만원이 넘는 후원금이 모였다. 당초 목표액의 2300%가 넘는다. 펀딩에 참여한 사람은 2900여명, 아직 보름이상 펀딩 기간이 남아있어 액수는 훨씬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우리나라 고문헌 속 판타지 식물과 약을 만드는 레시피를 담아낼 예정으로 집필이 절반도 안 끝난 상태다. 이 작가는 이전 ‘한국요괴도감’ ‘검은사전’으로 각각 1억4500만원, 1억 3900만원을 펀딩을 받기도 했다. 모두 덕후 취향의 책으로 8000여명의 후원자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 펀딩이 진행중인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도 1446명이 참여, 3400여만원의 후원금이 모였다.

지난해 텀블벅을 통해 후원금을 모아 출판한 책은 700여권 이상이다. 적게는 수 백만원에서 많게는 수 억원에 이르기까지 출판 후원금이 모였다. 그동안 몇몇 소수 취향의 책에 한정됐던 북펀딩 시장이 급성장한 건, 2017년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언어의 온도’가 북펀딩을 통해 출판에 성공하고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면서 ‘기회의 땅’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이어 2018년 또 한 번 대박이 터졌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가 후원금 2000만원을 받아 독립출판사를 통해 나오자 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 후원금 만으로 초판을 소진하고 자발적 입소문 효과로 베스트셀러 1위까지 등극했다.

▶문학동네, 창비 등 메이저도 입질=중견출판사인 푸른숲의 하위 브랜드인 벤치워머스는 지난해 말, 옷 잘입는 법을 담은 번역서 ‘트루 스타일’을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와디즈를 통해 후원을 받았다. 자기계발에 관심이 많은 남성들을 겨냥한 이 책은 당초 목표 금액인 100만원의 1800%가 넘은 920만원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예상외의 성과였다. 참여 인원은 470여명. 이 출판사는 최근 길 위의 나의 집 ‘밴 라이프’도 이 펀딩 사이트를 통해 후원을 받아 책을 냈다. 출판사측은 “마케팅적으로 의미있는 사례”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북펀딩을 이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반 서점에서 주목받기 어려운 책의 경우, 독자와 만나는 지점으로서 북펀딩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메이저 출판사들도 북펀딩에 나서고 있다. 문학동네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텀블벅을 통해 목표금액을 초과한 217만원의 후원금을 모았으며, 창비는 맨부커상을 받은 첫 퀴어소설 ‘아름다움의 선’을 목표액의 360%가 넘는 347만여원을 모금하는데 성공했다. 시공사는 최근 타임지선정 영문소설 베스트100 유일한 그래픽 노블 ‘왓치맨’을 텀블벅을 통해 목표금액의 1697%에 해당하는 5000여만원의 후원금을 모았다. 자금과 인력이 두둑한 10대 출판사들까지 펀딩 대열에 끼는 건 열정적인 후원자들을 얻는 마케팅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대안의 출판시장? 팩트는 재미!=북펀딩은 일반 투자 펀딩과는 다르다. 수익에 대해 돈으로 보상을 받는 게 아니다. 후원비용에 따라 책과 함께 엽서나 포스터, 뱃지, 혹은 티셔츠 같은 굿즈를 받는 게 전부다. 보상보다는 책 자체를 후원하는 개념이다. 일반 서점에선 주목을 받지 못하는 책들이 오히려 펀딩 사이트에서 잘 나가는 것도 다르다. 특이하고 희소성이 있는 데 더 몰린다. 무엇보다 후원자들은 자신이 좋아할 만한 책이 나오도록 하는 과정에 참여한다는 경험과 재미를 중시한다. 일종의 의무감마저 느낀다. 그래서 적극적이다. 입소문을 내고 후원자를 끌어들이기도 한다. 소액이라는 점도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는 요인이다. 여기에 한정판 굿즈의 희소성을 소유한다는 데 만족감도 크다. 서점에서의 책 구매 행위가 필요에 의해 이뤄졌다면, 이런 펀딩사이트에서의 구매는 ‘사는 행위에 대한 재미’에 초점이 놓인다.

출판사들은 선판매의 부수를 확보할 수 있어 초판 소진의 부담을 덜 수 있고, 독자 반응테스트와 수요 예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기존의 독자와 겹쳐지지 않는 서점 밖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어 독자층을 넓히는 효과와 입소문 효과는 매력적이다. 독자들의 취향과 요구를 반영해 세심하게 잘 맞든 책은 이후 또 다른 책의 후원을 얻는 데 밑거름이 된다. 책 덕후가 생기는 것이다.

책을 읽는 독자가 점점 줄고 있는 상황에서 출판계는 새로운 독자층을 형성하는 대안의 통로로 북펀딩에 주목하고 있다.



-헤럴드경제. 이윤미 기자. 2019.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