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4-29 13:08
[글로컬 라이프] 24시간 불 꺼지지 않는 베이징의 '심야 서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28/2019042801957.htm… [3]

(사진) 이길성 베이징 특파원



거리에 넘치는 음악, 클럽 앞을 서성이는 피부빛 다른 남녀들, 집요하게 따라붙는 주점 삐끼들. 지난 20일 자정을 넘긴 싼리툰(三里屯). 베이징서 가장 핫하다는 유흥가는 '불금'의 절정이었다. 한국 이태원을 닮은 싼리툰의 밤, 그 흥청거림 속에서 싼롄타오펀(三聯韜奮) 서점의 싼리툰 분점〈큰 사진〉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곳 영업시간은 매일 0시부터 24시. 요즘 베이징 밤 풍경을 바꾸고 있는 24시간 심야 서점 중 한 곳이다. 역사책 서가 앞에서 '한고조(漢高祖)'라는 책에 빠져 있던 샤오위순(35)씨는 "이 서점의 밤 단골"이라고 했다.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한다는 그는 "일주일에 사나흘, 일을 마친 밤 11~12시쯤 와서 3~4시간 책을 읽다 집에 간다"고 했다. 샤오씨의 집은 서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그는 "책을 사서 집에서 읽어도 되지만 서점만의 서향(書香)이 좋다"고 했다. 그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 시간은 새벽 1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무한대를 뜻하는 수학 기호 '∞' 형태의 700㎡(212평) 규모 복층 서가 곳곳에선 30여 명이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샤오씨 같은 베이징의 '올빼미 독서족'들은 요즘처럼 행복한 때가 없었다. 시내 곳곳에 밤새 문을 여는 서점들이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1년 전 싼리툰 유흥가에 진입한 싼롄타오펀 서점의 분점 말고도, 톈안먼(天安門) 앞 첸먼거리의 '페이지원(Page One),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촌의 '스웨스광(十月時光)' 서점, 베이징 꽃시장 인근의 신화서점 화스(花市) 분점 등 심야 서점들이 벌써 13곳을 넘어섰다. 임대료 비싸기로 악명 높은 싼리툰에 24시간 서점이 들어섰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확장세가 만만찮음을 알 수 있다.


싼롄타오펀 서점의 싼리툰 분점

베이징에 24시간 서점이 처음으로 등장한 건 2014년 4월이다. 대만 타이베이의 24시간 서점 청핀(誠品)슈덴에 감명받은 판시안(樊希安) 싼롄타오펀 서점 대표가 베이징 본점을 '불이 꺼지지 않는' 체제로 전환한 것이다. 살인적인 임대료 때문에 자신만의 공간은 꿈도 못 꾸는 지방 출신 사회 초년병들이 심야 단골들이 됐다. 백팩과 물병, 이불을 대신할 커다란 외투는 이 올빼미 독서족들의 필수품이다.

야간 영업은 서점들로선 수지 안 맞는 장사다. 직원의 야근 수당과 매장 유지 비용도 버겁다. 그런데도 24시간 서점들이 자꾸 느는 건 심야 서점을 '베이징 밤 문화의 등대'로 만들겠다는 중국 정부의 지원 덕분이다. 유흥업소들도 버티기 어려운 싼리툰에 싼롄타오펀 서점의 24시간 분점을 들이기 위해 관할 차오양(朝陽)구 정부는 임대료와 인테리어 비용 등을 지원했다.

시민들이 부담 없이 심야 서점 순례에 나설 수 있는 데는 베이징의 자전거 인프라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공짜처럼 탈 수 있고 어디든 세워둘 수 있는 공유 자전거들, 오르막길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평지 지형, 모든 간선도로에 설치된 자전거 도로 덕분에 대중교통이 끊긴 시간에도 밤 마실 나서는 일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중국 국무원에 따르면 2018년 말 현재 중국 전역에는 총 95곳의 24시간 서점이 운용 중이다. 대륙 최고의 야간 서점 천국은 상하이다. 무려 21곳이 영업 중이다.



-조선일보. 이길성 베이징 특파원. 2019.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