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6-14 17:19
‘시정기록 보존·공개 책임’ 서울기록원 개원
   http://www.seouland.com/arti/society/society_general/5273.html [119]

박물관과 도서관 그리고 기록관(아카이브)을 ‘집단적 기억’의 수호자 역할을 한다고 해서 기억 기관이라고 한다. 서울시가 지난 5월15일 서울기록원을 개원함으로써 세 개의 기억 기관을 완성했다.
박물관과 도서관이 시민에게 친숙한 기관이라면 아카이브는 낯선 기관이다. 우리나라에 공공기록 관리 제도가 도입된 것이 1999년이고, 아카이브의 기록 정보 서비스를 시민이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카이브가 친숙하지 않은 것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기록 관리 선진국이라는 미국도 아카이브가 어렵고 낯설다고 해서 1939년 루스벨트 대통령기록관이 설립될 당시 기관의 이름을 도서관으로 했고, 이후 건립된 아카이브들도 도서관·박물관(Library & Museum)이라 한다.

우리에게 기록 관리는 결재 문서 가운데 중요한 것을 보존하는 문서 보존 정도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아카이브에 대한 인식이 없었고, 그저 문서보존소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이 인식에는 큰 변화가 없다. 서울기록원 건립이 한창일 때 부지인 서울혁신센터에 “문서 창고가 웬 말이냐”는 주장이 있을 정도였다. 기록은 공무원들이 업무 참고만을 위해 보존하는 것이 아니다. 기록은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관리된다. 그 일을 하는 기관이 아카이브다. 그렇다면 서울기록원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먼저, 서울시가 무슨 일을 했는지 시민에게 책임 있게 설명하는 기관이다. 서울시는 여러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기록을 생산한다. 어떤 일을 어떻게 했는지 증거가 되는 기록을 보존하고, 관리해서 활용케 하는 것이 서울기록원이 하는 일이다. 즉, 서울시가 하는 일을 설명하는 유일한 도구인 기록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각각의 기록이 갖는 맥락을 엮어서 설명하고, 안전하게 보존하며, 최적의 플랫폼을 만들어 시민이 편하게 접근해서 이용하도록 하는 일을 한다. 결국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미국의 국립기록관리청은 ‘민주주의가 여기에서 시작한다’는 모토를 내세우는데, 같은 맥락이다. 서울기록원은 불편부당하게 ‘시정 기록’을 관리하고 공개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첨병이 될 것이다.

둘째, 서울기록원은 ‘사회적 기억’을 수집해서 미래로 보내는 일을 한다. 서울은 우리 현대사의 대표적인 장면을 만들어낸 역사적 사건의 집단 기억이 생성된 대표 도시다. 서울시는 사건, 장소, 인물 등에 관한 다양한 ‘사회적 기억’을 모아 기록을 만들어 관리할 책임이 있다. 최근의 대표적인 ‘사회적 기억’이라면 ‘촛불 행진’과 ‘세월호 참사 추모’를 들 수 있다. 서울기록원은 이미 이 사건에 대한 기억과 기록을 모아 안전하게 보존하고 있다. 이것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맥락을 구성해서 미래로 보낼 것이다. 이런 일이 기억 기관으로서의 서울기록원이 충실히 수행해야 할 역사적 임무다.

셋째, 서울기록원은 기록문화가 활성화되도록 연대하고 협력하는 일을 한다. 서울의 기억과 기록은 공공 영역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정 기록’은 서울시라는 공공기관이 무슨 일을 했는지는 설명할 수 있지만, 서울의 다양한 기억을 그대로 전승하지는 못한다. 시민의 삶과 기억을 기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민의 기억과 기록을 모두 수집할 수는 없겠지만, 미래로 보낼 가치가 있는 시민 기록이 사라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서울기록원의 일이다. 서울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많은 시민과 연대하고 협력해서 기록문화가 활성화되도록 할 것이다. 또 기록하고 그것을 즐기고자 하는 시민들의 충실한 안내자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기록은 ‘기억’을 담는 그릇이며, 과거를 밝히는 ‘증거’이며, 아카이브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역사적인 장소라고 한다. 서울기록원은 시민의 알 권리를 실현하고, 서울의 기억과 증거를 미래 세대에게 기록으로 남기라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기관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한겨레신문. 조영삼 서울기록원장. 2019.6.14