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6-03 10:58
‘이승만 탄핵’ 내용 담긴 독립신문 호외 최초 발견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74287.html#csidx211d98f0c483a… [189]

(사진1) 이승만 임시정부 대통령의 탄핵 면직을 알리는 내용의 <독립신문> 1925년 3월25일치 호외. 홍재하 차남 장자크 홍 푸안이 국사편찬위원회에 기증.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사진2) 프랑스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홍재하(1960년 파리 근교서 타계)와 그의 차남 장자크 홍 푸안. 해방 전인 1943년 찍은 사진이다. 장자크 홍 푸안 제공. 연합뉴스



재불 독립운동가 홍재하 후손이 보관
국사편찬위원회가 실체 확인, 기증받아
“학계에서 전혀 몰랐던 사료, 의미 커”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1875~1965)이 탄핵당했을 때, 이 사실을 알렸던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서재필이 발행한 독립신문과 다름) 호외(號外)가 있었다는 사실과 그 실체가 처음으로 드러났다.

<연합뉴스>는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조광)가 재불 독립운동가 홍재하(1898~1960)의 차남 장자크 홍 푸안(76·프랑스 거주)이 보관해오던 선친의 유품 가운데 이승만 탄핵 소식을 담은 1925년 3월25일치 독립신문 호외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13일 보도했다. 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국외자료조사팀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는 그동안 학계에서 그 존재조차 몰랐던 사료로서, 홍재하 선생이 남긴 다른 사료들과 더불어 임시정부 연구에 새로운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승만은 1919년 9월6일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됐으나, 상하이에 와서 자신의 직책을 직접 수행하지 않고 미국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이어가 임시정부 각료들과 갈등을 일으켰다. 특히 그가 독단적으로 국제연맹에 위임통치를 청원한 것은 임시정부 각료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끝내 1925년 3월23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은 탄핵을 의결해 이승만을 대통령에서 면직시키고, 곧바로 박은식(1859~1925)을 임시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임시정부 공보 42호 심판서’ 등 기존 사료들에도 나와 있다.

그러나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에서 3월25일 이를 알리는 호외를 발행했다는 사실은 그동안 알려져 있지 않았다. 당시 임시정부가 중국에서 다량 발행했을 것으로 보이는 이 호외는 중국에서는 국공내전 등 전란을 거치면서, 한국에서는 일제 탄압과 해방정국,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장자크 홍 푸안에게 기증받은 자료를 보면, “대통령 이승만 면직”, “신(新)대통령을 선거”, “신대통령 박은식 취임식 거행”, “국무원 동의안 통과” 등의 제목으로 당시 상황을 비교적 건조하게 알리고 있다. 곳곳이 찢어져 있는 등 보존상태는 완벽하지 않지만, 거의 모든 글자를 알아볼 수 있다.

1898년 서울에서 태어난 홍재하는 만주, 러시아를 거쳐 1920년대 초반 프랑스로 건너간 뒤 임시정부 구미위원회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활동을 펼쳤는데, 임시정부 요인들이 프랑스에 오면 꼭 그와 만나는 등 밀접하게 교류한 것으로 보인다. 독립신문 호외 역시 홍재하가 당시 임시정부 인사로부터 건네받은 것으로 추정되며, 1960년 파리 근교에서 그가 암으로 별세한 뒤 장녀를 거쳐 차남 장자크 홍 푸안이 생브리외의 자택 창고에 보관해왔다.

홍재하가 남긴 기록물은 몇백 장에 달하는데, 이 호외 말고도 임시정부가 독립투쟁 자금 마련을 위해 발행한 재무부 포고령, 각종 서신, 임시정부 인사들과 주고받은 메모 등이 많아 그 의미와 가치를 조사 중이라고 국사편찬위원회 쪽은 밝혔다. 또 장자크 홍 푸안으로부터 기증받은 자료 일체를 보존 처리한 뒤 연구자, 일반인들이 두루 살펴볼 수 있도록 전자사료화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독립신문 호외는 내년 임시정부 100주년 관련 전시에 선보일 예정이다.



-한겨레신문. 최원형 기자, 연합뉴스. 2018.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